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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란 작가

우수가 엊그제 같은데 내일이 경칩이다. 해마다 정월엔 손 없는 날을 택해 장을 담근다. 항아리를 닦다가 몇 년 전 메주농원에서 만났던 버선이 떠오른다. 반질반질하게 닦은 장독에 금줄이 쳐 있고 불쑥 내민 배 위로 외씨버선이 거꾸로 매달려 있었다. 모양은 버선인데 흰색 종이다. 자세히 보니 버선을 만들기 위한 버선본이다. 그런데 그냥 멋으로 달아 놓은 게 아니다. 알고 보면 그 안에는 조상들의 깊은 지혜와 가족에 대한 사랑이 담겨 있다.

요즘엔 특별한 날에나 신게 되지만 버선은 옛 사람들 의복의 필수품 중 하나이다. 보통 무명으로 만드는데 버선의 테두리는 발목의 '부리'부분만 직선일 뿐 모두 곡선이어서 천을 모양대로 자르기 위해서는 본을 떠야한다. 대개 한지로 만든다. 이는 한지가 잘 찢어지지 않고 오래 보관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지가 귀한 시절엔 습자지 즉 글씨 쓰는 연습을 할 때 쓰는 얇은 종이로 만들어 쓰기도 했다. 여인들은 이 버선본을 가족 수 대로 준비 해놓고 버선을 지었다. 이 때 버선본을 보관하는 버선본집에도 정성스럽게 예쁜 수를 놓아 사용했다.

뒤돌아보면 오래 전 기억 속에서 본을 그리시던 어머니의 모습이 선명하다. 버선을 지으실 때면 장롱에서 버선본 꾸러미를 꺼내 밤늦도록 버선을 지으시던 어머니의 뒷모습. 어찌 말로 마음을 설명할까. 이미 종이 속에 사랑이 배여 있으니 어찌 잊을까. 버선본에는 부모와 자식에 대한 기원이 들어있다. 더구나 버선본의 재료인 한지도 그냥 한지가 아니지 싶다. 그 또한 만든 사람의 혼이 들어가 있으니 한낱 종이가 아닌 것이다. 어떤 이는 한지를 일러 숨을 쉰다고 말한다. 틀린 말이 아니지 싶다. 중앙박물관에 전시 된, 무술년 (1873)주영이라는 여인이 친정 부모님께 보낸 한 쌍의 버선본에서도 알 수 있다. 무려 140년 전 버선본임에도 아직도 짱짱하니 살아있는 것 같다. 무엇 때문일까. 한 장의 종이를 만들기 위해 수 십여 공정을 거쳐 공력과 정성으로 순전히 수작업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일 것이다. 오죽하면 한지를 백지라 불렀을까. 그만큼 정성이 들어간 종이기에 시간을 넘나들고 있는 건 아닐지.

설이 지났건만 잇따른 비극적 사건에 마음이 아프다. 내용을 드려다 보면 가까운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시작된 비틀어진 마음의 파탄이다. 오죽 했으면 하다가도 애정이 결핍된 가정의 자화상이란 생각에 닿는다. 물론 그에게 친친 감긴 암담함이 이해는 되나 생각할수록 안타깝기 그지없다. 자신이 서 있는 세상이 끄트머리 같지만 서 있으면 포근해지고 힘이 솟는 고향집 뒤뜰도 있는데….

그래서일까 버선본위에 한 자 한자 써 내려간 여인의 마음이나 장독에 버선본으로 잡귀를 쫒아 장맛을 좋게 해서 가족의 건강을 기원했던 우리네 조상들의 깊은 사랑과 지혜가 요즘 들어 더 그리워진다. 살아가는 일이 팍팍하고 등이 시릴 때 그것을 위안해줄 아무것도 없는 보잘 것 없는 세상을 그런 세상을 새삼스레 아름답게 보이게 하는 건, 사랑 때문 아닐까. 그 사랑의 뿌리를 내릴 수 있게 해 주는 원동력은 말 할 나위 없이 가정이란 본이지 싶다.

새싹이 돋아나고 봄소식이 여기저기서 들려온다. 자연이라는 질서가 본이 되었기에 가능했을 일이다. 하물며 사람이 살아가는 데 본이 없다면 혼돈을 가를 도리가 없지 않겠는가. 새학년, 새 학기를 맞는 어린 새싹들의 본은 어른들이란 걸 잊지 말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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