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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14.02.16 14:25:33
  • 최종수정2014.02.16 14:25:33

신종석

충북중앙도서관 영양사

추위도 한풀 꺾이고 나니 봄소식보다 먼저 폭설이 내려 피해가 막심하다고 한다. 달이 가장 밝다는 정월 대보름을 그냥 보내기 아쉬워 친정 언니가 보내주신 묵은 나물을 삶고 오곡밥을 준비하면서 이것도 우리 세대가 지나면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정월 대보름의 절기도 나이 든 사람들만의 그리운 시절의 추억이 되어가고 있는 것 같다.

어머니가 살아 계실 때 이것저것 챙겨서 한 상 가득 받았던 대보름 밥상은 가난했지만 따뜻했던 기억이 가슴 밑바닥에 남아있다. 젊은 사람들에게 오곡밥을 먹었느냐고 물었더니 대부분 고개를 가로젓는다. 아이들이 외면하는 오곡밥과 묵나물 반찬은 냉장고에 그냥 남아있다. 아이들에게 정월 대보름에는 오곡밥을 먹고 부럼을 깨물었고 귀밝이술을 마시며 더위를 팔았으며 쥐불놀이를 했다고 설명을 해도 별다른 반응이 없다. 이것이 세대 차이인가 하면서도 씁쓸한 기분이다. 구름 사이로 얼굴을 보인 달을 바라보며 어머니 생각이 간절하다.

어머니는 정월 대보름 즈음이면 무척 바쁘셨다. 대보름 전날에는 이른 저녁을 먹어야 한다며 봄부터 가을까지 살뜰히 갈무리해두었던 묵나물 반찬을 맛깔나게 만드셨다. 푸른 채소를 먹을 수 없는 계절을 대비해 말리거나 절인 채소는 겨울의 밥상 대표 음식이었다. 대보름날 추억 중에 가장 가슴에 남아있는 것은 아버지의 기침 소리에 눈 비비고 일어나서 들었던 "귀 밝아져라, 눈 밝아져라" 간절하게 말씀하시던 아버지의 목소리다. 지금도 달빛 사이로 들리는듯하다. 아마도 아버지는 저 세상에서도 자식들의 눈과 귀가 밝아지기를 바라고 계실지도 모른다.

아버지는 새벽에 눈을 뜨자마자 귀밝이술이라며 어린 우리에게도 한 모금씩 주셨다. 술을 마실 나이가 아니었지만, 그날은 아버지 말씀에 두 눈을 꼭 감고 코를 움켜쥐고 맑은술 한 모금을 넘겼다. 술을 마시고 나면 아버지는 술을 손에 조금 부어 비비고 그 손으로 "귀 밝아져라, 눈 밝아져라" 하시면서 거친 손으로 귀와 눈을 쓰다듬어 주셨다. 그것이 무슨 뜻인지 모르면서도 정월 대보름 식전에는 귀밝이술 마시기와 더위팔기는 연례행사처럼 했었다.

많은 세월이 지나고 나니 생전에 부모님은 이 험한 세상을 살면서 다른 사람의 말을 귀담아듣고 바르게 해석하며 좌우로 치우치지 말라는 뜻으로 말씀하셨을 것이다. 귀가 얇으면 이 사람 말도 맞는 것 같고 저 사람말도 맞는 것 같아 중심을 읽고 흔들리기가 심상이다. 그렇게 되면 세상 이치를 바르게 볼 수 없다. 잘 듣고 잘 본다는 것이 그래서 중요한 것이다.

공자는 논어 위정편에서 나이 60세를 이순(耳順)이라고 했다. 60세가 되어서야 천지 만물의 이치에 통달하고 듣는 대로 모두 이해하게 된다고 한다. 사사로운 감정에 얽매이지 않고 객관적으로 듣고 이해하다 보면 무슨 말을 들어도 귀에 걸림이 없는 나이 60세란다. 그것이 그냥 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다른 사람의 말에 귀 기울이고 그 사람을 이해한다면 소통의 길은 열릴 것이다. 귀가 순해진다는 것은 상대방의 이야기를 잘 들으면 상대방의 마음을 다 이해 한다는 것이다. 끊임없이 남의 말에 귀 기울이어 그 사람의 마음을 읽는 연습을 하다 보면 공자의 경지에는 못 미치지만 그래도 참 잘 늙었다는 말은 듣지 않을까 싶다.

정월 대보름 나의 아버지 어머니가 그랬던 것처럼 오곡밥을 하고 묵나물을 준비했다. 부럼 깨물 땅콩과 호두도 마련하고 귀밝이술도 마련했다. 아이들에게 "귀 밝아져라, 눈 밝아져라" 주문처럼 외면서 정월 대보름을 보냈다. 어쩌면 우리 세대가 지나고 나면 없어질지도 모르는 절기를 지내면서 우리 아이들이 귀 밝아지고 눈 밝아져서 세상을 바로 보며 올곧은 소리를 구별할 줄 아는 사람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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