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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란

수필가

 시간이 저렇게 됐나? 벌써 저녁이네라는 뇌의 인식과 동시에 떠오르는 명제는 저녁에 뭘 해 먹지이다. 아마 대개의 주부라면 겪게 되는 매일 명제요 일상의 한 부분이리라.

 이때부터 뭘 해 먹지의 밥상고민은 시작된다. 그런데 아이러니 한 것은 날마다 때마다 고민 아닌 고민을 반복하며 수 십 년을 살아왔다는 점이이요 더 아이러니 한 것은 수십 년 똑 같은 고민을 하면서도 징그럽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 것은 왜일까.

 우리 집 밥상 메뉴는 특별한 날을 제외하곤 거의 비슷하게 차려져 왔다. 혹자는 음식솜씨가 별로거나 머리가 잘 돌아가지 않는다고 해도 딱히 항의할 반박거리가 없긴 하다.

 그러니 시장이나 마트에서 장을 볼 때도 장바구니에 담겨진 식재료는 낯익은 야채 또는 생선 등으로 채워지게 마련이다. 물론 같은 재료라 해도 텀(term)을 두고 상에 올린다. 아무리 둔하다 해도 같은 음식을 연거푸 올리지는 않으니까 말이다.

 습관처럼 냉장고를 연다. 물김치가 한 사발 쯤 남았고 배추김치와 깻잎, 오징어채 두부조림 콩조림이 있다. 밑반찬은 되는데 국거리 재료가 무 한 개 밖에 없다. 날이 썰렁하니 뜨듯한 걸 먹이고 싶은 마음에서다.
 이어 냉동실을 연다. 소고기 한 덩이, 건 멸치 한 봉, 찹쌀이 있다. 이리저리 뒤적여도 마땅치가 않다. 어떻게 할까. 찬거리를 봐올까 생각하니 힘든 것도 힘든 거지만 저녁나절 나가기가 귀찮다. 오늘은 남은 재료로 해야겠다는 생각을 굳힌다.

 그러다 김치 냉장고 야채실을 들춘다. 이런 상자에 더덕이 남은 게 아닌가. 시누이가 강원도에서 부쳐온 토종 더덕이라 마르지 말라고 상자 채 두었었다. 그래 오늘 저녁은 소고기 뭇국에 더덕무침으로 결정했어.

 작업에 들어간다. 얼은 소고기가 녹기를 기다리는 동안 무를 납작납작하게 썰어 놓고 대파도 길이로 잘라 무 길이만큼 썰어놓는다. 어느 정도 칼이 들어갈 만큼 녹은 소고기를 먹기 좋은 크기로 썰어 불에 올린다. 참기름을 두르고 소고기를 볶는데 전체적으로 색이 변할 무렵 썰어놓은 무를 같이 볶다가 물을 넣고 익힌다.
뭇국이 끓는 동안 더덕무침을 준비한다. 먼저 양념장을 준비한다. 다음 더덕을 뜨거운 물에 살짝 데친 다음 껍질을 벗기고 칼 손잡이 둥근 부분으로 두드리고 더덕을 찢어놓는다. 그 위에 준비한 양념장을 얹어 조물조물 무치면 끝이다. 입안에 퍼지는 더덕향이 젓가락을 분주하게 하겠지 생각을 하니 왠지 기분이 좋다.
 소고기뭇국과 더덕무침 그 외 밑반찬 몇 가지를 저녁상에 올리려 한다. 이제 직장에서 돌아올 딸아이가 시원하고 뜨듯한 뭇국을 먹으며 하루 동안 직장에서 받았을 피곤과 스트레스를 조금은 날릴 수 있겠지 라는 생각에 딸아이가 기다려진다.

 생각해보니 이렇게 음식을 해 놓고 기다리고 맞이했던 시간들이 꿈처럼 흘렀다. 주부에게 가족을 기다린다는 건 운명적 숙명적인 일일 게다. 그 기다림이 시간이 지날수록 사랑스럽고 행복한 일이라는 걸 아이들이 독립을 하면서 더 절실하게 다가왔다.

 돌아보면 날마다 때마다 차려야 하는 밥상인데 어찌 매일 즐겁기만 했을까. 때론 한없이 해주고 싶어도 경제적으로 어려워 한계에 이르기도 했고 때론 귀찮을 때도 많았다. 그럼에도 날이 밝으면 언제 귀찮았었나 싶게 오늘은 뭘 해먹지로 돌아온다는 건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자식과 남편, 또는 누군가를 위해 음식을 한다는 것은 여자의 삶을 명랑하게 한다. 그러니까 뭘 해먹지라는 것은 습관적 고민이 아닌 행복한 고민에 속하는 것이리라. 사실 이 시간들이 길지가 않다. 이 고민이 모두 사라진 어느 날 우린 어떤 고민을 하게 될까. 그렇게 생각한다면 이 순간 이 시간들이 이 고민을 한다는 지금이 얼마나 소중한가. 이 소중한 시간을 즐겁게 맞이하며 살고 싶다. 삶에서 중요한 것은 매일 반복되는 이 반복 자체에 있지 않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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