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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란

늦가을 들녘에서 한 무리의 배추들을 보았다. 여럿인 듯 홀로인 듯 그러나 푸렁 푸렁한 배추들.11월에도 꽃이 필 수 있다는 듯 제 삶의 한창을 건너고 있다. 배추들의 푸른 이마엔 금줄 같은 머리띠 하나 묶고 있다. 빈구석 없이 꽉 찬 배추가 가득 채우고 있는 들판은 푸른 꽃밭이다. 배추는 그 자체가 여러 겹의 꽃잎으로 싸인 한 송이 소박한 꽃과 다르지 않아 보인다. 11월에 생의 한창을 건너는 푸른 농작물을 본다는 것은 가슴 차오르는 일이다.

해마다 이맘때쯤이면 김장을 하기 위해 배추를 산다. 현관에 쌓은 배추를 안아 베란다로 나른다. 배추를 나르며 오래 전 처음으로 배추를 가꿨을 때의 기억이 되살아난다. 첫 해는 농사가 뭔지 배추가 뭔지 몰랐다. 왜 배추를 묶어야 하는지 언제 묶어야 하는지 모르고 그저 심고 물만 잘 주면 되는 줄 알았던 초짜였다. 그래서인가 볏짚으로 배추를 묶던 날의 해프닝은 추억처럼 남아 있다. 한 포기라도 안아야 묶을 수 있다는 걸 알기 까지 시간이 지나야했다. 그런 시간 속에서 적절한 시기에 묶어주어야 속이 더 꽉 차기 때문이란 걸, 속잎이 노랗게 모이고 햇살 넓은 잎들도 중심을 향해 서기 시작 할 때가 적기임도 알게 되었다.

배추가 중심이 서기 시작하면 가을은 조금씩 더 겨울 쪽으로 기울며 싸늘해지기 시작한다. 농부는 배추의 그 때를 알아 상체를 묶어주며 생의 동반자가 된다. 결 재운 볏짚이지만 배추 잎을 그러모아 지그시 배추의 이마에 볏짚을 두르는 농부의 마음도 결 재운 볏짚처럼 잘 삭아 있다. 배추를 끌어안는 농부의 마음에서 삭지 않고 남아 있는 뻣뻣한 힘줄이나 옹이를 찾아 볼 수 없다. 그것은 말 그대로 대지적인 모성의 전형이다. 그러고 보면 부드러운 마음 몇 가닥의 힘이 참 놀랍지 않은가. 배추도 중심이 서야 배추가 되는 것이다. 어찌 보면 인간에게도 배추에게도 삶은 중심을 잡아가는 끊임없는 과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배추를 가꾸는 일 역시 농부의 삶을 통해 마음을 통해, 중심과 정성, 겸허와 모성 안쪽과 깊이를 울림을 새로이 체험하게 하는 생의 지극함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하게 된다.

김장을 한다. 배추는 김치가 되기 위해 5번 죽는다는 말이 있지만 두 번째 죽음 앞에서도 그의 안쪽은 언제나 신비롭고 매력적이다. 허름한 배추의 겉껍질을 벗기고 안으로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진경이 펼쳐지니까. 점입가경이란 말은 이런 경우를 두고 써도 될 것 같다. 그런 배추의 속을 환하게 열었을 때 고갱이의 노란 빛깔은 내게 늘 감탄의 말을 쏟아내게 한다. 더구나 배추가 절여져 몸속에 남아 있던 속기를 털어버리고 눈부시게 하얀 몸이 되어 채반에 정갈하게 누워있을 때 그 모습은 얼마나 탈속적이며 또 한편 얼마나 관능적인가.

이제 배추는 다른 생, 존재로 다시 태어날 것이다. 속기 털어낸 배추에 양념을 넣는다. 푸른꽃잎을 아래부터 한 장씩 열어가노라니 붉은 꽃잎이 되었다. 붉고 고운 색으로 몸을 물들인 김장김치다. 배추의 화려한 부활인가. 푸렁푸렁 했던 배추가 결이 삭아지고 모든 것 내려놓은 하심(下心)처럼 아름답다. 헌데 그 모습이 한 존재의 생명의 상징처럼 느껴짐은 왜일까.

매운 고춧가루와 양념, 젓갈로 버무려진 그의 몸이 차곡차곡 통속에 담긴다. 배추는 맵고 짠 아픔 속에서도 인내하며 묵언의 기도처럼 모든 것들을 품으며 익어갈 것이다. 배추엔 중심이 있으니까. 그 중심에 정성과 사랑, 겸손이 배어 있으니까. 그게 배추의 마음일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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