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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민자

봉정초등학교 교감

가을의 끝자락에서 친구를 생각합니다. 세월 흐르니 잎 떨어지는 가로수의 쓸쓸함도 내 것인 양, 허허로움에 가슴을 쓸어 담습니다.

철부지 어린 시절, 우정이 어떤 의미인지도 몰랐지만, 친구는 서로를 아껴주는 존재였고, 세상에 나아가 튼실한 뿌리를 내릴 수 있도록 도와주는 길잡이가 되었습니다. 곱디고운 단풍잎이 다 떨어지기 전, 친구들을 생각하며 옛 시절 그리운 곳으로 나들이를 떠납니다.

들녘에 쑥부쟁이 소담스럽게 피었습니다. 이미 코스모스는 지기에 바쁘고 거리엔 나무에 매달린 잎보다 떨어진 낙엽이 수북합니다. 가을이 지나는 중학교 교문에 총동문회 현수막이 펄럭이고 하늘은 맑기만 한 늦가을입니다.

교문을 들어서니 양옆에 은행나무가 팔 벌려 우릴 맞이합니다. 부지런한 동문들은 일찍부터 와서 준비를 다 마친 모양입니다. 운동장을 중심으로 가장자리에는 기수별로 천막이 펼쳐져 있고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소리는 흥겨움을 자아냅니다.

예전과 달라진 운동장 한 가운데 서서 잠시 유년시절을 더듬어 봅니다. 흐릿한 기억이 드문드문 떠오르지만 지금도 잊어지지 않는 것은 개울에서 모래를 대야로 퍼 날라 운동장을 다졌던 일입니다. 막 개교한 학교라 운동장은 엉망이었고, 비라도 오는 날이면 운동장은 거대한 진흙 밭이 되었지요.

구석구석을 모래로 깔고 다졌던 커다랗던 운동장이 작아져 보이고, 몰라보게 달라진 교정이 이제는 조금은 낯설게 다가옵니다. 교실너머로 보이던 고즈넉한 마을 풍경은 건물에 둘러싸여 보이질 않습니다.

우리 동기들에게 배정된 천막으로 갑니다. 머리는 벗겨지고 얼마 남지 않은 머리카락조차 희끗희끗해진 친구가 제일 먼저 악수를 청해옵니다. 농촌에서 고향을 지키며 농사일로 바쁜 친구지만 가을걷이를 다 끝낸 친구는 그 맘씨만큼이나 환한 미소로 우리를 반겨줍니다.

벌써 50줄에 든 친구들 입니다. 그을린 얼굴에 주름은 몇 가닥 생겨나고 눈가에 지나온 세월만큼이나 잔주름이 배어있습니다. 가족을 건사하고 부모님 부양하면서 자신의 일터를 가꾸고 살아온 사람들입니다.

몇 십 년 만의 만남에도 한눈에 알아봅니다. 하하 호호 웃으며 서로를 쳐다보고 안부를 주고받음에, 영락없는 철부지 소년 소녀로 돌아가 지나간 세월이 무색해집니다.

기수별 배구시합에 1회 졸업생인 우리도 출전을 했습니다. 선수로 뽑힌 친구들이 있는 힘껏 용을 쓰고, 모두들 목청을 한껏 높여 응원을 하지만, 헛손질에 배구공은 바닥으로 떨어지거나 허공으로 날아가기 일쑤입니다.

힘은 쓰지만 예전 만 못하고, 달리는데 마음만 앞서지 좀처럼 앞으로 나아가질 못합니다. 결국엔 맨 뒤에 쳐져서 결승선에 들어옵니다.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히고 가쁜 숨을 몰아쉬지만 그래도 세상을 다 얻은 것처럼 천막으로 돌아와 친구들의 격려를 받습니다. 모락모락 숯불에 삼겹살이 구어지고 부딪치는 소주 한잔에 우정은 깊어만 갑니다.

흘러간 세월에 교정이 조금은 낯설지만 벗을 향한 변함없는 미소와 반가움에 하늘엔 노을이 번집니다. 우리들 시간처럼 가을이 저뭅니다. 겨울이 다가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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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현우 충북도체육회장, "재정 자율화 최우선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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