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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민자

봉정초등학교 교감

병아리선생이 처음 발령을 받아 간 곳은 면사무소가 있는 남도 골 깊은 작은 마을이다. 말이 면소재지이지 30여 호 남짓한 마을은 온통 산으로 둘러싸여 사람이 살고나 있을까 할 정도로 고즈넉하고 조용한 산골이었다.

앞산 아래 개울에서는 사계절 맑은 물이 흘러 아이들 놀이터가 되었고, 뒷산이 병풍처럼 아늑하게 둘러 싼 곳에는 집들이 옹기종기 자리를 잡아, 사철 밝은 햇살이 쏟아지던, 눈부시게 아름다운 곳이었다.

9월, 첫 발령 통지를 받았으나, 막상 가려니 엄두가 나질 않아 망설이다 내려간 산골짜기 작은 학교, 고민을 거듭하다가 생활에 필요한 몇 가지를 싸서 엄마와 함께 내려왔는데 버스를 몇 번이나 갈아탔는지 모를 정도로 힘들게 물어 물어서 겨우 찾아 올 수 있었다.

지금이야 한나절이면 갈 수 있는 거리지만, 아침 일찍 출발해서 해거름에나 도착을 했으니 오는 내내 착잡함을 금할 수가 없었노라고 엄마는 아직도 가끔 말씀을 하신다.

발령지로 가는 길도 무척 험했다. 산허리를 깎아 만든 길은 간신히 차 한대가 지나갈 정도로 좁은 길이었으며, 굽이굽이 낭떠러지 고갯길을 털털거리는 완행버스가 달릴 때는 내내 마음이 불안하고 조마조마해, 여태껏 잊을 수 없는 초행길로 기억에 남았다.

1980년대 초는 도로가 온통 흙길 이었다. 포장된 길은 간혹 도시에서나 볼 수 있었고, 그도 아니면 고속도로에서나 볼 수 있었다. 그런데 이런 생경함이라니, 이미 시골 학교 앞에 포장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산길을 내려오다 만난 포장도로, 학교 앞이 아스팔트로 포장이 되어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는데 왜 그런지를 발령받고 그 다음날에야 이유를 알 수 있었다.

해가 지는 것이 빠른 동네였다. 오후 5시 좀 지난 시각이었을 텐데 산기슭을 따라 물기 어린 빛이 내려앉고 있었으며, 운동장엔 산그늘이 깊게 들어오기 시작하였다. 짐 보따리 들고서 교무실 문을 여니 유난히 크게 들리는 '드르륵' 소리에 모여 계시든 선생님들의 시선이 모두 출입구 쪽으로 향했다.

퇴근 무렵이 되어서인지 선생님들이 교무실에 모여 종회를 하고 있던 모양이었다. 크게 들리는 문소리에 제풀에 놀란 병아리 선생은 모두들 바라보는 시선에 어쩔 줄 몰라서 엉거주춤한 모양으로 서 있었다.

"와 새로 온 선생인가보네" 머리가 희끗해지진 남자선생님의 걸쭉한 경상도 사투리에 기가 죽어 겨우 대답하니 여선생님들이 우르르 나와서 짐을 받아들며 반갑게 맞아주셨다. 그렇게 나의 초임지에서의 생활은 시작 되었다.

의령군 봉수면 죽전초등학교, 지금은 폐교가 되어 이미 사라져 버린 학교이다. 발령 적체로 사방으로 흩어졌던 우리 교대 동기들, 교수님의 추천으로 물설고 땅 설은 곳으로 발령을 받았지만 평생을 걸쳐서 잊지 못할 곳이 되었다.

누구나 첫사랑은 생이 끝날 때까지 기억한다고 했던가· 첫 발령, 그 설렘과 긴장 그리고 두려움으로 참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음에도 약관의 교사를 사랑으로 대해 주었던 아이들, 교육이란 나눔과 배려이며 행복이라는 것을 몸소 실천하고 가르침을 주셨던 선배선생님들, 그래서 거쳐 온 수많은 학교는 희미해졌어도 첫 부임지는 각인이 되어 머릿속에 남아있음이리라.

현재 우리학교에서는 교대 4학년들이 교육실습을 하고 있다. 바람이 불 때 촛불은 금세 꺼지지만 장작불은 오히려 활활 잘 타오른다 했던가· 예비교사로서 능력과 자격을 갖추기 위해 부단한 노력으로 하나라도 더 배우기 위해 눈빛이 반짝이는 모습에서 교육의 미래를 본다.

뽀얀 물안개가 마을을 감싸는 아침이면, 등교하는 아이들 앞머리에 작은 물방울이 송골송골 맺히고, 교실로 들어선 얼굴에는 천사같이 순진한 미소가 번진다. 봄이면 진달래 붉게 물든 앞산에서 이름 모를 새들이 지저귀고 학교 뒷산에서는 불어오는 솔바람소리 그윽했던 내 첫 부임지, 지금도 눈을 감으면 시리도록 30여 년 전 그 29명의 아이들이 아련하게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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