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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영숙의 거기 뭐가 있는데? 이집트 - 옥외 박물관 룩소르 서안(西岸)

불멸의 파라오 거대한 위엄 앞에 숨을 죽이다

  • 웹출고시간2010.12.23 20:07:40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핫셉수트 장제전 측면 모습.

소라야!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나일강 東岸과 西岸을 아우르기에는 사실 룩소르보다 옛 이름 테베가 더 적합한 것 같아. 옛날 그리스인들이 이집트의 고도에 그들 식으로 붙인 이름이기도 하고, 나일강 東岸과 西岸의 기념물 구역을 통칭하기도 하니까…

파란 하늘 아래 황갈색 계곡이 나타났어. 높으니까 분명히 산은 산인데 나무도 풀도 없는 산. 저 계곡이 바로 파라오와 귀족들의 내세를 위한 안식처야. 지금까지 발굴된 것은 64기인데 공개하는 것은 9기이고 현재 발굴 중인 것도 많아. 지금은 미이라도 보물도 없지만 파라오의 깊은 잠자리를 본다는 게 호기심보다는 연민이 더 많아. 소라야! 그들은 정말 부활했을까?

◇ 왕가의 계곡

파라오와 귀족들의 내세를 위한 안식처인 '왕가의 계곡' 입구.

버스에서 내리니 따가운 햇살에 온몸이 금방 익어버릴 것 같아. 선글라스가 없으면 눈을 뜨지 못할 정도의 강렬한 햇볕이 내리 쬐고 있어. 버스의 온도계는 43도를 가리켰지만 체감온도는 60도쯤 되는 것 같아. 꼬마기차를 타고 한참을 오르고도 또 걸어야해. 화끈거리는 온몸이 고통을 호소하지만 그늘이 있어야 쉬지.

소라야! 저 계곡을 봐. 작은 입구들이 여기저기 보이지? 산의 꼭대기가 피라미드와 비슷해서 파라오들이 이곳을 안식처로 삼았다고 해. 저 꼭대기가 피라미드 같니? 고왕국 파라오들의 피라미드가 도굴되고 훼손되는 것을 본 신왕국의 파라오들이 찾아낸 새로운 방법이 바로 깎아지른 듯 험난한 암벽 속에 조그만 구멍을 파고 그 지하로 들어간 거야. 구불구불 미로로 연결된 방을 만들고 벽화를 그려 안식을 꿈꿨지만 산 자들의 탐욕이 그걸 그냥 둘 리가 있겠니? 돈이 되는데 말이야. 미이라 몇 구를 수습한 거 외에는 아무 것도 없었대. 분명히 사진촬영금지이지만 여기저기서 찰칵거리는 소리가 들리는데 관리인들이 '박시시'(뒷돈)를 받고 눈감아 준거라니 예나 지금이나 여기나 거기나 돈 앞에선 어쩔 수 없는 게 인간인가 봐.

일부 무덤은 그리스 로마시대부터 발굴되었지만 대부분의 무덤들은 18~19세기 유럽인들에 의해 발굴되었어. 다시 살아나고 싶어 꼭꼭 묻고 야단법석을 떨었지만 그들이 다시 살아났다는 이야기나 기록은 없으니 죽음은 여전히 풀 수 없는 수수께끼와 두려움의 대상으로 남아 있어. "죽음은 삶 때문에 인식되는 것이기에 삶이 끝나면 죽음도 끝난다"라고 말한 소설가 구효서님 이야말로 인생을 달관한 초인이 아닐까? 람세스 3세의 무덤통로길이는 80m나 돼. 방도 10개나 되고 나일강이 범람하여 지하로 들어올 것을 대비하여 수조역할을 하는 방까지 만들었다니 그들의 지혜와 기술이 놀랍기만 해.

벽화의 채색이 제일 잘 남은 곳은 람세스 9세의 무덤이야. 어제 본 딱정벌레, 매, 양의 벽화가 많이 나오는데 이것은 아침, 점심, 저녁을 뜻한대. 이곳의 벽화에는 미이라를 만드는 과정이 차례로 그려져 있어. 혼이 하늘로 오르도록 내장이 담긴 항아리를 위로 들어 올리는 여신들의 모습과 드디어 태양으로 부활하는 모습의 그림이 선명한 색깔로 남아있어.

소라야! 미이라를 만들 때 모든 장기는 꺼내서 단지에 보관하지만 심장은 몸속에 남겨둔대. 그리고 그 심장 속에 저 딱정벌레를 넣는다는구나. 부활하라고… 소라야! 딱정벌레가 얼마나 신성한 동물이었는지 알겠지? 난 어제 세 바퀴를 돌았으니 좋은 일이 있을 거라고 믿어. 다른 무덤으로 가기 위해 밖으로 나오면 발바닥이 불타는듯해. 서양여인들은 끈 하나 달린 민소매에 반바지 그리고 쪼리 차림이지만 나는 운동화를 신고 온 몸을 감싸고도 모자라 양산까지 쓰고 이미 뜨거워진 물을 몇 모금 마셔보지만 더위는 참을 수가 없어. 그래도 밖에서는 땀이 흐르지 않아. 왜냐하면 다 말라버리니까…

람세스 6세의 무덤에는 초기 기독교인들의 흔적도 있어. 벽화 위에 벽화… 5000 여 점의 유물이 쏟아져 나온 투탕카멘의 무덤도 보고 싶었는데 입장료문제로 그냥 지나오는데 어찌나 아쉽던… 카이로에서 본 황금마스크와 왕비가 투탕카멘에게 전하던 3300년 전의 수레국화 한 아름을 본 것으로 만족해야지…

◇ 핫셉수트 여왕 장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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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 최초의 여성 파라오 핫셉수트 여왕의 시신을 미라로 만들기 전에 장례식을 하던 핫셋수트 여왕 장제전.

