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기사

이 기사는 0번 공유됐고 0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채민자

봉정초등학교 교감

앙상한 가지를 드러내며 어서 봄날이 오기만 기다렸던 겨울, 어느새 봄이 다가와 꽃이 피더니 연두색 향연이 짙어집니다. 아궁이에 불 지피던 그 따끈함은 아닐지라도 등으로 쏟아지는 따뜻한 봄기운을 제대로 느끼지도 못했는데, 이렇게 짧게 있다 갈 줄이야, 참으로 야속한 봄입니다. 날마다 햇살이 비추지 않더라도 괜찮다 위안 삼으며 기다렸건만, 바삐 지나가는 짧은 봄은 또 다른 계절을 열어주고, 시간은 그렇게 강물 위를 흐릅니다.

바람처럼 흐르는 세월에 지나면 모든 것이 허허롭고 공허하게 다가오지만, 이 또한 부질없는 감정임을 알기에 발길을 대청호로 돌립니다. 그제서야 엉클어진 가슴이 트이며 맑아지는 정신을 느낍니다.

작은 길 모롱이에서 갈 길을 정해봅니다. 한쪽은 나무로 길을 놓은 편안하고 안락한 길, 다른 쪽은 이름 모를 풀잎과 나무들이 어우러진 한적한 오솔길, 망설이다 숲과 물빛과 함께 오솔길을 걸어봅니다. 한 걸음씩 한 걸음씩 땅과 호흡하며 아주 천천히 걸어봅니다.

우리네 삶도 그러하겠지요? 어느 갈림길에서 길을 정하지 못하고 우두커니 서 있는 자신을 보게 될 때, 안개 속을 헤매는 것처럼 도무지 길이 보이지 않을 때, 우리는 당황하며 인생의 길 찾기에 허둥대는 자신을 보게 됩니다. 산을 품은 호수는 산 그림자를 짙게 뱉어 놓습니다.

산과 물을 찾는 의미를 되새김질 합니다. 아무렇게나 그어 놓은 어린아이 그림처럼 구불구불한 산기슭을 따라 걷다보면 여인네 치마 자락처럼 살포시 드러난 황토가 산과 물을 구분 짓고, 호수위로 쏟아지는 햇살은 눈부셔 차마 마주보기 힘들어 집니다. 잔잔한 물살에 내 마음이 투영되어 하늘에 비춰도 될 만큼 밝아지는 것이 나를 내려놓아도 될 듯합니다.

은빛 물결은 몸을 맡긴 갈대들을 간질이고, 바람은 우거진 녹음을 갈래갈래 흩어놓아 언뜻언뜻 비치는 여름을 못내 애태우게 합니다. 가녀린 풀잎조차 길 가는 나그네를 붙잡아, 떠다니는 산그늘이 부러운 계절입니다.

산 정상에 올라서서 알 수 없는 현기증에 온몸이 어지럽습니다. 시선이 끝나는 곳이 호수인지 하늘인지, 도통 알 수 없는 파란 물빛에 우거져가는 푸른 숲은 멀찍이 달아나 버렸습니다. 몽실한 구름은 산허리에 걸려 마치 목화솜을 던져놓은 것 같고, 내려오다 만난 현암사가 이리도 반가울 줄 몰랐습니다.

옛사람들을 만나러 달빛마저 쉬어가는 곳, 청정한 마을 미호동으로 갑니다. 이름도 아름다운 호수마을 미호동(渼湖洞), 그곳에 청동기유적지를 찾아 그들의 삶을 생각해봅니다. 발굴 후 복토돼 흔적을 찾기란 쉽지가 않지만 눈으로 꼭 봐야만 알 수 있는 것이 아님을 알기에 기원 전 강가에서 고기 잡고, 농사지으며 살아가던 조상들의 삶을 상상해 봅니다.

선인들은 이미 오래 전에 아름다운 호수가 조성될 것을 알았을까요? 소란스런 바위도 없이 부드러운 흙을 옮겨다 호수 속에 텀벙텀벙 빠뜨려 놓았음직한 미호동 둘레 길을 걸으며 편안함속에 빠져드는 온전한 '나'를 느낍니다.

가슴 한켠 남았던 아쉬움과 쓸쓸함은 뒷걸음질 쳐 어디론가 떠나버렸습니다. 대청호 잔물결은 우거진 숲 깊은 옹달샘처럼 날마다 수줍은 얼굴로 또 다른 이들을 맞이하겠지요. 돌아가는 길, 흐르는 무심천에 마음을 담으며, 가끔씩 내안의 나를 보는 침잠의 시간이 필요함을 알게 됩니다. 집으로 가는 발걸음이 참 가볍습니다.
이 기사에 대해 좀 더 자세히...

관련어 선택

관련기사

배너
배너
배너

랭킹 뉴스

Hot & Why & Only

실시간 댓글

배너
배너

매거진 in 충북

thumbnail 308*171

정효진 충북도체육회 사무처장, "멀리보고 높게 생각해야"

[충북일보] 정효진 충북도체육회 사무처장은 "충북체육회는 더 멀리보고 높게 생각해야한다"고 조언했다. 다음달 퇴임을 앞둔 정 사무처장은 26일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지방체육회의 현실을 직시해보면 자율성을 바탕으로 민선체제가 출범했지만 인적자원도 부족하고 재정·재산 등 물적자원은 더욱 빈약하다"며 이같이 말했다. 완전한 체육자치 구현을 통해 재정자립기반을 확충하고 공공체육시설의 운영권을 확보하는 등의 노력이 수반되어야한다는 것이 정 사무처장의 복안이다. 학령인구 감소에 따른 학교운동부의 위기에 대한 대비도 강조했다. 정 사무처장은 "학교운동부의 감소는 선수양성의 문제만 아니라 은퇴선수의 취업문제와도 관련되어 스포츠 생태계가 흔들릴 수 있음으로 대학운동부, 일반 실업팀도 확대 방안을 찾아 스포츠생태계 선순환 구조를 정착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선 행사성 등 현장업무는 회원종목단체에서 치르고 체육회는 도민들을 위해 필요한 시책이나 건강프로그램을 개발하는 등의 정책 지향적인 조직이 되어야한다는 것이다. 임기 동안의 성과로는 △조직정비 △재정자립 기반 마련 △전국체전 성적 향상 등을 꼽았다. 홍보팀을 새로 설치해 홍보부문을 강화했고 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