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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석

아침저녁으로 제법 서늘하다. 산책길에 이슬이 흠뻑 맺혔다. 백로를 지나 지금은 추분으로 다가가는 계절이다. 숲의 나무들은 아직도 쨍쨍한 볕을 받아 열매를 익히며 생장을 조금씩 멈추며 초록의 색을 조금씩 지우는 중이다. 겨울을 무사히 건너서 봄을 맞이할 양분을 축적하기 위하여 부지런한 나무들은 갈무리 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나의 계절도 지금은 가을이다.

아침이면 종종 거리며 하루를 시작하던 일상에서 이제 놓여났다. 내가 일하던 곳이 이런 저런 이유로 폐업신고를 했고 졸지에 직장을 잃었다. 새로운 일을 시작하기엔 막연한 나이다. 인정하기 싫지만 나의 인생도 가을인 것이다. 마지막 근무를 마치고 쓸쓸한 맘으로 돌아오는 길에 재봉틀 가게가 눈에 띄었다. 나도 모르게 그곳에 들려서 재봉틀 한 대를 덜컹 사 버렸다. 무슨 맘으로 다룰 줄도 모르는 재봉틀을 샀는지 모르겠다. 재봉틀 사용법을 열심히 알려 주시는 사장님의 말씀을 듣는 등 마는 등 재봉틀을 받아들고 집으로 오긴 했는데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 막연할 따름이다. 작은방 구석에 얌전히 있는 재봉틀을 오늘은 가만히 열어 보았다. 전기를 꽂고 스위치를 넣으니 드르륵 드르륵 소리가 요란하다.

우리 동네에 부잣집에 재봉틀이 한 대 있었다. 재봉틀은 대청마루에 예쁘게 수를 놓은 덮개로 늘 덥혀 가장 잘 보이는 곳에 놓여 있었다. 어머니는 늘 그 재봉틀을 부러워 하셨다. 그 집 앞을 지날 때 마다 어머니는 재봉틀에서 눈을 떼지 못하셨다.

나의 어머니는 바느질감을 손에서 내려놓으신 적이 없다. 낡은 어머니의 치마로 원피스를 만들어 나에게 입히고 허름해진 아버지의 적삼으로 아들에게 입힐 반바지를 만드셨다. 지금 생각해 보니 그 분에게 재봉틀 한 대만 있었어도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마음이 든다.

어머니는 나의 결혼 혼수로 그 당시엔 고가인 발판용 재봉틀을 마련해 주셨다. 그 당시도 지금처럼 재봉틀에는 관심이 없었기에 오랫동안 방 한구석을 얌전히 차지할 뿐 이었다. 어머니는 왜 나에게 재봉틀을 사 주셨는지 생각해 보지도 않았다. 어머니가 사주신 재봉틀은 발틀은 뜯어 장식용으로 사용하고 재봉틀머리만 데리고 이사를 다니다가 어느 날 고물로 처리하고 말았다. 어머니의 마음을 간직한 재봉틀을 간직하지 못 한 것이 후회스럽다.

kbs에서 방영중인 다큐3일 이라는 프로그램을 보았다. 만리동고개 봉제골목에서의 일상을 다큐로 담담히 보여 주었다. 노래하듯 춤추듯 돌아가는 재봉틀 소리와 그 속에 사람들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서울 한 복판 에 아직도 도시와 거리가 먼 시간이 멈추어선 것 같은 골목이 있었다. 삶의 고된 모습은 세월을 비껴가기라도 하듯이 오롯이 남아 재봉틀 소리만 요란한 골목길은 아이러니 하다. 1970년 청계천의 봉제공장과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이다. 저임금과 열악한 노동조건 속에서 비인간적인 대우를 받으며 노동력을 착취당하는 사람들을 위해 희생한 전태일 열사도 재봉틀을 돌리는 노동자 이었다.

어머니는 해가 지도록 호미자루를 놓지 않으셨고 가족들의 먹거리를 걱정해야 했으며 바느질을 손에서 놓지 못했다. 종잡을 수 없는 삶을 어머니는 주어진 대로 살았다. 거부 하거나 불만을 한 번도 내색하지 않으셨다. 지금 돌이켜 보니 우리는 어머니의 노동력을 착취해서 살았다. 그러고도 한 번도 그분에게 고마워하지도 미안해하지도 않았다. 그들의 노동시간은 우리 어머니의 대가 없는 노동 시간보다는 짧았다는 생각이 이제야 든다.

오늘도 하루는 길다. 재봉틀을 바라만보고 있다가 어머니 대하듯 가만히 재봉틀 바늘에 실을 꿰었다. 헌 바지를 뜯어서 재봉틀위에 올려놓고 스위치를 올렸다. 드르륵 드르륵 거리며 박히는 것 같더니 그대로 멈추었다. 이번엔 기필코 재봉틀을 배워 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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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단양교육지원청 김진수 교육장

[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