이집트 최초의 여성파라오 핫셉슈트 여왕의 시신을 미이라로 만들기 전에 장례식을 하던 곳이야. 꼬마기차를 타고 와서도 약 1㎞ 정도를 올라가야 해. 따가운 햇볕을 온몸으로 받으며 숨을 몰아쉬고 바라본 거대한 건물! 높직한 절벽을 병풍삼아 3단으로 지어진 단순하면서도 강한 힘이 느껴지는 건물에는 우람한 기둥이 22개나 있고, 1층 끝부분엔 오시리스(죽음의 신) 석상이 서있어. 22년간 통치하면서 8년에 걸쳐 신축한 건물이야.

소라야! 당시 파라오들은 순수혈통을 지킨다고 남매간, 인척간, 심지어는 부녀지간에도 결혼을 했다는구나. 이 여왕도 아버지 첩실의 소생 그러니까 이복동생 투트모스 2세와 결혼했어. 그런데 딸만 하나두고 요절하는 바람에 첩실 소생인 9살짜리 투트모스 3세에게 왕좌를 줘야만 했어. 그리고 자신의 딸과 투트모스 3세를 결혼시켰으니 촌수가 어떻게 되니? 참 복잡하다. 아무튼 당시의 여자들은 남성의 노리개에 불과했다는데 섭정을 하다가 파라오가 되었으니 이 얼마나 파격적인 사건이었겠니…

핫셉수트 여왕이 3500년 전에 심었다는 우물나무 뿌리.

이 장제전의 2층 주랑(柱廊)에 자신의 어머니가 아몬신의 혈육을 임신, 출산하여 아몬신에게 신생아를 보여주는 부조를 남겼어. 자신이 아몬신의 직계임을 선포한 거야.

한편 20여 년 간 억압된 생활을 강요받은 의붓아들이자 사위인 투트모스 3세는 여왕 사후, 즉위하자마자 여왕에 대한 복수로 신전의 많은 부분을 파손하고 여왕의 자취가 남아있는 모든 벽화를 쪼아냈고 말았어. 심지어는 핫셉수트가 이룩한 공적을 지우고 자신의 이름을 새겨 넣기까지 했대. 세월이 흘러 기독교가 들어와 수도원으로 사용되면서 장제전의 그림이며 조각이 우상이라하여 또 훼손되고… 여왕이 사랑했던 장제전의 건축가 '센무트'는 여왕이 묻힐 자리 옆에 자신의 자리도 비밀스럽게 설계했다가 사전에 발각되어 실패했지만 지금은 묘실 깊숙한 곳에 나란히 자리를 만들어놨어.

두 사람의 혼이 머물고 있는 장제전을 나서며 마지막 여왕 클레오파트라 생각이 났어. 로마의 실력자들과 결혼하여 권력과 부를 누렸던… 지금의 이슬람국가 이집트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사랑의 화신들. 대단한 여왕들이야.

◇ 멤논의 거상

사암 통돌로 깍아 세운 높이 21m, 무게 1천t '멤논의 거상'

금으로 벽을 만들고 은 벽돌을 쌓았다는 아멘호테프 3세의 신전 석상이야. 현재 신전은 없어지고 이 멤논의 거상만 자리를 지키고 있어. 길가에 우두커니 서있는 거상은 그저 인증샷 용으로만 쓰일 정도로 인기가 없어. 지을 때만 해도 카르낙 신전과 비슷한 규모였다는데 강가에 인접한 평원에 있어서 강이 범람할 때마다 조금씩 침식되고 후대의 왕들이 외관의 돌을 뜯어다가 자신의 궁궐을 짓는데 써버려서 이렇게 되었다니 기가 막히고 안타까워. 불행 중 다행 일까? 신전 안에서 발굴된 조각상과 석비는 카이로의 고고학 박물관과 대영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니까.

소라야! 영화 '트로이' 봤지? 멤논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새벽의 여신 '이오스'의 아들로 트로이 전쟁 때 트로이의 왕 프리아모스를 도우러 갔다가 그리스군 아킬레스에게 죽임을 당한 인물이야. 2개의 거상 중 하나가 멤논과 닮았다고 그리스 사람들이 이름을 붙였대. 아침 햇살이 비칠 때면 오른쪽 상에서 이상한 소리가 났는데, 그들은 이것을 멤논이 어머니 이오스를 부르는 소리라고 생각했대. 기원전에 발생한 지진으로 석상에 균열이 생겼고 그 틈 사이로 바람이 지나가며 나는 소리였는… 사암 통돌로 깎아 세운 높이 21미터, 무게 1000톤의 거상은 아멘호테프 3세의 어머니(왼쪽)와 왕비(오른쪽)의 상이래.

왕비의 받침대에는 나일강의 신 '하피'가 상하이집트의 통일을 상징하는 연꽃과 파피루스 묶음을 들고 있는 모습이 조각되어 있어. 영생불멸을 꿈꿨으나 부활은 커녕 후손에게, 도둑에게, 침략자들의 말발굽에 의해 폐허가 되어 이렇게 흔적만 남았으니 인생만사 물거품이란 걸 절실하게 느꼈어. 지금 두 여인은 뜨거운 태양을 머리에 이고 수천년 전에도 그랬듯이 하릴없이 세월만 응시하고 있어. 저 슬픈 얼굴을 뒤로하고 이제 나일강을 따라 사막을 여행할 거야.

소라야! 아부심벨에서 만나. 안녕.

~~shukran (슈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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