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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란

수필가

봄비가 오는 줄도 모르고 있었다. 그걸 귀띔 해준 건 베란다 홈통에서 똑똑 떨어지는 물소리였다. 이럴 때 마다 내 안에서 질러대는 소리가 있다 "빗소리를 흠뻑 듣고 싶다" 밀폐된 공간에서 두꺼운 유리문까지 닫고 있으니 바로 들릴 리 없다는 걸 알지만 그렇게라도 답답함을 질러보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소리가 내개서 멀어진 게 아니라 내가 아파트로 달아난 꼴이 되고 말았다. 그러나 별도리가 없다. 이럴 땐 얼른 일어나 베란다 창을 열어젖힌다.

빗소리를 듣고 있으면 문득문득 양철지붕 집에서 살았던 기억들이 되살아난다. 불편한 점도 있었지만 그 지붕아래서 자랐고 행복한 성장기를 보냈다. 그 중에서도 잊지 못하는 건 양철지붕에 떨어지던 빗방울 소리다. 우르르 쾅 번쩍번쩍 하늘이 갈라지는 듯 요란해지면서 갑자기 굵고 거센 비가 폭포처럼 쏟아 질 때면 엄마야 소리치며 이불 속에 숨었다가 그만 잠이 들었던 기억. 그윽한 봄밤, 빗소리를 들으며 알 수 없는 곳을 향해 그리움이란 글자를 끄적이던 사춘기 시절도 있었다. 빗소리는 그렇게 나를 적셨고 마음의 위안과 정서의 안정을 안겨 주었다.

봄비 머금은 천지가 촉촉하다. 4월, 활짝 핀 꽃나무에서도 비바람에 흩어지는 꽃잎에서도 초록으로 물 드는 저 산야도 모두 봄비가 내린 축복일 게다. 봄비. 씨앗. 나무 꽃 이런 생각을 하다 불현듯 어머니 생각이 난다. 그토록 심고 가꾸는 걸 좋아하시던 어머니는 노환으로 많이 편찮으시다. 작년까지만 해도 간신간신 허리를 구부리며 씨를 뿌리셨는데 올해는 멍하니 밖만 바라볼 뿐 손을 아주 놓으신 것 같다. 게다가 얼른 죽어야지를 되뇌신다. 속상한 마음에 엄마가 기른 아욱이 제일 맛나다며 보채듯 달래 듯 쓰다듬어 드리지만 어쩐지 어머니는 손사래만 치신다. 가늘게 떨리는 야윈 손가락에서 어머니가 지니셨던 생명의 힘을 생각한다.

봄비가 내리면 어머니는 채소 가꿀 생각에 텃밭을 서성거리셨다. 파종 시기가 다가온 것이다. 어머니는 찬장 서랍에 보관했던 씨앗봉지를 꺼내셨다. 봉지에는 열무 시금치 상추 아욱 쑥갓 옥수수 온갖 이름이 씌어있다. 어머니는 중얼중얼 읽으면서 시원찮은 씨앗이 있는지 하나하나 확인을 하신다. 비가 그치고 나면 본격적인 일이 시작된다. 돌을 걷어내고 흙을 골라 고랑을 파고 둔덕을 만들어 씨를 뿌리고 가꾼다. 그리고 몇 차례 비가 지나고 나면 자그마한 공간은 푸름으로 가득하다. 그들이 시퍼런 잎을 달고 올라오면서 쑥쑥 자라는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셨는데. 주인의 발길이 멀어진 텃밭은 적막강산이다. 어머니에게 텃밭은 주는 기쁨이며 놀이터며 생명의 터였을 텐데. 그런데도 어머니는 자꾸만 누우신다. 봄비는 내리는데.

갓 피어난 새순들의 연한 푸름은 꽃의 붉음보다 아름답다. 진초록위의 연초록이란 청순한 이미지는 화가들조차 잘 그려낼 수 없는 그린 색의 난해함이자 우리들 가슴속 깊은 곳을 선연하게 만들어 주는 청량제이다. 이런 일들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아무도 모르게 봄비가 한다는 것을 나는 안다. 사람세상도 그러하지 않을까 싶다. 봄비 같은 삶이란 누구든 봄비가 지난 한참 후에라야 제 가슴이 누군가의 손길에 의해 적셔졌다는 걸 깨닫게 하는 것이 아닐까. 40년 전이나 지금이나 봄비소리는 여전히 소리 없이 내리 듯. 그때나 지금이나 조용이 생명을 일으키고 기르듯.

어머니의 푸른 꿈이 피어나던 텃밭에도 봄비가 내리고 있을 것이다. 만산엔 여기저기 꽃이요 푸르러 가는데. 이맘때쯤이면 파란 마늘 싹이 쏘옥 올라오고 연둣빛 상추가 이쁘게 잎을 달았을 터이지만 어머니는 현관문 나가기가 겁나신단다. 어떻게 해드려야 어머니를 일으켜 드릴 수 있을지. 전화 속 어머니는 자식목소리가 봄비인 듯 정답기만한데. 봄비가 되지 못한 나는 뭐 잡숫고 싶으냐는 소리만 한다. 봄비는 내리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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