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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란

수필가

벌써 라는 말이 가장 잘 어울리는 달이 2월이라면 3월은 2월의 품속에서 생겨난 달이다. 자식이 어딘가 부모를 닮은 구석이 있듯 가만히 보면 3월은 2월의 성질을 꽤 닮았다. 꽃피는 봄인가 싶다가도 어느 날은 겨울같이 느껴지는 게 3월 아닌가. 어찌 보면 우리네 인생사도 계절을 닮아 있는 건 아닐까.

손녀가 다니는 유치원 학예발표회에 참석할 기회가 있었다. 많은 학부모들로 들어찼고 여기저기 축하꽃다발과 플래카드로 극장 안은 왠지 들떠 보인다. 한 프로 한 프로 진행될 때마다 관객들의 힘찬 박수와 환호가 끊이지 않는다. 모두 내 자식 내손자의 재롱에 그야말로 취한 듯 보인다. 단 1분도 가만있지 못하는 유아들이다. 개구쟁이 어린것들을 보듬어 지도했을 선생님들의 사랑이 한 동작, 한마디 가사에 고스란히 배어 있다.

그 중에서도 눈에 띄었던 장면이 있다. 거의 끝날 때 까지 무대에서 울었던 다섯 살 꼬마 얘기다. 이 아이는 6번 출연에서 5번을 울었다. 한쪽에선 "뭐야 재 왜 저래 행사 망치는 거 아냐"는 속닥거림도 들린다. 분명 아이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울면서 율동을 이어갔다. 이유를 모르니 관객들로서도 보기에 딱하고 안쓰러웠다. 보다 못한 선생님이 아무리 어르고 달래도 하염없이 울기만 한다.

그런데 울던 꼬마에게서 반전이 일어났다. 마지막 순서에 혼자만 평상복을 입고 나온 이 꼬마의 표정과 몸짓이 앞에서와 달리 울음을 그치고 밝고 자신에 차 있다. 아이가 또박또박한 말씨로 자신이 맡은 역할을 씩씩하게 소화하자 우레와 같은 박수가 터져 나왔다. 그제서야 사회자는 아이가 울었던 이유를 설명한다. 이유는 한 가지, 행사 옷 때문이었다. 단지 빤짝이는 옷이 싫어서 울었다는 얘기다. 그럼에도 녀석은 마지막까지 자신이 할 일을 했다는 듯, 으쓱해 보였는데 제 얘기가 나오자 배시시 웃으며 쑥스러워한다.

어쨌든 이 꼬마는 울면서도 끝까지 자신의 역할에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된다. 물론 우는 바람에 흐름이 깔끔하지 못했던 부분도 있었지만 다섯 살 어린아이다. 2시간 공연을 소화한다는 게 어디 쉬운 일이던가. 동작도 들쑥날쑥 다반사였지만 잘 하고 못하고가 무에 그리 중요한가. 동심의 세계를 함께 즐긴다는 자체만으로도 보석처럼 소중한 시간 아닌가. 더구나 다섯 살 어린것의 마음속에 잠재했던 책임감의 발로가 얼마나 기특하고 어여쁜가 말이다.

무대 뒤로 들어가는 꼬마를 바라보다 작금의 우리 사회에서 보여 지고 있는 일련의 행태들을 생각해 본다. 탁한 물결 위에 책임이란 단어가 맴돌고 있다. 사회곳곳에서 보게 되는 책임 미루기는 더 이상 낯설지 않다. 비굴한 자의 민낯이다. 이것이 이기적 나에게만 침몰되어진데서 파생된 슬픈 부메랑은 아닌지 모르겠다. 적어도 자신이 맡은 또는 해야 할 일을 성실히 수행한다는 건 공동체 사회에서의 근간이다. 다섯 살 꼬마에게서도 느껴졌던 건 힘들고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그래야만 모두 함께 하는 것이라는 메시지를 아이들의 세계에서도 읽을 수 있었는데.

'도구의 법칙' 저자인 에이브러햄 캐플런의 말이 생각난다. 누구나 망치를 쥐면 본능적으로 두드릴 대상부터 찾는단다. 그런데 '어린아이에게 망치를 주면 두드릴 수 있는 모든 것을 찾아다닐 거란다. 찾아다닌다는 것은 무엇인가. 한 군데 머물러 치우치지 않는다는 것이며, 가치와 이념 사고가 한 생각에 중독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3월은 두드릴 수 있는 대상부터 찾는 것이 먼저가 아닌 두드릴 수 있는 모든 것을 찾아내는 준비를 시작하는 달일 게다. 3월은 그런 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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