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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민자

봉정초등학교 교감

겨울 산에 오르면 빈가지 사이를 지나는 바람이 뺨에 사정없이 몰아친다. 꽁꽁 얼어붙은 도로, 잎마저 떨어져 앙상한 가로수, 황량하리만치 휑한 들녘, 말갛게 별이 빛나는 신새벽은 겨울이면 떠오르는 단상들이다.

배낭을 메고 일찍 길을 나선다. 묵직한 발걸음에 온몸이 뒤틀려 한걸음 내딛을 때마다 돌아설 구실을 찾지만 훅하고 들이마시는 신선한 아침 공기에 몸은 버스에 실려 있다.

말이 없는 친구가 있다. 별다른 말이 없어도 심심하지도 그렇다고 불편하지도 않다. 나이 들면서 서로 어깨를 나누고 산을 오르거나 길을 걷는 횟수가 점점 많아진다.

친구 어깨에 기대 얼마를 잤을까· 졸다 깨고 보니 창 밖에 진눈깨비가 날리고 있다. 낭패감이라니.... 이미 버스는 산길 도로를 지나고 있었다. 산에 들어서니 진눈깨비는 함박눈으로 변해 쏟아지고, 산문으로 드는 길은 저 숲 밖의 세상과는 완전히 다른 세계를 빚어낸다.

알싸하고, 상쾌하며, 무어라 형언할 수 없이 신선하고 깨끗한 향기가 밀려왔다. 향기는 강렬했다. 아마도 사람이 주는 향기가 아니라 자연이 주는 향기여서 그러리라. 폐를 관통하고 모세혈관 하나하나를 훑는 바람은 산 아래에서 찌들고 피폐했던 심신까지 씻겨 준다.

산을 걷고 싶어 떠난 길, 잎은 다 떨어지고 앙상한 가지만이 덩그러니 남았다. 바닥에 뒹구는 낙엽위로 눈이 쌓이고, 여름에 수풀에 가려 보지 못했던 바위의 장엄함도 보인다.

그래서 겨울 산이 좋다. 능선도 올올이 보여주고 속살도 훤히 보인다. 아늑하고 고요하고 그리고 때론 소란스럽기도 하지만, 그래서 자신을 들여다보는 시간이 되기도 한다.

산을 오를 때 나는 나무가 되기도 하다가 하늘이 되고 바람이 되기를 소망한다. 겨울 산은 세상이 잠길 듯 모든 생명의 기운이 사라진 것처럼 보여도 세월의 무게에 허물러진 고사목 언저리엔 또 다른 생명이 살아 숲을 만들고 있다.

구름이 걷히고 눈이 그쳐간다. 나무 사이를 거닐며, 나무줄기와 가지를 지나는 바람의 말을 듣는다. 그렇게 시간은 느리게 흘러간다.

산 능선을 따라 오른다. 맑은 햇살에 따라 쩍쩍 갈라진 소나무 껍질, 메말라 나뭇가지에 눈이 녹으며 물기가 베인다. 푸른 숨을 토해 낸 숲에는 생기가 돋는다.

누가 산에 오르는 것은 삶과 같다고 말을 했던가· 십여 년 전만 해도 오로지 정상만을 바라보며 걸었다. 그래서 금세 지쳐 주저앉기도 했고, 구불구불한 길 보다는 지름길로 오르며 숨을 헐떡이기도 했다. 산을 만나고 산을 느끼러 오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정상에 오르기 위해 왔었다.

산도 나도 말이 없다. 거친 숨소리만이 들린다. 이따금 가지에 쌓인 눈덩이가 쏟아지거나 솔가지에서 이는 바람소리도 들린다. 이럴 땐 눈 위를 걸으며 내는 소리조차 거추장스럽다. 세상을 나선다고 잊는 것은 아니지만 깊은 산 먼 길을 아무 생각 없이 걷는 것도 좋을 일이다.

정상에 오르니 모든 것이 휑하다. 눈을 싸안은 산맥들이 골짜기를 고스란히 비춰주고 거칠게 없는 바람만이 주인이다. 따뜻한 물 한잔을 들고 산 아래를 굽어본다. 굽이굽이 돌아 멀리 올라 온길, 돌아가는 길이 남았지만 그래도 아직은 산의 일부가 됨을 더 느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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