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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민자

봉정초등학교 교감

현관문을 열면 그늘진 창가에 몇 년 째 아주 오래된 항아리 하나가 놓여 져 있습니다. 드나들며 가끔 항아리를 닦거나 어루만지다가 뚜껑을 열어봅니다. 간수는 이미 다 빠져서 눈보다도 하얗게 반짝이는 소금이, 한 움큼 쥐면 바스락거리며 손가락 사이로 흩어집니다.

지금은 돌아가신 시어머님의 항아리입니다. 그해 겨울 김장 때 쓰려고 사두신 소금이었는데, 돌아가신 후 마땅히 둘 곳이 없었고 다른 자식들이 가져가질 않아, 유품 아닌 유품이 된, 해가 갈수록 애틋해지는 소금항아리입니다.

밤은 길어지고 날씨가 추워지는 이맘 때 쯤 이면 여기저기서 겨울을 준비하기 위해 서두르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뉴스에선 강원도에 함박눈이 내렸다는 소식을 전하고 어느새 청주에도 첫눈이 내리는 것을 보니 겨울은 그렇게 우리들 곁에 와 있었나 봅니다.

짚으로 동여맨 김장 배추에 하얀 서리가 내려앉으면 여인네의 겨울이 시작됩니다. 예전부터, 초겨울이 오면 이 땅의 어머니들은 겨울맞이 통과의례 중 하나인 김장을 했지요. 긴 겨울, 딱히 상에 올릴만한 반찬거리가 없었기에 식구들에게 먹일 김치를 준비하는 것은, 아버지들이 땔감을 쌓아두거나, 식량을 준비하는 것과 같은 필수적인 것이었습니다.

오로지 이날을 위해 봄부터 가을까지 손이 쉴까, 발이 놀까 ,몸을 바삐 움직여 김장에 필요한 채소들과 고구마등과 같은 식량을 손수 기르는 것은 자식을 사랑하는 모정이었고 긴 겨울을 대비하는 과정이었습니다.

어머니가 독을 씻어서 말리면, 아버지는 땅을 파서 독을 묻습니다. 마당에 산더미처럼 쌓아올린 배추, 총각무를 다듬고, 소금에 절이다 보면 하루해는 금방 기웁니다. 어둑해진 불빛에 무채를 썰고 갖은 양념을 준비하시는 어머니의 밤은 분주한 손길 따라 깊어 갑니다.

다음날 아침부터 온 식구, 친척이 모여서 한쪽에서는 배추, 무 등을 씻어주면, 다른 쪽에서는 양념에 버무립니다. 그러면 어머니는 장날 사다놓은 돼지고기를 삶고 막걸리를 준비하시지요. 덩달아 아이들의 고사리 손도 그날 하루는 바쁘게 일손을 돕습니다.

가마솥에서는 돼지고기가 허연 김을 모락모락 피우며 익어갑니다. 볕 좋은 마당 한 쪽에 맷돌에 갈아 만든 두부와 돼지 수육 그리고 막 담은 김장김치를 썰어놓으면, 김장도 얼추 끝이 납니다. 함께 김장을 하고 삶은 돼지고기 한 점을 김장김치에 싸서 먹을 때 입안에서 퍼지는 고소함과 따뜻함은 무릇 돼지고기 때문만은 아닐 것입니다.

요 근래 들어 가슴 한 구석이 답답해지면서 아려옵니다. 몇 해 전 갑자기 세상을 뜨신 어머님 때문임을 몸이 기억 하는 것이겠지요. 어머님은 일하는 며느리 힘들까봐, 알리지도 않고 몰래 이웃들과 김장을 하셨지요.

온갖 김치를 빈 통에 채워 주시며, 하나라도 더 줄게 없나 찾으시던 어머님, 다시는 그 음식을 맛볼 순 없지만 현관에 놓인 소금항아리는 이제 어머님을 대신해 올 겨울 김장을 합니다.

눈 내리는 겨울밤, 창밖 하늘에 마음을 빼앗깁니다. 비록 지금은 도시 불빛에 보이질 않지만, 끝없는 어둠의 행렬과 무수히 많은 별들이 있음을 기억합니다. 어머님, 당신의 겨울이 그립습니다. 그곳에선 편안하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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