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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미옥

청주시 1인1책 프로그램 강사

70년대 초에, 박꽃 피부를 가진 아가씨와 건장한 시골청년이 만났다. 두 사람은 금물결이 반짝이는 금강백사장을 걷고 있었다. 가진 것 없고, 배운 것은 짧지만 몸은 건강하니 결혼하자고 청년이 말했다. 그랬더니 오라버니 아시면 맞아 죽는다고 아가씨가 고개를 살래살래 흔들었다. 그러자 청년은 갑자기 강물 속으로 풍덩 뛰어 들었다. 아가씨는 발을 구르며 엉엉 울었다. 그런데 잠시 뒤, 청년은 커다란 잉어 한 마리를 맨손으로 움켜쥐고 환하게 웃으며 올라오는 게 아닌가! 청년의 손에서 파닥거리는 잉어의 은색비늘이 햇살에 부딪혀 별처럼 반짝거렸다. 이상은 언니와 형부의 러브스토리다. 미끈거리는 잉어를 맨손으로 잡는 남자, 중학교를 갓 졸업한 십팔 세 언니 눈에는 별이라도 따다 줄 수 있는 남자로 보이더란다. 형부는 잉어를 낚듯 강변 미루나무 아래서 언니 마음을 움켰다. 그리고 우리 집 마당에 무릎 꿇고 온밤을 지새우는 소동을 겪은 뒤, 언니는 이른 나이에 농부의 아내가 되었다.

금강 변에서 낳고 자란 형부는 수온이 올라가 잉어가 산란하는 유월하순이면 물의 속도가 느린 곳을 찾아가서 잉어를 잡곤 했다. "월급봉투 한번 받아보는 것이 소원이네요." 아이들 키우면서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언니가 언젠가 말하는 걸 들었다. 그랬더니 "맨손으로 잉어 잡는 사람 있으면 나와 보라고 햐!" 하고 형부는 응수했다. "도랑서 잡는 피라미새끼는 매운탕거리라도 되지, 강으로 들어가 애간장 태우고 잉어만 잡을게 뭐요·" 하니 "그놈을 손에 쥐는 맛을 당신이 알아·" 하고 받아쳤다.

내가 첫아이를 낳고 모유 수유를 할 때였다. 이른 장마가 한차례 퍼붓고 간 초여름 어느 날, 처제 젖 도는 데는 잉어 달여 먹이는 게 최고라면서 강으로 가셨다는 언니의 전화를 받고 언니 집 마당에 들어섰다. "처제, 이놈들 솥에 들어가기 전에 구경 좀 해봐…." 형부가 말씀하셨다. 고무함지박 안에서 팔뚝만한 잉어 두 마리가 유영한다. 뾰족하고 선이 둥글게 흐르는 주둥이 옆으로 뻣뻣한 수염이 쌍으로 났다. 불룩한 배가 빵빵한 것이 장정허벅지 버금간다. 기왓장처럼 질서정연하게 배열된 은색비늘들은 갑옷을 입은 것 같다. 뚱그런 눈은 있지만 한치 앞에 놓인 운명을 못 보는 놈들이, 가슴팍 지느러미를 키질하듯이 설설 부치며 주둥이를 볼락볼락 한다. 이런 날은 언니 타박은 음악이요, 월급쟁이 공무원 아랫동서가 부럽지 않은 형부의 날이었다. 언니는 잉어를 양은솥에 넣고 소금을 한주먹 휘휘뿌리고 뚜껑을 닫았다.

꿈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장맛비가 유난히도 거세게 퍼붓던 그해 여름날이었다. 경운기를 몰다 다친 형부를 청주로 이송중이라는 전화를 받고 병원으로 달려가니, 의사가 막 사망을 선고한다. 언니는 혼절해 버리고, 나는 의사를 붙잡고 어떻게 좀 해달라고 애원했다. 그리고 잠시 뒤 조용히 누워계신 형부의 눈을 감겨드리고 흙으로 범벅이 된 발을 물수건으로 닦아드렸다. 이렇게 온기가 따뜻한데, 이제 겨우 오십 중반인데, 가족 누구도 헤어질 준비가 되어있지 못했는데 영원한 이별이라니….

형부를 산에 묻던 날, 날은 어둑어둑해지건만 언니는 산을 내려가려 하질 않는다. "맨손으로 잉어를 잘도 잡으시더니…." 내가 중얼거렸다. 그랬더니 잉어 잡는 걸 그리 좋아했는데 타박만 했다며 언니는 오열했다. 봉분을 어루만지는 초점 잃은 언니 눈동자, 커다란 잉어를 손에 들고 환하게 웃던 형부 모습이 선연하게 보이며 가슴을 후볐다. 그리고 사십 구제 후, 유품을 정리하던 언니가 울며 전화를 해서 달려갔더니 보험통장하나를 내보인다. 통장 안에는 형부가 오래전부터 언니 모르게 길러온 잉어 한 마리가 살고 있었다. 소담하기가 아파트 한 채 장만할 만한 거액이다. "피라미새끼만한 월급봉투 부럽지 않다더니…." 하면서 언니는 그날 다시 통곡했다.

강은 여전히 흐른다. 강물은 돌을 닳게 하고 바다로 흘러간다. 오늘도 강은 잉어 떼들을 살찌워 내놓고 그곳에선 물살 따라 은빛 잉어들이 뛰겠지…. 지축이 흔들려 천재지변으로 산이 무너져 내리고 또 다른 산이 생겨나도, 시간의 바람에 의해 흩어져서 언젠가는 평지가 되기도 한다. 용암이 흘러내려 바위를 녹이고 그 자리가 옮겨져도 세월이 지나면 다시 제자리에 놓여 지기도 한다. 그러나 죽은 자는 영영 돌아오지 않으니 남은 자들은 뼈가 녹고 살이 아프도록 그리워하며 애통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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