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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란

아니 살아있었네? 내 입에서 나온 첫마디는 놀라움이었다. 풀 속에서 살포시 고개를 내민 건 노란 상사화였다. 꼭 5년 만이 아닌가. 이런 나도 참 무심했다 싶다. 그간 얼마나 쓸쓸했을까. 그 때 그 자태 그대로 솟아 오른 여린 꽃대위에 애련한 듯, 수줍은 듯 외롭게 핀 꽃 한 송이. 시골집을 너무 오래 비워서 살아있을 거라 생각지 않았다. 미안함과 애처로움이 느껴진다. 연약한 몸으로 이파리 하나 걸치지 않고 서 있는 그에게서 한 여인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런데 이상하다. 세월이 많이도 흘렀건만 왜 유독 그녀가 떠오르는 걸까. 벌써 30년이 넘었나보다. 안개가 자욱한 밤이었다. 대전에서 청주 행 시외버스에 올랐다. 자리를 찾아 앉았는데 옆자리가 중년의 수녀(修女) 분이었다. 갸름한 얼굴에 눈이 맑았던 그녀는 흐려지는 유리창을 연신 닦으며 밖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었다. 밖을 보니 한 남자가 애잔한 눈빛으로 손을 흔들고 있다. 그녀의 눈은 축축하게 젖어 있었고 붉게 충혈 돼 있었다. 오사카에서 출생한 두 남녀는 어릴 때부터 마음을 주고받았던 사이였단다. 두 집안은 해방이 되어 귀국하는 바람에 서로 헤어지게 되었고 오랜 시간이 흐른 후 어찌어찌 소식은 알게 되었지만 그들의 만남은 어긋나기만 했던 것 같다. 그러다 30년이 지난 오늘에서야 만나게 되었다. 그녀는 주님께 마음의 죄를 지은 것 같다 했다. 그러면서 한 사람에 대한 그리움을 놓지 못한 여인이었노라고 했다.

어긋난 사랑 그것은 상사화의 전설을 닮아있다. 그녀는 상사화를 닮아있었다. 사랑은 언제나 상대방이 내게 혹은 내가 그에게 하나의 의미 있는 존재로 거듭나는 과정이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내 영혼이 그를 나의 존재의 세계로 불러들였을 때, 삶은 그 이전과 다른 의미와 빛깔을 갖게 되리라. 그러나 안타깝게도 서로가 서로를 그리워하지만 만나지 못한다면 그것은 한없는 그리움을 안고 살아가게 될 것이다. 한 사람만을 향했지만 인연을 맺지 못하고 종내는 종교에 귀의했던 여인. 그녀에게서 그리움이란 무엇이었을까.

한 사람을 그리워한다는 것은 갈꽃이 바람에게 애타게 몸 비비는 일이라고 한다. 저물녘 강물이 풀뿌리를 잡으며 놓치며 속울음으로 애잔히 흐르는 일이라고 어느 시인은 읊지 않았던가. 그리움은 대상이 누구든 사람 마음속에 자리한 아름다운 여백이다. 그리움으로 피어난 갈망은 어느새 짙은 열망으로 솟아 불꽃은 타오른다. 그러나 그와 나의 인연이 닿지 않음을, 함께 할 수 없는 지금을 견디지 못하고 불꽃으로만 타오른다면 그리움은 코끝을 스치고 마는 휘발성 그리움이 될 확률이 높다, 그만큼 그리움이란 단어가 가지고 있는 의미는 무직하고 순수하며 인내를 동반 할 때만이 진정한 사랑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사랑이 익어 그리움이 되는데도 시간이 필요하다 하지 않던가. 그리움이 시가 되고 음률이 되려면 한참의 발효기간이 필요하다. 발효된 그리움에서는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아련한 향기가 난다. 그 향은 자신을 위로 하는 힘이 되고 기다림이 은은한 향을 만들어 가리라는 걸 깨닫기 까지 많은 세월이 지나야 한다는 말이다. 지금도 그녀를 잊지 않고 있는 것은 어긋나기만 했던 인연 속에서도 몇 십 년 서로를 걱정하고 그리워하며 마음의 발효를 오랫동안 했다는 데 있다. 다시 말해 상대방을 위해 순수하고 간절한 기도를 해왔다는 점이다.

정은 맺기 어렵고 인연은 간직하기 어렵다는 말이 있다. 쉽게 만나 쉽게 헤어지는 현대 세태를 생각하면 여인이 지녔던 그리움은 한갓 사치스런 상상이나 멋스런 단어가 아니다. 그리움은 마음속 아름다운 여백이다. 그 여백을 어떻게 지니며 사느냐가 우리 인생의 고민이 아닐까. 우린 가끔 휘발성 그리움을 사랑이라고 착각하기도 한다. 그리하여 그리움이라는 이름으로 집착한다. 휘발성 그리움이 떠 도는 요즘, 꽃 한 송이에서 진실한 사랑의 의미를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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