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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렸을 때 아버지 어머니께서 정성들여 지내시던 명절제사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
목욕재계하시고 갖가지 정성들여 차린 제사상 앞에서 아버지는 단정하고 경건한 자세로 천지신명과 조상님들께 지난 한해의 집안일을 낱낱이 아뢰고 잘못된 일은 꼭 짚어 그 잘못을 뉘우치고, 다시는 그런 일을 범하지 않겠노라고 용서를 비신다.
그리고 새해의 계획을 말씀드리고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지혜와 힘이 모자라니 천지신명과 조상님께서 보살펴주시어 올 한해의 일을 잘 이루어낼 수 있도록 천우신조를 간절히 기원하신다.

10여 분간의 고사(告辭)를 마치시고 마지막으로 한지를 태우는 소지(燒紙)를 하신다.
그러고 나면 이어 어머니께서 다시 빌며 아뢴다.
지난해 잘 보살펴주신 은덕으로 온 가족이 건강했고, 가축도 잘 자라고 가산도 늘었음에 다시 한 번 감사를 드린다.

그해는 내 네 살짜리 동생이 죽었는데, 천지신명과 조상님들께서 극진히 보살펴주셨는데도 이 미련한 것들의 정성이 부족하여 그만 놓쳐버렸다고 목이 메이셨다.
소지를 올리시며 읍하고 읍하시던 어머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아이들은 조용히 듣고 앉았다가 마지막에 절만 같이 하면 되었다.
해마다 명절마다 듣는 고사지만 특히 설에 올리는 기도는 어린 내 마음에까지 스며들고 마치 하느님과 조상님들이 옆에 앉아있는 듯한 생각이 들 정도로 생생한 감동을 주곤 했었다.

올해도 설이 며칠 남지 않았다. 나는 설 때면 부모님 생각과 함께 간절한 소망으로 제사를 올리시던 모습들이 회상된다. 하지만 나는 그런 제사를 한 번도 올려보질 못해 늘 죄송하고 아쉬움이 남았었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불효를 저지르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으로 고심하다가 제례에 대한 공부를 시작했다.

전통예절 중에 관례. 혼례. 상례는 많이 현대인의 생활에 맞게 개선되었으나 유독 제례만은 여전히 많은 문제점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러다 10 수년 전 부터 내가 새로 정한 대로 제사를 올리니 마음이 개운하고, 정말 조상님들이 지금 함께 살아계시는 듯한 착각을 느낄 정도가 되었다. 온 가족은 물론이고 특히 여성들의 호응이 대단히 높다.
참고로 내가 지내는 제례를 간단히 소개하면 이렇다.

첫째; 음식은 제철에 난 식품으로 하고 될 수 있으면 내가 살고 있는 지방 것으로 차린다. 옛날 유교나 기타 종교들에서 사용하던 제물과는 무관하다.
제기도 쓰지 않고 촛불도 켜지 않고 향도 피우지 않는다. 맛도 없고 먹기 싫은 음식도 차리지 않는다. 필요도 없고 건강에도 매우 나쁘기 때문이다.

음식은 산 사람이 먹기 위해 차리는 것이지 조상이나 귀신을 위해 차리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늘 제사를 지내는 우리 가족들이 먹고 싶은 회식 수준의 음식만으로 하며 제물은 오직 만 생명의 근원이요 조상인 맑은 물 한 그릇으로 한다.

둘째; 명절제사는 명절날 지내지만 그 외의 다른 기제사는 시제처럼 편리한 날을 잡아 지낸다. 제삿날이 주중에 든다면 토요일이나 일요일, 또는 공휴일을 택해 지냄으로써 생활에 지장을 주지 않게 한다.

셋째; 제사지내는 시간도 자유롭게 조정한다. 낮 12시가 원칙이지만 가족들의 형편에 따라 저녁에 지내기도 한다. 유교식은 그날 첫 시간에 지낸다고 늦은 밤(0시 전후)에 지내지만 그날의 가장 밝은 한 가운데의 점심때가 이상적이다.

넷째; 위패나 지방 축문 등은 사용하지 않으며 사진이나 그 어떤 물건을 향해서도 절하지 않는다. 음식상을 중심으로 빙 둘러서서 서로 마주보고 절을 한다.
절하기 전에 집례자가 음식과 청수를 모신 상 앞에서 고인의 약력과 평생의 업적, 삶의 모습 등을 소개하고 제문을 낭독한다. 경우에 따라 경전을 읽기도하고 적당한 노래(어버이 은혜)를 부르기도 한다.

다섯째; 제사는 장남, 차남, 딸, 아들 구별 없이 형편껏 돌려가며 지내고 장소도 상관하지 않는다.
식당도 야외도 구성원들의 희망에 따라 정한다.

살아있는 우리 모두는 돌아가신 아버지 어머니의 유전자를 그대로 이어받았음은 물론, 피. 뼈. 살. 정신까지 모두 부모와 조상님들의 것을 그대로 다 내 몸과 마음속에 모시고 함께 호흡하며 살아가고 있다.
또 해. 달. 별빛을 비롯해서 동. 식물 광물 등 우주의 모든 생명들과 하나로 연계되어 호흡하며 살고 있다. 글 몇 자 써놓은 위패나 지방 속에 어찌 조상의 영령이 있을 수 있으며 사진이나 무슨 조각품 속에 영령이 존재할 리가 없지 않은가.
살아있는 우리들 몸과 마음속에 조상과 천지신명이 살아 숨 쉬고 있기 때문에, 서로가 서로에게 절하는 것 만이 조상과 영령에게 절하는 것이 되는 것이다.

제사는 정성과 효도를 그 근본으로 삼는다. 가장 큰 정성은 제사지내는 자손들의 마음이 기쁘고 즐거워야하며, 가장 큰 효도는 자손들이 건강하고 화목하게 잘 살아가는 것이다.

이 제례법은 내가 혼자 고안해 낸 것이 아니라 이미 110여년 전에 우리 조상들이 고쳐 지내던 제례이다.

“사람이 곧 하늘이니 사람 섬기기를 하늘같이 하라.(人是天事人如天), 귀신이나 죽은 벽에다 대고 절하지 말고 살아있는 사람에게 절하라(向我設位)“라고 갈파하신 해월 최시형(1827~1898)선생님의 가르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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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