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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란

수필가

출구는 있다는데 돌고 돌아도 제자리였다. 막혀 있으니 돌아서 다른 길로 가야한다. 천년 고찰 직지사에서였다. 국화가 심겨져 있어서 그냥 화단인 줄 알고 들어갔는데 미로(迷路)화단이다. 미로에서는 나가고 싶다고 원해도 바로 나갈 수도 없다. 그렇다고 쉽게 나가는 길을 가르쳐줘도 말로는 알 수가 없다.

그날 우리 일행은 한참을 미로(迷路)에 갇혀 빠져나오지 못했다. 우리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들어갔다 나오지 못해 이리저리 헤매었다. 그 중에서도 맥 빠지는 것은 기껏 밖으로 나가나 하면 제자리이기 일쑤다. 설마하고 들어왔던 사람들은 되풀이 되는 실패로 각양각색의 표정이다. 숫한 반복에 지친 얼굴, 포기할까 망설이는 이들, 굳은 표정으로 참는 이들, 지루함을 참지 못해 짜증내며 화단 위로 올라타는 막무가내 청년들, 그래도 경건하게 조심조심 걷는 노인들 정말 다양하다.

반면 다른 부류도 있었다. 스님 일행과 아이들이다. 스님 일행은 집 마당을 걷듯 평온해 보이고 아이들은 미로 자체에 호기심이 돋는 듯 신나 보인다. 어찌 보면 스님과 아이들은 미로 자체를 그저 즐기는 것 같다. 어찌어찌 밖으로 나와 안내문을 본다. 어쩌면 이 길은 그 자체로 미로이며 입구와 출구가 하나라는 단일성을 염두에 두고 떠나야 느긋하게 나올 수 있는 곳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잠시 들었다.

이 단일성을 문학으로 승화한 작품이 헤르만 헤세의 소설 '싯다르타'이다. 작가는 불교의 핵심을 주인공의 삶을 통해 설명한다. 모든 삼라만상(森羅萬象)이 연으로 얽혀있는, 말 그대로 하나라는 것이다. 붓다의 말씀을 빌리자면 삼라만상이 모두 다른 게 아니라 하나라는 것. 살고 죽는 것도 따로 떨어진 게 아니라 하나라는 것. 갓난아이에서 노인이 되어 사라지기까지 한 사람의 존재의 본질은 겉만 다르게 보일 뿐이지 한사람의 모습이라는 것이다. 이미 어린아이가 자기내면에 백발의 노인을 지니고 있듯 죽어가는 사람도 내면에 이미 영원한 생명을 지니고 있다는 얘기다. 언젠가 된다는 게 아니고 이미 완전한 존재로 되어있다는 것. 그러니까 한마디로 본질은 하나인데 착각으로 단일성을 깨닫지 못한다는 말로 이해한다.

종교적 단일성이라는 단어엔 여럿이면서 하나 또는 하나이면서 여럿이라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내 경우 불교 신자는 아니지만 요즘 들어 생이 단일성이라는 설명에 공감한다. 그것은 타인의 삶과 죽음을 통해 어렴풋 알게 되는 것도 있지만 시간의 흐름에 따라 뭔가 큰일 일 것 같았던 일도 지나고 보면 한 순간의 일렁임이라는 생각에 먼눈으로 인생의 시종(始終)을 함께 조망하게 된다는 점이다.

아마 대개의 사람들이 그런 경험을 하게 되리라. 매일 지나치던 나무도 어느 날 자세히 바라보게 되는 순간이 있음을. 그때 오롯이 혼자 바라보게 된다는 것을. 이때 우린 잊고 있던 한 존재에 대한 본질과 사랑을 느끼게 된다. 그는 삶과 죽음이 하나라는 걸 몸으로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인간의 삶도 그렇다. 그가 어떤 생을 살았는가는 말로 설명 되는 게 아니라 그의 몸과 손짓으로 평가되는 것이다. 붓다는 말로 가르침을 받을 수 없다고 했다. 말보다는 사물이 더 마음에 들며 말씀보다 행위와 삶이, 붓다의 손짓이 사상이나 책보다 중요하다고 설파하지 않았던가. 지식의 한계와 지혜의 무한성을 의미하는 대목일 게다.

미로에선 누구나 말이 아닌 몸으로 길을 찾아간다. 이것이 인생미로의 본질일 거라는 생각이다. 그러고 보면 미로화단에서 만났던 각양각색의 몸짓은 바로 우리 삶의 모습이 아니었을까 싶다. 더듬으며 갈 수 밖에 없는 길. 결국 흙에서 나서 흙으로 돌아가는 삶의 단일성을 깨닫기 까지 우린 그렇게 미로(迷路)를 더듬으며 갈 것이다. 머리보다 몸으로 오늘 하루를 사랑하며. 그것이 지혜로운 삶을 사는 첫 걸음이라는 생각을 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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