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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15.05.05 13:38:49
  • 최종수정2015.05.05 13:38:49

채민자

봉정초등학교 교감

길게 늘어뜨린 오색천이 바람에 흔들리고 맑고 푸른 하늘에 만국기가 펄럭인다. 개선문에는 애드벌룬 거대한 풍선이 둥둥 떠 있고, 응원석 천막을 펼치는 선생님들의 손길이 분주하다. 동요가 울려 퍼지는 이른 시간부터 아이들은 체육복을 갖춰 입고 학교로 하나, 둘 모여들고 트랙을 따라 하얀 횟가루를 뿌려놓은 운동장엔 운동회도 하기 전부터 달리기가 한창이다. 행진곡에 맞춰 줄을 선 아이들이 음악에 맞춰 국민체조를 한다. 화약총소리가 울리며 드디어 운동회가 시작되었다.

이십여년 전만해도 운동회는 대부분 추석 다음날 열렸다. 9월이 지난 들녘에는 곡식이 누렇게 익어가고 마을 돌담을 따라 감이 붉어지면 학교에서는 가을 운동회 준비로 학교가 들썩인다. 그 시절 운동회는 마을의 잔치였다. 멀리 외지에 돈 벌러 나간 가족들이 돌아와 함께 맛난 음식을 나누는 자리였으며 온 동네사람들과 이야기꽃을 피우는 만남의 장소였다. 엄마, 아버지는 가장 좋은 나들이옷을 차려입는 날이었고, 할머니, 할아버지가 고이 아껴두었던 쌈짓돈이 축나는 날이었다. 그날만큼은 밭에 나가는 일도, 논에 나가는 사람도 없는 온 마을의 축제였다.

본부석 천막에는 양은냄비랑, 세숫대야, 그리고 플라스틱 소쿠리, 바가지 등 어른들 상품이 수북하고 그 옆으로 공책이 쌓여있어 벌써부터 아이들은 제 것 인양 군침을 흘린다. 5, 6학년 여학생들이 한복입고 부채춤을 선보이면, 웃통 벗은 남학생들은 기마전으로 힘겨루기를 한다. 몇날 며칠을 연습한 덤블링은 온 동네 사람들의 감탄을 자아내기에 충분했으며, 차전놀이는 해마다 하는 단골 종목으로 언제 봐도 흥겨웠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참여하는 낚시놀이도, 부모님들의 달리기도 운동회의 중요한 종목이었으며 상품으로 바가지나, 냄비를 받은 얼굴엔 즐거움이 넘쳐났다. 점심을 알리는 1학년들의 커다란 함지박 터뜨리기가 끝나면 가족끼리 이웃끼리 옹기종기 모여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점심을 나누기도 했다.

달리기만 잘해도 공부 잘하는 학생만큼이나 인기가 많은 시절이었다. 손등에 1등 도장이 찍힌 친구는 마치 훈장을 탄 것처럼 우쭐했고 공책을 많이 탄 친구가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운동회에서 가장 신나는 게임은 예나 지금이나 누가 뭐라 해도 청백 계주다. 아침부터 이어진 청군과 백군의 엎치락뒤치락하던 경기는 대부분 남녀 청백계주에서 결판이 났다. 마지막까지 손에 땀을 쥐는 질주가 펼쳐지고 응원석에서는 '청군 이겨라, 백군 이겨라' 목이 터져라 응원소리 점점 커져간다. 마침내 마지막 주자가 결승선 테이프를 끊으면 운동장이 떠나갈 듯 환성과 아쉬움의 탄식이 메아리친다.

오늘 만큼은 숙제도 없고, 공부를 하지 않아도 되기에 그럴까· 승패보다는 함께 어우러질 수 있고, 경쟁이 아닌 다함께 신나는 어울림 한마당이어서 그럴까? 아이들 얼굴엔 미소가 함박, 웃음소리가 끊이질 않는다. 매일 매일 오늘처럼 즐겁고 행복한 아이들로 자라도록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영차영차', 청백기 휘날리는 5월의 하늘이 푸르다. 트랙을 따라 아이들은 있는 힘껏 달리고 결승전에선 엄마들의 응원이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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