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기사

이 기사는 0번 공유됐고 0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채민자

봉정초등학교 교감

홍시의 계절입니다. 학교 담장을 따라 가을이 내려와, 운동장 화단에 감이 익어갑니다. 햇살 받아 빨갛게 물든 감은 아이들 함성소리에 주렁주렁 열려 가을이 한발 더 앞으로 다가왔음을 느끼게 됩니다.

어린 시절 외가에 가면 곶감과 홍시를 내어 주셨던 할머님이 계셨습니다. 감을 무척 좋아하시던 할머니는 집 주위에 감나무를 많이 심으셨지요. 돌담을 따라 사방에 감나무를 심어 놓으셨는데 가을이 되면 집 주위가 빨간 꽃으로 물들어 은행나무와 어울려 한 폭의 아름다운 수채화를 보는 것 같았습니다.

감이 익기 시작하면 할머니는 항아리를 깨끗이 씻어 건넌방에 들여 놓습니다. 감을 항아리에 차곡차곡 넣고는 소금물을 부으면, 따뜻한 아랫목에서 며칠 지난 감에는 떫은맛이 사라지고 먹기 좋게 달콤해 집니다.

할아버지는 대청마루에 앉아 감을 깎으십니다. 두툼한 손으로 얇게 껍질을 까서 대청마루 지붕 처마 밑에 매달아 놓으면 아무도 그 곶감에 손대는 이들이 없었습니다. 그 곶감의 주인이 누구인지를 아는 것이겠지요.

우리 5남매는 외가에 자주 갔습니다. 갈 때면 동구 밖에서 손주를 기다리시는 할아버지를 만납니다. 그러면 할아버지께서는 허리춤에 매달려 있는 주머니에서 곶감을 꺼내셨는데, 마중 나오신 할아버지도 반갑지만 제일 먼저 눈길이 가는 것은 주머니였습니다. 그 주머니에서 무엇이 나올까 궁금해 하며 도란도란 떠들며 외가에 걸어가던 기억이 납니다.

외가에 도착을 하면 우리 5남매는 일단 돌담을 따라 한 바퀴를 돕니다. 어쩌다가 익어 떨어진 것이 있지나 않을까 하는 마음에 보물찾기 하듯 풀숲을 헤집고 찾아냅니다.

그리고 할머니, 할아버지 몰래 나무에 올라 감을 따 먹었습니다. 다친다는 말씀에 급히 내려오지만 입안으로 퍼지던 그 달콤함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할머니는 침을 담거나, 곶감을 만들고도 남은 감은 장독대 항아리에 담아 놓아 긴 겨울 든든한 간식거리로 만드셨습니다. 눈 내리는 겨울밤, 고구마와 함께 먹었던 홍시도 할머니 인자하신 미소와 함께 기억 속에 살아있습니다.

추석 연휴가 끝나고 학교에 오니 운동장 화단에 멍석이 펼쳐서 있습니다. 아직 익지 않은 듯 보이는 감을 따야하다는 교장선생님 말씀에 감이 후드득 떨어집니다.

교장실에 온통 감 천지입니다. 업무 틈틈이 감을 깎으시는 교장선생님! 일손을 거둘 요량에 칼을 잡으면 손사래를 치시며, 혹시라도 선생님들 눈에 뜨일까 가만가만 감을 깎습니다.

해마다 교장실 창문에는 홍시가 빨갛게 익어갑니다. 조만간 아이들은 친구들과 정답게 감을 나누어 먹겠지요. 아이들은 알까요? 6학년 학생들이 학교의 감을 맛보고 졸업을 하는, 봉정초만의 전통 아닌 전통이 된 사연을….

아이들도 학교를 떠올릴 때 마다 진정으로 사랑 주시던 교장선생님, 그리고 친구들과 나눠먹던 감을 기억하겠지요.

어린 시절 겨울이 다가오도록 잎 떨어진 앙상한 가지 위에 매달려 있는 감을 따기 위해 돌팔매질 하던 것이 생각납니다. 바람타고 가을이 익어갑니다. 홍시가 익어갑니다. 스쳐 지나가는 가을바람에 홍시하나 떨어집니다.
이 기사에 대해 좀 더 자세히...

관련어 선택

관련기사

배너
배너
배너

랭킹 뉴스

Hot & Why & Only

실시간 댓글

배너
배너

매거진 in 충북

thumbnail 308*171

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김명철 제천교육장

[충북일보] 제천 공교육의 수장인 김명철 교육장이 취임 100일을 맞았다. 김 교육장은 인터뷰 내내 제천 의병을 시대정신과 현대사회 시민의식으로 재해석하고 이를 바탕으로 학생 교육 활동을 전개하는 모습에서 온고지신에 바탕을 둔 그의 교육 철학에 주목하게 됐다. 특히 짧은 시간 임에도 시내 초·중·고 모든 학교는 물론 여러 교육기관을 방문하고 대화를 나누는 모습에서 활동하는 교육 현장 행정가로서의 투철함을 보였다. 김명철 제천교육장으로부터 교육 철학과 역점 교육 활동, 제천교육의 발전 과제에 관해 들어봤다. ◇취임 100일을 맞았다. 소감은. "20여 년을 중3, 고3 담임 교사로서 입시지도에 최선을 다했고 역사 교사로 수업과 더불어 지역사 연구에 남다른 관심과 애정을 쏟았다. 그 활동이 방송에 나기도 했고 지금도 신문에 역사 칼럼을 쓰고 있다. 정년 1년을 남기고 제천교육장으로 임명받아 영광스러운 마음과 함께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 지난 9월 처음 부임할 당시에 지역사회의 큰 우려와 걱정들이 있었으나 그런 만큼 더 열심히 학교 현장을 방문해서 문제점을 파악하고 해결점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1년을 10년처럼 생각하고 열심히 노력하자는 마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