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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란 작가

넉넉한 뚝배기에 엷게 된장을 풀어 끓인 냄새가 온 집안을 진동한다. 흙 내음과 냉이 내음이 온 집에 퍼진다.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는 뜨거운 김 속에 줄무늬 모시조개들이 국속에서 입을 벌리고 있다. 나무 수저를 넣어 휘저어본다. 새파란 염록소 잎이 된장의 흙 빛 속에서 생명처럼 파닥이고 있다. 마침 직장에서 돌아온 딸아이가 '냉이국'이라며 좋아라 한다.

향긋한 봄내음이 된장과 어우러져 침샘을 자극한다. 국 한 모금이 몸과 마음속에 새로운 천지를 열어주는 듯하다. 한 숟갈 한 숟갈, 숟갈 위에 얹어진 냉이 국이 혓바닥에 닿으면서 국물 속에 숨어 있던 눈물이 생각난다. 아무리 혹한의 겨울이 아니었다 해도 겨울은 겨울이 아닌가. 언 땅을 헤치고 나온 냉이의 눈물과 몸속으로 봄의 흙냄새가 자욱이 퍼지면서 혈관을 따라 마음의 응달에도 봄풀이 돋아나는 것 같았다. 마음에 돋아난 봄풀은 새파란 생명이 되어 자신을 지켜낸 뿌리와 운명적으로 다가온 된장을 생각케 한다.

냉이는 된장 속에 자신의 몸을 태운다. 이때 된장의 친화력은 크고 깊다. 된장의 친화력은 이중적이다. 된장은 국속의 다른 재료들과 잘 사귀고 그 사귐의 결과 인간의 안쪽으로 스민다. 실제 된장의 근원은 작은 콩 알들이었다. 한 알의 콩이 자라도록 그를 키워준 건 뿌리와 흙이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사람이 흙을 떠나서 살기 어렵 듯 친화의 공통이유는 존재 방식에 있을 것이다. 식물학자들의 말에 의하면 뿌리들이 땅 속 깊이 자리 할 때는 동물들이 자신의 휴식처를 찾듯 땅 깊이 있는 흙을 찾아 미로를 헤맨다고 한다. 말없는 식물 더구나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뿌리들의 생명력은 대단하다 못해 눈물겹게 위대하다. 냉이를 캐다보면 뿌리가 생각보다 길고 깊게 흙 속에 내려 있음을 안다. 뿌리의 강인함이 흙냄새를 빨아올리고 푸른 염록소의 기쁨을 살아있게 함이리라.

그러고 보면 식물의 뿌리는 상상보다 길고 강건하다. 50센티 자란 호밀의 뿌리에 대한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이것 한 포기에는 140억개의 실뿌리가 있다한다. 실뿌리는 육안으로 안 보이는데 모두 이으면 1만6천 킬러미터 정도로 남극과 북극을 이을 수 있다. 이 뿌리들은 흙으로부터 기초 영양소를 만들고 잎은 그 영양소를 받아 우리가 아는 탄소동화작용을 한다. 식물 잎 뒷면엔, 100만개의 공기구멍이 있고 식물들은 이를 통해 사람과 동물이 호흡할 때 필요한 산소를 내뿜는다. 그런데 땅속에 뿌리를 뻗어가는 이것 한 한포기는 타자를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모든 생명은 자신의 완성을 위해 부단히 진화해 나가고 저마다의 그 노력이 다른 생명과 지구 환경을 살리는 힘으로 연결된다는 것이다.

뿌리는 생명이며 생존의 지극함이다. 그들이 수천 수억의 뿌리를 만들어 갈 때 모두 성공할 수 있다는 보장은 없다. 그러나 뿌리는 실패하면서도 제 능력을 극한까지 밀고 가며 한 발자국씩 앞으로 나간다. 그래서 이런 생명성·도전의지를 우리는 영혼이라 부르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 하물며 60조 개의 세포로 이루어진 인간의 몸은 한 포기의 식물에 비하면 충분히 무한의 도전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지난 주, 알파고와 이세돌 9단의 바둑게임이 있었다. 이 문명게임은 놀람과 상상, 미래 방향의 물음을 남겼다. 하지만 분명한 메시지는 있었다. 바싹 다가온 디지털 문명 앞에서 어떻게 그들과 지혜롭게 융합할 것인가이다. 문제는 사람이다. 인간은 아날로그적 문명에 속한다. 사람은 영혼의 뿌리를 지녔고, 작동을 명령해야만 움직이는 디지털과 달리 스스로 뿌리를 키울 수 있는 차별성이 있다. 여기서 영혼의 뿌리란 생명성을 가리키며 생명성은 정과 마음인데 그것이 곧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희망의 뿌리요 주체라는 말이다. 그렇다면 어찌해야 하느냐. 식물의 뿌리가 수 억의 실뿌리를 땅 속에 내려 자신을 지켜내듯, 인간 역시 자신의 완성과 새 문명과의 동반을 위해 영혼의 뿌리를 키우는 적극적 노력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그것이 곧 사람의 긍지요 생명의 긍지가 아닐까. 결국 사람에게 궁극적인 것은 또 사람일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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