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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란

수필가

다람재에서 내려다보이는 도동서원은 한 폭의 동양화를 연상케 한다. 서원 앞으로 낙동강이 흐르고 나지막한 산을 배경으로 길옆에 위치하고 있어 이웃마당에 들어가는 것처럼 자연스럽다. 400년 은행나무를 우러르며 발걸음을 옮긴다. 삐걱, 세월의 바람결에 닳은 문을 넘으려니 조신한 걸음걸이가 더욱 조심스러워진다. 나무로 수 십 년, 서원의 중문으로 수 백 년을 살아온 흔적이 고스란히 배어 있는 나뭇결이 울울하다

언제 비가 왔었냐는 듯 햇빛이 쏟아진다. 눅눅했던 서원 마당이 천지만물의 음양이치를 알리는 듯 금세 빛과 그림자의 자리로 나눠지고 흙 담장 위로 붉게 핀 목백일홍이 찬란하다. 늘 그렇지만 서원을 들어설 때면 숙연해져 마음을 여미게 되고 저절로 다소곳해진다. 성현의 위패를 모신 곳이어서 그렇기도 하지만 배움터에 대한 존경심이 일기 때문이다. 가만히 눈을 감고 옛 선비들을 그려본다. 어디선가 책 읽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고 자분자분 담론하는 모습도 어른거리는 것 같다.

시간이 되는 대로 서원을 찾아간다. 여기저기 서원을 돌다보면 그 시대 선비들의 고결함을 깊이 흠모하게 된다. 그러면서 서원 담 위에 피어난 노란 씀바귀꽃이며 세월의 풍상을 말하는 오래된 기와의 이끼를 보며 한유(閑遊)를 즐긴다. 나날의 삶이 다르듯 서원도 갈 때마다 새롭기는 매 한가지다. 오늘은 이처럼 아담하고 정겨운 도동서원 강당에 앉아 한나절쯤 앉아 있고 싶었다. 그러면 속진으로 찌든 마음이 깨끗이 씻길 것만 같았다. 툭 트인 강당 마루 너머로 내삼문의 문양이 환하다. 내삼문과 사당으로 오르는 돌계단이며 지붕이 유난히 야젓하고 아름답다. 무딘 듯 반듯한 맞배지붕의 겹처마는 선현의 기개와 올곧음을 보여주는 듯하다.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에도 훼철되지 않은 도동서원은 한훤당 김굉필(金宏弼)선생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고 배향(配享)하는 곳이다. 스스로를 소학동자라고 할 만큼 평생 소학(小學)을 독신하고 모든 처사를 그것에 따라 행하였다한다. 유배지에서도 끊임없이 학문을 닦고 제자를 양성하며 배움을 철저히 실천했던, 권모술수 없는 세상을 꿈꾸던 자연인이다. 선생을 생각하다 문득 오래 전 외가댁이 떠오른다. 너른 마당, 높은 안채로 오르는 계단이며 사랑채에서 글을 읽던 외할아버지의 목소리가 그립다.

강당(講堂)인 중정당(中正堂)에서 내려가는 돌계단을 딛는다. 높고 가파르니 오르내리기가 불편하다. 자칫 곁눈질을 하다가는 발이 헛나가 곤란해 질수도 있다. 특히나 돌계단의 폭이 좁고 돌이 작아서 여간 조심스러운 게 아니다. 고개를 숙이고 한 발 한발 천천히 발걸음을 옮긴다. 몸의 균형과 마음이 한 가운데로 집중이 된다. 그런가하면 환주문의 돌 문턱이나 보물인 흙 담장, 중정당 기단의 조각보 같은 돌조각도 예사롭지 않다. 생긴 대로의 모양을 살리되 생명을 불어 넣었다. 자연과 공간의 아름다운 조화다. 왜 자연을 강조했을까. 연유가 있으리란 생각에 더 가까이 다가간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고 하지 않던가. 모양도 의미도 오래 자세히 봐야 알게 되고 사랑하게 된다는 말을 생각하는 때문이다.

한 꽃이 백일을 아름답게 필 수 없듯 삶도 거듭나고 거듭나야 되나보다. 아무리 훌륭한 학문과 사상이라도 배움에 따른 실천이 따르지 않으면 맹탕의 삶이 아닌가. 사랑과 정성으로 깨달음을 유도했던 서원의 모든 것들이 오래도록 잊히지 않을 듯싶다. 가파른 계단 좁은 문에서 돌 문양과 담장에서 자연과 인간의 조화, 겸손과 음양의 이치를 생각한 시간이다.

함께 오지 못한 친구에게 문자를 보낸다. 여기 도동서원이여 목백일홍이 한창이여. 수없는 꽃이 지면서 다시 피고, 떨어지면 또 새 꽃봉오리가 피더라고, 그것이 꽃이 인간에게 전하는 하심(下心)같더라고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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