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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기연

음성문인협회장

붉은 장미 넝쿨 진 담장을 따라 걷는 그녀들이 보인다. 천천히 주행하면서 따라가다 보니 닫힌 창문 너머로 재잘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등굣길을 친구들과 걷는 모습이 청춘이어서 더욱 아름다워 보인다. 점점이 멀어지는 형체가 사라져도 기분 좋은 미소는 사라지지 않는다. 나와는 다른 속도이지만 아마도 지금 내가 가는 곳으로 오고 있으리라.

기회는 우연히 찾아 왔고 망설임 없이 욕심나는 자리였다. 관내 4년제 대학교에 '한국어의 이해'라는 과목으로 강사 지원을 했다. 발표일을 기다렸다가 확인해보니 이름을 찾을 수가 없었다. 아쉬움이 컸지만, 서류를 준비하면서 또 다른 도전을 해 본 것만으로도 족하다는 나름의 위로를 했다. 그런데 주말을 지낸 월요일 아침에 연락이 왔다. 당장 이번 주부터 수업을 시작해야 한단다.

대상은 네팔에서 유학 온 1학년 학생으로 두 반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한 과목을 분반해서 가르친다는 점이다. 대학교 어학원과 학부에서 수업을 가르쳐 본 선생님께 조언을 구했다. 세종학당에 지원해서 합격하신 능력 있는 분으로 오랜만의 연락에도 흔쾌히 대답해주시고 알려줬다. 교재를 선정하고 수업 준비를 다각도로 했다.

잘 해내고 싶다는 의욕과 조급함이 스트레스로 작용했다. 대학교에서의 수업은 모든 것이 나의 재량이었다. 내게 있어 '알아서 한다'라는 것은 가장 어려운 일이다. 열심히 앞만 보고 달려왔고, 그게 전부인 줄 알면서 속도를 내며 살았다. 옆을 보지 않고 살다 보니 어디쯤 서 있는지 방향감각을 잃었다. 박사과정 3학기 차이지만 구체적인 목적은 없다. 몽테뉴의 '어느 곳을 향해서 배를 저어야 할지를 모르는 사람에게는 어떤 바람도 순풍이 아니다'라는 말처럼 욕심내 잡은 기회도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하다.

즐겨보는 드라마에서의 한 장면이 생생히 기억된다. 지방의 초라한 돌담병원을 배경으로 괴짜 천재 의사 '김사부'와 열정이 넘치는 젊은 의사가 펼치는 의학 드라마이다. 시리즈 3편이 방영될 정도로 흥미롭다. 지난주 조급해하는 후배 의사를 향해 선배가 하던 말이 잊히지 않는다. '뱁새가 황새를 따라가는 방법'에 대한 말이었다. 조금 느리더라도 황새와 같은 방향을 바라보면 된다는 말이 나를 응시하듯 힘이 느껴졌다. 자기 걸음으로 가다 보면 비록 속도는 늦을지라도 결국 같은 곳에 도달하게 된다는 의미심장한 말이다.

돌이켜 보니 박사 논문 주제를 정하면서도 방향에 대한 고민이 깊었다. 내가 연구해 보고 싶은 주제를 선정하기까지 시간이 걸렸고, 관련 자료를 수집하는 일부터 시작하고 있다. 많은 자료를 준비하고 분리해서 정리하다 보면 주제에 더 가까워지고 선명하게 보일 것이다. 뿌옇게 흐려진 안경을 닦고 보는 기분이다.

인생은 죽을 때까지 배우고 깨닫는 과정인가 보다. 여전히 '재량껏'이라는 말이 가장 어렵지만, 속도 보다는 방향을 정해서 한 걸음 한 걸음 가다 보면 목표 지점에 도달할 수 있으리라는 신념이 생긴다. 굴곡진 인생길에서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내가 가고자 하는 목적지이다. 학교 가는 길에 자주 마주치는 청춘을 떠올려 본다. 그들에게 올바른 방향으로 끌어 주는 어른의 몫도 해야 한다.

나는 늘 순풍을 기다린다. 그러나 그러기 위해서는 내가 무슨 일을 해야 하며, 왜 해야 하는지 방향을 정해야 한다. 서둘러 빨리 간다면 실수도 잦고 멈추기 어려울뿐더러 방향을 바꾸기도 쉽지 않다. 호흡을 깊게 들이마시고 한 템포 쉬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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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기업 돋보기 5.장부식 씨엔에이바이오텍㈜ 대표

[충북일보]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개척해 나가는 사람이 있다. 국내 시장에 '콜라겐'이라는 이름 조차 생소하던 시절 장부식(60) 씨엔에이바이오텍㈜ 대표는 콜라겐에 푹 빠져버렸다. 장 대표가 처음 콜라겐을 접하게 된 건 첫 직장이었던 경기화학의 신사업 파견을 통해서였다. 국내에 생소한 사업분야였던 만큼 일본의 선진기업에 방문하게 된 장 대표는 콜라겐 제조과정을 보고 '푹 빠져버렸다'고 이야기한다. 화학공학을 전공한 그에게 해당 분야의 첨단 기술이자 생명공학이 접목된 콜라겐 기술은 어릴 때부터 꿈꿔왔던 분야였다. 회사에 기술 혁신을 위한 보고서를 일주일에 5건 이상 작성할 정도로 열정을 불태웠던 장 대표는 "당시 선진 기술을 보유하고 있던 일본 기업으로 선진 견학을 갔다. 정작 기술 유출을 우려해 공장 견학만 하루에 한 번 시켜주고 일본어로만 이야기하니 잘 알아듣기도 힘들었다"고 말했다. 이어 "공장 견학 때 눈으로 감각적인 치수로 재고 기억해 화장실에 앉아서 그 기억을 다시 복기했다"며 "나갈 때 짐 검사로 뺏길까봐 원문을 모두 쪼개서 가져왔다"고 회상했다. 어렵게 가져온 만큼 성과는 성공적이었다. 견학 다녀온 지 2~3개월만에 기존 한 달 생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