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기사

이 기사는 0번 공유됐고 0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홍성란

수필가

장롱 깊숙한 곳에서 향수(香水)병이 나왔다. 기억을 해보니 4년 전 여행길에서였다. 그날 향수가게에서 지인이 건네는 장미향에 취해 충동구매 했던 것. 가만히 향을 맡는다. 아직도 향이 살아있다. 은은하면서 고혹적이다. 장미향이 코를 통해 몸속으로 이윽고 폐부까지 들어차 오른다. 이내 향에 빠져드는 기분이다.

향수(香水)라는 단어는 라틴어로 통해서(through)를 의미하는 'per' 와 연기(smoke)에 해당하는 'fumus'에서 유래된 것이다. 향수의 기원은 8000년도 더 전에 종교적인 의식을 치르는 동안 향을 피웠던 것에서 비롯되었다. 그러니까 향수는 오래 전부터 인간의 역사와 함께 있어왔고 현재는 미국에서 연간 10억불에 이르는 거대한 사업의 주인공이 될 만큼 우리의 일상에 깊숙이 자리하고 있다. 향수는 휘발성이면서 흡인력이 강하다. 강한 만큼 치명적일 수도 있다.

향(香)에 미쳐 향 하나로 세상을 치명적인 상태로 만든 소설 속 사나이가 떠오른다. 작가 파트리크 쥔슨킨트의 소설 '향수'의 주인공 장바티스티 그루누이이다. 천재적 후각을 가지고 태어난 사생아 그루누이는 그 자신 냄새가 없었다. 그런 그가 사람냄새를 담아 향수를 만들다니 얼마나 아이러니한 얘기인가. 살 냄새가 없는 무취인이 어느 날 맡게 된 매혹적인 여인의 향을 소유하고픈 욕망에 향수제조사에 들어가 최고의 향수를 만들지만 그에 만족치 못한다. 그는 다시 연구를 하면서 25명의 여인을 살해 종내는 그가 소유하고 팠던 여인의 향기를 닮은 향수를 만든다.

그가 만들었던 향수의 재료는 놀랍게도 인간의 땀 냄새, 머리의 기름 냄새, 어떤 기관에서의 비릿한 냄새 옷에 남아있던 냄새 등 이런 것들을 자신만의 비밀 방식에 의해 향수를 만든 것이다. 그러나 그의 최후는 어떻게 되었던가. 이 책의 마지막 부분은 독자로 하여금 끔찍하다 못해 무서운 향수의 치명성을 드러낸다. 무취의 인간이 진정한 사람냄새를 알 수 있었을까. 외톨이에 타인과의 소통을 시도하지 않은 그는 최고의 향수제조사 이기 전에 살인자였다. 그는 생명을 향수라는 물질과 동일시 한 것이다. 오직 자신의 욕망을 충족하기 위한 살인 작업에 집착했을 뿐이다. 욕망이라는 향수를 얻었지만 욕망의 향수에 의해 결국 자취도 없이 사라진다.

"삶에는 나병처럼 고독 속에서 서서히 영혼을 잠식하는 상처가 있다. 하지만 그 고통은 누구와도 나눌 수 없다" 작가 사데크 헤다야트(Ṣādeq Hedāyat)의 인간실존 부조리에 대한 한 구절이다. 눈먼 부엉이라는 책에서 헤다야트가 주로 다룬 테마는, 카프카나 베케트와 마찬가지로, 불가피하고 불가해한 인간 존재의 좌절과 몰락이다. 여기에 인간의 욕망은 중요한 변인의 요인임에 틀림없다. 어찌 보면 보이지 않고 잡을 수 없는 욕망이라는 향기가 물질에만 있는 게 아닐 것이다. 제사에만 엄숙하게 사용되었던 향이 문명사회에 이른 지금은 도처에 욕망의 한 부분으로 변질되어 있다는 점이다. 물질적 욕망보다 더 위험한 게 정신적 몰락 아니겠는가. 어떤 것이든 그럴 것이다. 가벼운 즐김이 집착으로 이어진다면 욕망은 치명적인 향수가 될 것이니 말이다.

향수(香水)병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향기는 잠시 머물다 사라질 것이다. 향기가 사라지면 이 방안에서 맡게 되는 냄새는 사람냄새이다. 사람냄새는 똑 같을 수도, 만들 수도 없다. 이에 비해 향수는 얼마든지 똑같은 순도의 향을 만들어 낸다. 그렇다면 사람에게는 냄새만 있고 백합 같은 향이 없다는 말인가. 분명히 사람에게도 향기가 있다. 마음의 덕음 질을 통해 피어나는 따듯하고 정겨운 사람의 향기다. 사람냄새가 사람에게는 최고의 향수라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 기사에 대해 좀 더 자세히...

관련어 선택

관련기사

배너
배너
배너

랭킹 뉴스

Hot & Why & Only

실시간 댓글

배너
배너

매거진 in 충북

thumbnail 308*171

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김진현 ㈜금진 대표이사

[충북일보] 독일의 생리학자 프리드리히 골츠의 실험에서 유래한 '삶은 개구리 증후군(Boiled frog syndrome)'이라는 법칙이 있다. 끓는 물에 집어넣은 개구리는 바로 뛰쳐나오지만, 물을 서서히 데우는 찬물에 들어간 개구리는 온도 변화를 인지하지 못해 결국 죽는다는 뜻이다. 올해 창업 20주년을 맞은 벽지·장판지 제조업체 ㈜금진의 김진현 대표이사는 현재 국내 중소기업을 이에 비유했다. 서서히 악화되는 경기를 알아채지 못한다면 결국 도산에 직면한다는 경고다. 충북에서는 유일하게 지난해 중기부의 '존경받는 기업인 10인'에 선정된 김 대표를 만나 현재 중소기업이 처한 상황을 들었다. ◇청주에 자리 잡은 계기는 "부천에서 8남매 중 7째 아들로 태어났다. 공부를 하고 있으면 선친께서는 농사일을 시키지 않으셨다. 의대에 진학해 의사가 되고 싶었다. 슈바이처를 존경했고 봉사활동을 좋아했다. 인천고등학교를 다니면서도 인하대학교가 어디에 있는 지도 몰랐다. 의대에 원서를 넣었지만 떨어졌고, 평소 수학과 화학 과목에 소질이 있는 것을 알고 계셨던 담임선생님께서 인하대에 원서를 써 넣어 주셨다. 인하대 화공과에 장학금을 받고 입학한 뒤에도 의대 진학에 대한 미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