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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석

청주중앙도서관 영양사

은행 볼일이 있어 아침 청소를 대충 하고 밖으로 나오니 벌써부터 후끈 달아오른 열기가 목덜미를 붙잡는다. 양산을 얼른 펴서 햇볕을 차단 하지만 뜨거운 열기는 발톱을 세우고 계속 달려든다. 불덩어리에 목덜미를 물린 나는 땀이 비가 오듯 쏟아진다. 숨소리는 거칠어지고 나도 모르게 더위 먹은 개처럼 헐떡인다. 지독한 더위다. 나는 늘 사람들에게 추위는 참을 수 없지만 더위는 얼마든지 즐길 수 있노라고 큰 소리를 땅땅 쳤었다. 아무리 더워도 땀 한 방울 흘리지 않는다고 너스레를 떨었는데 완전 잘못된 착각 이었다.

올 여름 나는 더위에 두 손 두발 다 들고 항복 선언을 한다. 밥맛도 없고 찬 음식만 찾게 되고 의욕이 떨어져 기운이 없다. 옛날 같으면 시원한 냉면 한 그릇이면 더위쯤 잊을 수 있고, 땀을 씻을 수 있는 물 한바가지면 다시 물먹은 생물처럼 싱싱해 졌건만 요즈음은 아무리 애를 써도 생기가 나지 않는다. 소금에 푹 절인 배추처럼 널브러져 하루하루를 지낸다. 여름을 건강하게 보내려면 보양식을 먹어야 한다며 냉면, 초계탕, 삼계탕, 오리탕, 염소탕, 장어, 추어탕, 등 많은 보양식을 먹어 봤지만 효과가 없다. 그냥 엄마가 끓여주시던 올뱅이국 생각만 간절하다. 뜨끈한 올뱅이국 한 사발을 땀을 뻘뻘 흘리고 먹고 나면 기운이 나고 입맛이 돌 것 같다.

우리 고향에서는 다슬기를 올뱅이라고 불렀다. 저녁나절쯤 주전자를 들고 냇가에 가면 더위를 피해 숨어있던 올뱅이들이 살금살금 기어 나온다. 한 마리 두 마리 주워 담으며 시간 가는 줄 몰랐다. 해가 한 뼘쯤 남으면 부지런히 집에 돌아오고 어머니는 올뱅이를 박박 문질러 파란물이 나오도록 씻어내셨다. 된장을 한 국자 풀어 팔팔 끓는 물에 올뱅이를 삶아서 우리에게 까놓으라고 주시면 우리는 바늘을 들고 올뱅이 살을 발라내어 몰래 몰래 입에 넣어 우물거렸다. 국을 끓여야 하니 먹지 말고 까서 모으라는 어머니의 성화를 들어야만 한 사발 그득 하게 올뱅이 살을 발랐다. 어머니는 아욱을 박박 문질러 씻어 올뱅이 삶은 물에 아욱을 넣고 펄펄 끓으면 올뱅이 살에 밀가루를 덤벙덤벙 묻혀서 된장국에 넣어 끓여낸 올뱅이국은 이제 어디에서도 먹을 수 없는 맛이 되었다. 오늘따라 그 진한 올뱅이국 생각이 간절하다. 어떤 보양식 보다 올뱅이국 한사발이면 여름을 거뜬히 날 수 있을 것 같다. 더운 여름날 기운이 없는 이유는 여름을 타기보다는 어머니의 따뜻한 정이 들어간 음식이 그리운 것인지 모르겠다.

말복도 지났고 내일이면 더위도 가시고 선선한 가을의 시작이라는 처서이다. 옛사람들의 문화를 소개한 책 김영조님의 '키질하던 어머니는 어디 계실까?' 에 의하면 처서는 "'땅에서는 귀뚜라미 등에 업혀 오고, 하늘에서는 뭉게구름 타고 온다'라고 할 만큼 여름은 가고 본격적으로 가을 기운이 자리 잡는 때입니다. 처서라는 한자를 풀이하면 '더위를 처분 한다'라는 뜻이 되지요" 라고 했다. 이제 여름의 뜨거웠던 불볕더위는 사람들의 기를 빼앗아 달아날 날도 머지않았다. 기를 쓰고 여름과 한판 승부를 해보는 것도 기를 빼앗기지 않으려는 심사 이다.

어머니가 살아계실 이만 때 쯤 마당에 멍석을 깔고 부채질을 하면서 "모기가 입이 삐뚤어 질 때가 되었으니 귀뚜라미 소리에 애간장 녹겠다"라고 중얼 거리셨다. 그 말이 통 이해가 되지 않았었는데 나중에야 그 말뜻이 해석이 되었다. 아무리 기승을 부려도 계절의 순환 앞에 어쩔 수 없을 것이다. 모기가 입이 쩍 붙어 버렸고 귀뚜라미가 톱을 들고 사람들의 애간장을 끊으러 온다는 계절에 더위가 물러서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높아진 하늘엔 뭉게구름 피어나고 벼는 알알이 익어 고개 숙일 때가 되었다.

여름이라고 찬 음식으로 몸을 냉하게 할 것이 아니라 이열치열이라고 따뜻한 음식으로 몸을 보호 하는 것이 정석이라고 한다. 오늘은 육거리 전통시장이라도 나가 봐야겠다. 올뱅이를 한 사발 사서 엄마가 해주시던 올뱅이국을 흉내라도 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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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단양교육지원청 김진수 교육장

[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