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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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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장의 종이에는 하나의 결정체로서의 시간들이 들어있다. 그 속엔 사각사각 스쳐가는 바람의 시간들과 사각사각 아름답던 나무의 시간들이 있다. 그런가하면 한 불안한 결정체로서의 시간들도 있다. 사각사각 바스러지는 시간들, 사각사각 무너지는 시간들의 소리, 뜨거운 물속에 자신을 던져버린 시간들이 그를 지나갔다. 그러는 사이 사회가 획, 역사가, 문명이 휙 휙 지나간다. 전생의 나무로 살았던 그 시간들 위로 또 다른 시간이 사각사각 지나간다.

괴산군 옛 신풍분교에는 한지박물관이 있다. 박물관에는 여러 종류의 한지들이 색깔, 두께, 디자인, 용도별로 다양하게 전시되어 있다. 한 켠에는 한지의 역사와 제작과정, 미래에 대한 상세한 설명이 있다. 이 박물관이 여늬 박물관과 다른 점은 전시만 하는 게 아니라 이곳 신풍에서 생산되는 닥나무를 채취해서 한지를 생산하고 있다. 또한 대(代)를 이어 시작에서 완성까지 모두 99단계의 수작업으로 이뤄지는 전통한지의 맥을 잇고 있는 장인이 있다는 점이다.

한 그루의 나무로 한 사람의 장인이 종이를 만들기 까지 과정을 보면 왜 한지가 부드러우면서도 강인하고 치밀하면서도 정교한지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어느 날 갑자기 몸이 꺾이고 부러지던 날, 나무는 그것이 죽음이란 걸 인정 할 수 없었다. 바로 좀 전까지도 바람소리, 새소리에 행복했던 자신이 아니었던가. 껍질 채 벗겨지고 양잿물에 몸이 잠기고 뜨거운 물에 곤죽이 되었을 때 나무는 남자의 손에 의해 또 다른 세상으로 가고 있음을 느꼈다. 그리고 언제부턴가 한 영혼이 자신에게로 들어와 한 몸이 되었음도 알았다. 남자는 혼신을 다해 정성을 기울였다. 두 영혼은 힘듦 속에서도 바람과 새소리를 담았다. 때론 들판에 누워 하늘과 구름을 바라보았다. 때론 흐르는 개울물에 아직도 남아 있는 집착의 티끌과 욕심을 씻어냈다. 사각사각 고난의 시간이 지났다. 이제 나무는 하나의 결정체인 새로운 생명체로 다시 태어났다.

오랜 세월 한지의 품질과 이용은 발전을 거듭해 우리 민족의 삶 속에 깊이 자리하여 밀접한 관계를 맺어왔다. 한지의 역사를 보더라도 삼국시대로 부터 조선시대까지 상당한 수준으로 발전했었다. 승려 담징과 고선지 장군이 일본과 서방에 전할 만큼 우리의 제지기술은 우수했다. 현존하는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의 경우, 두루마리에 정교한 인쇄술은 천년이 넘는 세월을 넘어 보존되고 있다. 한지의 특성과 선조들의 뛰어난 기술이 이뤄 낸 민족의 저력이요 역사가 아닌가. 그런 우수한 한지가 서양문명이 들어오면서 사양길로 들어섰고 지금 우리 관심에서 멀어지고 있다. 물론 시대적 공간적 변화의 이유가 있겠으나 전통은 구식이요 복잡하고 힘들다는 물질적 계산에 빠져 쉽고 빠른 새로운 문명에만 기웃거리고 있는 건 아닌지.

수많은 외침(外侵)속에서도 지켜낸 전통이다. 옛이 있기에 새로움을 창조하는 것, 전통은 역사요 자존심이며 영혼의 내림이다. 단지 기술이나 방식을 계승하는 게 전통은 아닐 것이다. 옛것을 잇는다는 건 민족의 정신을 계승한다는 거다. 그런 의미에서 어려운 환경에서도 묵묵히 전통의 맥을 이어가려는 분들에게 관심과 격려의 박수를 보낸다. 시간은 사각사각 지나간다. 사회가 문명이 역사가 휙휙 지나간다. 전통 없는 민족은 단명할 수밖에 없다는 걸 잊지 말자. 법고창신(法古創新) 그것이 도도한 역사의 강물을 흐르게 하는 우리들의 도리일터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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