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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진

옥천교육지원청 교육과장

임진년 새해 새벽 기도 가는 길이 하얀 눈으로 덮였다. 새해 첫 날 밤부터 내린 눈은 새해 아침을 온통 하얀 세상으로 만들어 놓았다. 이른 새벽이라 사람들의 통행이 적어 폭신한 눈을 밟는 기분이 상쾌하고 설레기까지 했다.

뽀드득 뽀드득.

뽀드득 뽀드득.

경쾌한 눈 발자국 소리가 교회까지 따라왔다. 참으로 오랜만에 들어본 아름다운 소리였다. 기도실에서 언 손을 녹이며 지난 일년 간의 부끄러웠던 모습을 떠올리며 반성을 하고, 새해에는 후회하지 않게 살고 싶다고 빌었다. 감성적이고 다혈질인 나는 후회할 일도 잘하고 반성도 잘한다. 때로는 내가 행한 일들이 의도와는 다르게 해석되고 회자되기도 하여 나를 곤혹스럽게 만들기도 했었다.

지난 한 해는 내 개인적으로 정말로 다사다난했던 한해였다. 남편이 병이 나서 병원신세를 지기도 했고, 친정어머니가 뇌수술을 받고 회복 중이고, 큰 딸이 결혼을 하여 가정을 꾸리는 등 정말로 크고 작은 일들이 유독 많은 한 해였기 때문이다. 그 많은 일들을 헤쳐 나오느라 힘들었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쳤다. 우리가 밖에서 오는 고통을 괴로워하는 이유 중의 하나는 정말 고통 없이 살아야 한다는 강박관념 때문인 것 같다.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고통에 대해 가지고 있는 잘못된 판단이며, 그 잘못된 생각으로 인해 우리는 자신에게 더 큰 상처를 입히기도 한다. 기도와 명상은 바로 상처를 치유하고 메말라 가는 영혼에 물을 주는 최고의 영적 휴식시간이다. 그래서 나는 그 시간을 사랑한다.

상처 난 마음을 다독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도 여전히 눈 발자국 소리가 정겹게 따라온다. 뽀드득 뽀드득 반복하며 따라오는 내 발자국 소리가 어찌나 아름답게 들리던지. 눈 위에 발자국 만들고 자꾸 뒤를 돌아보았다. 이리저리 발길을 멋대로 옮기며 그림도 그려보았다. 어릴 때 했던 것처럼 여러 가지 꽃모양도 만들고, 담벼락 밑 비교적 눈이 두툼하게 쌓인 곳에서는 소리에 귀 기울이며 살짝 밟아보기도 했다. 새벽이라 보는 사람도 없어 혼자서 더 재미있게 자국을 만들며 소리를 즐겼다.

한참을 뽀드득 소리에 빠지다보니 그 소리는 초등학교 때 구호물품으로 나누어주던 가루우유 속에서 나던 소리와 흡사함을 느꼈다. 크나큰 가루우유 부대 속에서 개인별 작은 봉지로 옮겨 닮아 줄 때 나던 바로 그 소리였다. 너무나 하얘서 푸른빛이 나던 그 가루우유는 늘 먹고 싶던 어린 날의 아픈 추억이기도 하다. 가난이 부끄럽게 여겨지지 않았던 초등학교 때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지도 모르는 흰 빛깔의 부드럽고 달콤한 우유를 매일 먹고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집으로 가져가야할 분배 된 가루우유를 십 여리 산길을 가다가 다 먹어치웠다. 생으로 먹지 말고 뜨거운 물에 타서 먹어야 했지만 달콤한 향내는 어린 우리를 유혹했다. 봉지 속에 손을 넣어 한 움큼 쥐어 입어 털어 넣고 나면 그 때부터는 벙어리가 되어야했다. 입천장과 잇몸에 달라붙은 가루우유는 한 동안 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끈끈한 엿처럼 되었다. 생으로 너무 많이 먹어서 배탈이 나기도 했다. 흰 눈을 보면서 왜 갑자기 그 가루우유가 떠올랐을까·

아무튼 나는 새해 아침 우유빛깔 같은 하얀 눈을 뽀드득 뽀드득 소리 나게 밟으며 희망의 새 날을 맞았다. 이웃 모두에게 고통도 서러움도 없는 그런 세상을 염원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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