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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란

수필가

오랜만의 미술관 나들이다. 어두운 실내 그 공간에 단 하나의 조각만이 서 있다. 하지만 그 조각은 그 큰 공간을 존재로 가득 채우고 있었다. 사진으로만 보았던 자코메티(1901~1966)의 대표작 '걸어가는 사람'이다.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침묵 속에서 그에게로 다가간다. 툭 건드리면 쓰러질 것 같은 바짝 마른 몸. 작은 머리와 무거워 보이는 큰 발 유난히 가늘고 긴 다리가 도드라져 보인다. 게다가 그 큰 눈은 어둠속에서도 강렬한 눈빛으로 반짝인다.

걷는다는 것은 움직인다는 것이요 살아있다는 증거다. 강렬한 눈빛이란 눈이 살아있다는 것이며 생명력이 바로 눈빛에 담겨있다는 말일 것이다. 또한 생명력이 있다는 것은 자연과 사물 인간에 대한 넓고 깊은 시야를 가질 수 있다는 말이다. 발소리를 죽여 가며 작품 뒤로 가본다. 마음이 몸보다 앞서서일까 등이 앞으로 기울어져 있다. 그 굽은 등이 왠지 안쓰럽게 느껴진다. 옆모습은 또 어떤가. 눈은 앞을 향해있지만 알 수 없는 불안이 어려 있다. 다시 정면에 섰다. 그런데 강렬한 눈빛이 안쓰러움과 불안감을 쓸어버린다. 역설적이게도 불안과 고독의 눈빛에서 삶에 대한 강한 열정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저 눈빛, 부러질 것 같은 가는 다리. 불현듯 어머니가 떠오른다. 어머니가 중환자실에서 헤매고 있을 때다. 죽음을 기다리며 누워있던 어머니는 얼마나 많은 줄과 튜브로 얽매어 있었던가. 두 팔에는 주사바늘이 꽂혀있고 입에는 산소호흡기가 착용되고 온몸에는 멍과 반찬고와 호스가 뒤엉켜 있었다. 어머니의 얼굴은 고통을 넘어 차라리 죽은 듯 보였다. 마치 저 조각의 거칠고 우둘두툴한 질감처럼 그렇게 불안과 두려움의 혼몽에서 깨어나지 못했다. 그러던 어머니가 일주일 만에 기적처럼 깨어났다. 그 때 어머니의 입에서 복화술처럼 흘러나온 첫마디는 "얼른 죽어야지"였다. 살고 죽는 게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란 걸 어머니가 몰랐겠는가. 깨어는 났으나 내 마음대로 움직일 수도 걸을 수도 없으니 살았다고 생각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게 수개월의 병원생활을 거치는 동안 어머니의 눈빛에는 변화가 일었다. 늘 천정에만 고정됐던 눈빛은 서서히 기억이 돌아나고 몸이 좋아지자 사방을 둘러보셨다. 비록 젓가락처럼 가늘다 못해 부러질 것 같은 다리건만 체념했던 걷기에 희망을 걸기 시작했다. "걸으려고 하는데 왜 다리가 서지 않느냐고 속상해 하면서도 어머니의 눈빛에서 어떤 의지를 읽을 수 있었다. 어머니는 누구에게 건 손톱만치도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이제 어머니의 삶에서 중요한 가치는 단 하나 그저 걷고 싶다는 일념 하나로 내일을 기다리는 듯 보인다.

인간은 누구에 의해서가 아닌 내 스스로 내 삶을 영위하고 싶어 한다. 그것은 내 삶의 존재 이유를 증명하고 싶어 한다는 말 일 게다. 어머니도 그러실 것이다. 내 스스로 걷고 화장실도 가는 그런 날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 당신 손으로 휠체어를 밀고 다리운동을 열심히 하신다. 걷는다는 건 단순히 걷는다는 자체에 있지 않다. 우리는 매일 걸어가면서 사물과 자연, 다른 사람들을 통해 나를 보지 않는가. 그러면서 좀 더 나은 내일을 소망한다. 마치 글을 잘 쓰기 위해 남의 글을 읽고 잘 그리기 위해 남의 작품을 많이 보는 것처럼. 남을 통해 나를 이해하고 표현한다. 남에 대한 것이면서 나에 대한 것이라는 얘기다. 걸어간다는 것도 그런 것 아닐까. 자폐적 자아가 아닌 확대된 자아를 이루기 위한 끊임없는 발걸음 그런 것 아닐까.

미술관을 나와 터미널을 향해 걸어간다. 거리엔 많은 사람들이 신호등에서 잠시 멈췄다가 다시 앞을 향해 걸어가고 있다. 멈춤과 나아감의 반복 우린 언제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어쩌면 인간의 삶에는 진보나 퇴보가 아니라 견딤만이 이 견딤 속의 추구만이 있을 지도 모른다. 이렇게 견디는 가운데 나날은 조금이라도 쇄신 시켜 갈 수 있다는 희망을 걸어보는 게 아닌지. 그러면서 기다리며 살아가는 건 아닌지. 오늘이 어제보다 한 뼘이라도 나아질 수 있다면 그건 하찮은 일이 아니기에. 때론 침침한 눈을 비비며 이렇게 걸어가고 있는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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