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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석

청주중앙도서관 영양사

가을볕이 서늘한 바람을 데리고 정수리를 비껴 은근하게 몸으로 파고드는 기분 좋은 날씨다. 오랜만에 금싸라기 같은 햇볕이 떡고물처럼 묻어나는 들판을 지나 자연휴양림 산책길을 걸었다. 뜨거웠던 여름을 생각하니 가을의 가운데를 걸어가는 길이 청명하다. 나뭇잎들은 푸른색을 지우고 빨갛고 노랗게 본연의 색깔로 돌아가고 있는 중이다. 발걸음마다 열심히 가꾼 열매들이 보석처럼 어여쁘다. 노랗고, 빨갛고, 까맣고 어떤 열매는 보라색이다. 자연은 움켜쥐었던 자신의 분신인 열매를 아낌없이 툭툭 떨어뜨리고 있다. 고개를 숙이고 도토리를 주우며 생각이 많아졌다. 시간이 지나면 자연은 애써 가꾼 것 들을 미련 없이 놓아 버리는 자연 앞에 나의 끝없는 욕심이 부끄러웠다. 자연의 순환은 욕심을 버릴 때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는 것을 계절을 통해 말하고 있었다. 자연의 이치를 거스르지 않는 삶, 그것을 알아차리는 나이가 되었으니 나도 나이가 많이 먹었다는 것을 실감한다. 나를 지배하고 있는 욕심을 훌훌 털어버리고 싶은 마음이 식어 버리기 전에 서둘러 집으로 돌아왔다.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옷장 문을 열었다. 옷장에는 옷들이 빈틈없이 나의 욕심처럼 꽉차있다. 우선 안 입는 옷을 정리 해 본다. 남편옷장은 양복이 수 십 벌 빼곡하다. 남편이 정년퇴직을 하고나니 입을 일이 별로 없는 옷들이다. 그래도 아까워 차일피일 버리기를 미루고 있었다. 옷을 모두 꺼내니 엄청 많은 양이다. 양복, 와이셔츠, 넥타이등이 계절별로 서너 벌씩 되니 말이다. 버리려고 꺼내놓고도 아쉽고 아깝다. 또 욕심이 앞선다. 아까운 마음에 쌓아놓고 안 입는 오래된 유행이 지난 옷만 처분하려고 마음먹었지만 결국엔 다 버리지 못하고 말았다. 십년이 넘은 옷들도 보이고 이십년 가까이 된 옷도 보인다. 그렇다고 자주 입었던 옷은 아니다. 버리자니 아깝고 입자니 유행이 한참 뒤진 옷이니 입을 수가 없는 옷들이다. 애착이 가는 옷들만 계절별로 한 벌씩의 남겨 두기로 했다. 이 쓸모없는 옷들을 이렇게 오랫동안 붙들고 있게 한 것은 나의 욕심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선뜻 버리지 못하는 내가 너무 한심하다. 어디 옷뿐인가· 부엌에는 결혼혼수로 가지고 온 오래된 접시세트가 아직도 주방을 차지하고 있다. 집안 구석구석 나의 물욕은 참으로 많이도 쌓여있다. 며칠을 버리고 또 버려도 내가 가진 욕심의 잔재는 없어지지 않을 것 같다. 내가 버리지 못하고 많은 물건들을 가지고 있는 이유가 무얼까· 생각해보니 추억이 깃든 물건이거나 언젠가는 필요한 물건일거라는 생각 때문인 것 같다. 다음에 꼭 다시 쓰일 거라는 생각은 버리는 마지막까지 나의 발목을 잡고 있다. 지금까지 나의 삶은 남들보다 더 많이 더 좋은 것을 가지려고 노력해 왔다. 그래야만 성공한 삶을 산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리고 더 많은 물건을 사기위해 돈을 더 벌어야 했고 늘 사고 싶은 것을 다 사지 못하니 나는 행복하지 못하다고 생각했다. 생각해 보니 우리가 살아가는데 그리 많은 물건은 필요하지 않은 것 같다. 옷장을 비우고 나니 십년 묵은 채증이 내려간 것 같이 후련하다. 뭔지 모를 희열감이 든다. 그리고 헐렁해진 옷장만큼이나 마음에 여유가 생긴 것 같다.

요즈음 최소한의 물건으로 최대하게 행복한 삶을 살자는 미니멀 라이프가 대세라고 한다. 그와 관련된 도서들이 쏟아져 나오고 거기에 동참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꼭 필요한 물건만 가지고 단순하게 그리고 소박하게 살아가는 삶을 지향하는 사람들처럼 그렇게 살기는 어렵겠지만 노력은 해 보고 싶다. 거창하게 미니멀 라이프의 삶이 아니더라도 버리고 나니 전에 느낄 수 없는 충만함과 여유가 생기며 긍정적인 마음이 생긴다. 하나 둘 물건들을 정리 하면서 마음정리까지 할 수 있으니 앞으로의 삶은 좀 더 단순하고 풍요로우며 여유롭지 않을까 싶다. 내일은 차고 넘치도록 쌓아 두기만한 책장을 정리해야겠다. 나의 삶에 다이어트는 지금부터 시작이다. 혹독한 고난이 따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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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단양교육지원청 김진수 교육장

[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