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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민자

봉정초등학교 교감

우거진 녹음 사이로 살며시 바람은 들어와 앉는다. 8월의 짙은 녹음, 견고한 일상은 벗어 던지고 허공을 헤매는 구름을 벗 삼아 흔들리는 잎들을 바라본다. 바위는 늘 같은자리에서 오가는 이들을 지켜보고, 더불어 산객의 마음까지 잡는다.

구름은 숲 사이로 흘러 들어가 맑은 바람소리로 돌아온다. 나무와 나무 사이에서 숨바꼭질 하던 풀꽃과 가벼이 눈 맞춤을 하고, 잎새에 뛰노는 햇살과도 얼굴을 맞대면 여름은 어느새 조용히 곁에 머문다.

숲이 이어진 길 모롱이에 작은 청보라 꽃이 보인다. 외줄기 가느다란 몸으로 바람에 흔들리며 애잔한 그리움인 듯, 물안개 피어오르듯이 산도라지 꽃이 피었다. 도라지꽃에서는 누구나 그리워할 어머니 체취 같은 향기가 난다고 했던가· 바람결에 하얀 모시적삼 저고리 같은 어머니 향기가 묻어난다. 태초의 그리움이다.

고요함이 깃든 숲에 길이 열렸다. 나보다 앞서 간 이가 있어 함초롬히 길이 열렸다. 이런 길은 서둘지 않아도 좋다. 이름 모를 꽃들은 피었다 지고, 언뜻언뜻 스치는 청명한 바람이 울타리가 되어 숲을 가만히 끌어안으면 일제히 풀잎은 춤을 춘다.

풀벌레, 산새들의 지저귐이 짙어 가는 이 산 저 산, 하늘은 녹음을 비추고 마침내 향기로운 바람으로 맞을 때, 숲 속의 길을 걷는 산객은 숲의 푸르름 만큼이나 푸른 마음을 안고 걷는다. 나무들이 빽빽하게 들어서 있지 않아도, 그다지 크지 않아도 좋을 숲길을 걷는다.

그늘의 주인이 되어본다. 숲속에서는 누구나 주인이 될 수 있음에야 숲의 넉넉함을 믿어본다. 그러면 나무에 수액이 돌 듯 시들고 풀기 죽은 내 몸에도 생기가 솟으리라.

거리마다 후줄근한 텁텁한 무더위가 기승을 부린다. 햇살은 넘실대고 회색빛 빌딩이 주는 위압감에 온 옴은 이미 지칠대로 지쳐 있을 때, 마음에 잔물결이 일렁이면 짙은 초록색이 유혹하는 가까운 숲으로 가야한다. 오이하나, 작은 물병만 있어도 좋을, 그늘 나무아래 가만히 누어만 있어도 좋을, 그런 숲으로 가야한다.

그래서 찬물로 갓 세수한 듯 청결한 얼굴로 우리를 맞이할 숲에서 무엇을 하기보다는 노래하는 것을 지켜보기만 해도 좋지 않을까·

여름 숲에는 청춘의 신록이 아니라 장년의 녹음이 풍성하다. 햇살이 따가우면 나무 등걸에 어깨를 내려놓고 지그시 눈을 감고 잔가지에서 일렁이는 바람소릴 듣는다. 그러면 어디선가 몰아치던 마음의 광풍도 고요해지고 자연과 합일됨이 느껴진다.

숲에 들어 가본 사람들은 다 안다. 그동안 우리가 주고받았던 일상의 언어들이 얼마나 시끄럽고 허망한 것인지를, 고달프고 덧없는 것인지를 말이다. 껍질도 번거로워 벗어던지는 자작나무가 날선 얼굴로 하늘을 머리에 인다.

숲의 언어를 가만히 들여다보자. 숲에는 싹을 틔우고 길러내어 아름드리 거목을 만들어내는 그들만의 언어가 있다. 솔가지를 훑고 지나는 소리, 날아가는 새의 깃털소리, 그리고 낮은 곳으로 흘러 바위를 안고 가는 투명한 물소리가 있다.

숲이 사색(思索)을 한다. 선정에 든 스님처럼 번잡함 없는 고요함이다. 산객은 걸음을 멈추고 숲을 바라보며 내면의 여행을 정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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