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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석

숲해설가

분홍색 트렌치코트를 입고 멋진 모자를 눌러쓰고 검은 선글라스를 낀 우아한 여인이 청주공항에 여행 가방을 끌며 나타났다. 조금 후 청바지에 운동화를 신고 짙은 하늘색 패딩점퍼를 입은 여인도 여행 가방을 둘러매고 자신감 넘치는 걸음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그 뒤에 누가 봐도 부티가 자르르 흐르는 여인은 두리번거리며 일행을 찾아 바삐 걸었다. 눈빛이 유난히 반짝이는 지혜로운 여인도 함박웃음을 웃으며 가방을 끌고 걸어왔다. 나는 그들보다 일찍 도착하여 그들의 모습을 찬찬히 바라보며 옛 생각에 젖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는 30년 지기이다. 아이들이 서너 살 무렵에 만났으며 지금까지 정기적으로 만나 정을 나눈 사이다. 그 사이에 아이들은 잘 자라 주었고 성년이 되어 결혼을 했으며 손자를 하나 둘 또는 셋을 둔 할머니가 되었다. 남편들은 모두 정년퇴직을 했으며 지나온 삶에 대해 감사하며 살아가는 지극히 평범한 중년의 여인들이다. 우리가 만나지 30년이 되어서야 가족을 떠나 오롯이 우리만의 여행을 하게 되었다. 제주도로 2박3일간의 짧은 여행길에 모두가 들떠 있었다. 우리의 리더는 역시 씩씩한 여인이다.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는 한참 혈기 왕성하고 두려움을 모르는 때였다. 용감했으며 정의로웠고 아이들을 바르고 훌륭하게 키우기를 다짐 했었다. 특히 아이들의 교육열이 강한 지혜로운 여인은 아이들의 교육의 방법과 실천에 대하여 열변을 토했으며 그의 교육 방법은 부러움의 대상이기도 했다. 나는 어깨너머로 그의 교육 방법을 흉내 내기도 했지만 아무나 하는 것은 아니었다. 우아한 생활을 꿈꾸던 여인은 우리를 초대해 스테이크를 구웠고 아름다운 식탁을 꾸미고 값싼 와인을 근사한 잔에 따라 마시며 우아한 척을 했으며 우리도 우아한 사람들이 된 것 같아 우쭐했던 기억도 있다. 생활 전선에서 최선을 다했던 여인은 강철 같은 체력으로 신문배달 우유배달을 아침운동 정도로 열심히 했으며 그의 성실함과 부지런함으로 그는 부를 축척하여 지금은 경제적으로 가장 안정된 생활을 하고 있다. 이도 저도 아무것도 안 되는 나는 그저 이 사람 저사람 살아가는 방법을 기웃거리며 어설피 따라 하다가 아무것도 이룬 것 없이 지금에 이르렀다. 지금 생각해 보면 모두들 우아한 척 씩씩한 척 지혜로운 척 부자인 척 하며 살았던 것 같다. 심리학 법칙에 어떤 자질을 갖고 싶을 때 그것을 갖고 있는 척 된 것처럼 행동 하다보면 정말로 그렇게 자신도 모르는 사이 변 한다고 하더니 그 말이 맞는 것 같다. 세상 물정 모르고 가정을 꾸리고 가정의 안주인 역할을 겁 없이 시작했던 우리들도 우아한 척 씩씩한 척 지혜로운 척 그렇게 30년 이라는 세월을 차곡차곡 쌓다보니 우아한 척 살아온 사람은 정말로 우아하면서 품격을 갖춘 사람이 되었으며 용감한 척 살아온 사람은 씩씩하면서 불의에 앞장서며 봉사 생활을 하고 있다. 부지런한 척 억척스럽게 살아온 사람은 경제적 부를 이루고 풍요롭게 살고 있으며 지혜로운 척 살아온 사람은 지혜를 다해 아이들을 훌륭하게 키웠고 지금은 손자의 교육에 다시 매진하는 할머니가 되었다. 뒤 돌아보니 살아가면서 우리는 나날을 척 하며 살았다. 척 하며 사는 것은 사람들에게 나를 만만하게 보이지 않고 험한 세상을 살아내기 위한 방편 이였으며 우리를 지키는 힘이 되었다. 그렇게 살다보니 어렵고 힘든 삶을 이길 수 있었고 우리의 30년 지기도 멋지게 늙어가고 있다.

척 하며 살아가는 것은 사람뿐 만이 아니다. 넓적사슴벌레나 흑바구미는 생존전략으로 죽은 척 하며 살아있는 먹이를 주식으로 삼는 천적을 피하는 방법으로 이용하기도 한다. 또한 새똥하늘소는 몸을 새똥인 척 위장하여 천적을 피하기도 한다. 큰멋장이나비나 나뭇잎벌레 번데기는 마른 나뭇잎인 척 위장하여 날개가 돋기를 기다린다. 사람이나 곤충이나 살아내기 위해 오늘도 척 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것이 자신을 지키는 방편인 것을 공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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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단양교육지원청 김진수 교육장

[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