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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란 작가

산길은 여전히 구불구불하다. 그 굽은 길을 봄 햇볕 속에 걷는다. 가끔씩 부푼 땅을 밟으면 '푸석' 꺼진다. 봄의 흙이라 헐거운 것이다. 산비탈 경작지의 흙도 봄볕 속에 부풀어 있다. 봄볕 스미는 밭들의 누렇고 붉은 색은 봄이 펼치는 색깔 중에서 가장 깊어 보인다. 밭두렁은 사람의 등처럼 허리처럼 굽어있다. 얼었던 봉분도 햇볕이 땅속으로 스며들어 흙이 얼고 녹음을 반복하면서 부풀어 있다.

아버님 무덤 아래 저만치에 있는 자그마한 밭을 바라본다. 봄볕이 두터워지면 해 뜨기 전 아버님과 어머님은 저 밭으로 달려오셨다. 부풀어 오른 보리밭을 밟아주기 위해서이다. 겨울을 밭에서 나는 보리는 초봄 흙들의 들뜸에 조마조마 해 한다. 한창 자라날 무렵에 헐거워진 흙들이 뿌리를 꽉 껴안아 주지 않아서이다. 때문에 부풀어 오르는 흙을 눌러놓기 위해 두 분은 봄이 지날 때 까지 새벽마다 종종걸음을 치셨다.

일상이 그렇듯 눈만 뜨면 밭으로 달려가서 해가 저물어야 돌아오셨던 아버님. 평생 흙을 주무르며 5남매를 키워내셨다. 당신 평생일터는 밭이었고 목숨처럼 사랑했던 것은 흙이다. 가난으로 시작 된 헐벗고 남루한 삶 속에서도 당신이 믿고 의지할 것은 흙 밖에 없었다고 말씀하셨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15년이 지났다. 아버님에게서 흙은 무엇이었을까. 다른 기회가 있었음에도 일생동안 땅을 떠나지 않았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사실 냉정히 말하면 흙은 인간에게 사랑과 고난을 주었다. 굳이 아담과 이브의 얘기를 들추지 않아도 신이 인간에게 내린 삶의 무게는 간단치 않아 보인다. 오죽하면 신이 흙으로 인간을 빚었음에도 흙을 하느님의 몫이 아닌 인간의 몫으로 내려주셨을까. 어찌 보면 흙은 신이 내린 고난의 실험장인지도 모른다. 한 줌의 흙을 주물러야만 경작지가 되는 까닭에 녹녹치 않은 삶의 연장선이다. 그럼에도 농부들은 누구보다 더 흙을 잘 사랑하려한다.

흙의 언어는 흙을 주무르는 사람만이 알아들을 수 있다. 흙에게 말(言語)은 소통방법이 될 수 없다.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지고 발걸음으로 대화를 나눈다. 그것이 흙과 인간의 소통방식이다. 진정한 농부의 사랑은 죽어서도 오직 흙의 품이다. 사랑도 시시한 사랑이 아니다. 전력투구, 그 곁에서 그를 위하여 그가 원하는 것을 아낌없이 들어준다. 그것도 영혼이 쇠퇴할 때 까지 말이다. 설사 자신의 사랑이 받아들이지 않더라도 그를 원망하거나 돌아서지 않는다. 내 정성이, 사랑이 부족함만을 생각한다. 그게 농부의 흙에 대한 사랑법이다.

이제 한평생 밭을 일구던 두 분은 그 밭 속에 누워있다. 평생을 주무르던 흙이 두 분을 품고 있다. 흙이 당신의 생명이었던 아버님이 흙으로 돌아와 내 앞에 서 있다. 한 줌의 흙을 쥐어본다. 흙과 내가 하나가 되어 또 하나의 시간이 된다. 따듯하고 부드럽다. 흙 속에 죽은 벌레의 껍데기와 살아있는 것들이 고물거린다. 생과 사가 흙속에 있다. 흙은 불멸이 되어 눈짓한다. 아버님이 왜 일생을 바쳐 흙을 사랑하셨는지를.

누구든 4월에 들판을 걸어보면 알게 되리라. 봄 농사를 준비하는 농부의 발걸음에서도, 봄의 흙속에서 올라오는 새파란 것들에게서도 4월은 결코 잔인한 달이 아니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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