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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민자

봉정초등학교 교감

누구나 두 어깨에 짐을 지고 평생을 살아갑니다. 살다 지치거나, 마음의 상처를 받으면 어디에서 위로를 받을 수 있을까요· 가끔씩 찾는 고향은 몇 년 전부터 낯설게 다가옵니다. 이곳이 시골인가 싶게 공장은 여기저기 들어섰고 거리엔 북적이는 얼굴색도 제각각입니다. 이미 어릴 적 살았던 집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산이라고 해봤자 야트막한 동산 몇 개가 전부인 이곳은 대부분이 논이 펼쳐져 사철 먹을거리가 넘쳐났던 곳입니다. 봄부터 담배농사를 지어 마을엔 담배 건조장 우뚝 있었고, 고추, 고구마, 그리고 논농사로 일 년을 쉬지 않고 일을 하는 알뜰함이 있던 마을입니다.

그러나 넉넉지 않았던 우리집은 담벼락을 빙 둘러 옥수수를 심었습니다. 옥수수에 단물이 다 들기도 전 알이 조금이라도 맺히면 어느새 여지없이 우리 5남매로부터 수난을 받았지만 지금까지도 입안에 퍼지던 그 달콤함은 잊을 수가 없습니다.

내 고향 음성군 대소면, 고향엔 부모님께서 계십니다. 찾아 뵐 때마다, 새 떠난 빈 둥지처럼 늙고 쇠약해져 예전만 못함에도, 일가를 이룬 자식을 아직도 걱정하시는 모습을 뵈면, 머릿속에서는 마른 장작 부딪치는 소리가 납니다.

어릴 적, 비가 내리는 날은 엄마가 모처럼 일손을 놓으시는 날입니다. 그러면 우리 5남매는 엉덩이가 들썩거리고 부엌을 기웃대기 시작합니다. 아니나 다를까, 어머니는 우리 심정을 헤아리기라도 하듯 큰 양푼을 꺼내놓고 귀하디귀한 밀가루를 풀어 치대셨습니다.

사랑방에선 아버지도 즐거우신 듯 연방 헛기침을 하시고, 차르락 차르락 홍두깨로 밀때마다 얇아지는 밀가루 반죽은 운동장만큼이나 넓어집니다. 한석봉 어머니가 떡을 썰 때 이 모습이었지 않을까 싶게 어머니의 반죽 써는 솜씨는 한치의 오차도 없는 일품이지만 우리 5남매는 누가 마지막 꽁지를 가지느냐에 온 신경이 쏠려 있었습니다.

그러나 십중팔구 마지막 꽁지는 대게 막내 남동생이 차지하거나 그도 아니면 오빠들 차지가 되었습니다. 차별을 받아본 것 중 제일 억울하지 않을까 싶게 심통을 부리면 엄마는 그 환한 웃음으로 한 번 더 꽁지를 만들어 주셨는데, 짚불에 구운 그 꽁지 맛이 그렇게 구수할 수가 없어 지금 생각해봐도 저절로 입가에 침이 고입니다.

내 고향 집 앞 미호천에는 맑은 냇물이 흐르고 도랑에는 항상 물이 넘쳤습니다. 수시로 붕어나 메기도 잡지만 특히나 오빠들과 미꾸라지 잡았던 일은 잊을 수가 없습니다. 장마철, 도랑에는 물 반 미꾸라지 반입니다. 비가 잠시 소강상태에 접어들면 양동이를 들고 도랑으로 갑니다. 오빠들이 얼개미를 도랑에 대고 두어 번 첨벙거렸을 뿐인데도 미꾸라지들이 한가득 올라옵니다. 그러면 어머니는 설렁설렁 수제비를 떠놓고 얼큰한 추어탕을 끓여주셨는데 별다른 양념 없이도, 장마로 인해 눅눅했던 집안을 날려버릴 정도로 참 맛있었습니다.

올해는 유난히 가뭄이 심합니다. 몇 십년만의 가뭄이라는 소식에 농부의 마음이 애달픕니다. 냇물에는 탁한 물이 흐르고 가장자리에는 뭉턱뭉턱 이름 모를 이끼만 덩그러니 고여 있습니다. 아무리 그 옛날 추억을 되돌리려 해도 자꾸 멀어져 갑니다. 시간, 구름처럼 흐릅니다. 푸른 물을 밤새워 토해내던 모래는 굴러서 지금쯤 어디로 가고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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