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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미옥

청주시 1인1책 프로그램 강사

무술년 해넘이를 앞두고 송년인사 전자편지들이 속속 도착했다. 그중 한 장문편지에 마음이 머물렀다. 세상이 거꾸로 돌아간다더니, 스승께서 불초한 제자에게 해넘이 인사를 하셨다. "중견작가에게 아이 대하듯 무례히 이름을 불러댔네. 양해와 관용을 바라네." 정자세로 서서 읽은, 스승께서 쓰신 편지는 이렇게 마무리 되고 있다. 살면서 누군가에게 편지를 써 본 적이 언제였던가. 고마운 이에게 편지한번 쓰지 못하고 살았던 나를 반성했다. 그래서 한번 스승은 영원한 스승이라 하나 보다.

새해가 밝으면 제일 먼저 무슨 일을 해야 할지 결정됐다. 해넘이 전 타임은 놓쳤지만, 기해년벽두에는 편지를 써야겠다. 마음자리에 있는 사람들 얼굴을 떠올리며 신년인사 카드를 샀다. 한통의 편지에 내 마음이 머물렀던 것처럼, 내 편지를 받은 그대들 마음이 잠시나마 나를 향하여 머물 것을 상상하니 행복이 선불로 온다.

드디어 새해가 밝았다. 실로 오랜만에 쓰는 내 편지를 읽어줄 그대 누구실까. 폰에 입력된 이름들을 찾다 찡했다. 얼른 보아도 수십 명은 넘는다. '은혜 아니면 살아 갈수가 없네….' 복음성가 한 구절이 절로 나온다. 한 사람 한 사람과 있었던 크고 작은 일들이 영화처럼 지나간다. 그대들 덕성으로 인하여 오늘 내가 평안할 수 있음을 새삼 깨닫는다. 창의적 언어로 편지서두를 시작하지 말자. 연장자께는 통상언어로 인사드리니 오히려 공손히 마음이 모아졌다. 한자 한자 편지를 써나간다.

정을 말로 표현한 것이 노래라면 정을 글로 표현한건 편지다. '호수에 물결이 이네요. 조약돌을 던진 것도 아닌데 바람이 분 것도 아닌데….' 한분에게는 이렇게 시작하니 감정에 조용한 파문이 인다. '우리 구면이죠· 창을 열어보아요, 아침이든 저녁이든 창공에 누가 보이지 않나요·' 자주 만나는 임의로운 이에겐 이렇게 시작했다. 마음이 한없이 참해진다. 진실은 태양과 같아서 편지를 쓰다 보니 마음을 오롯이 드러내게 된다. 서로 간에 교졸하는 일을 버리게 되고, 그와나 사이만큼은 잘잘못을 따지지 않게 된다. 심연 깊은 곳에서 올라와 걸러진 잘된 노래들만 나온다.

이렇듯 대상이 뚜렷한 편지를 쓰는 일은 기쁨이다. 그런데 나는 불특정다수에게 수년째 산소편지를 쓰며 고민하기도 한다. '이 일이 과연 옳은 일일까, 내가 쓰는 글들이 누군가에게 정녕 한 모금 산소역할을 하기는 하는 걸까, 산소는커녕 허접한 공해는 아닐까….' 등등 생각이 많다. 돌아보면 얼마나 야성적인 글들이었던가. 겁도 없이 도공이 주걱을 잡은 듯 치열하게 써댔던 시간들만 선명할 뿐, 부끄러워 숨고 싶다. 세상에 완벽이 어디 있겠는가. 무엇이 무엇으로 이어지는지 알 수 없는 것이 인생이듯, 세상에 완벽한 건 없다고 스스로 위안해보나 부끄러운 건 마찬가지다.

산소편지 횟수가 백회를 넘기면서는 지인들에게 의견을 물을까 했었지만 하나마나한 질문이라 그만두었다. 글 같잖은 걸 그간 끄적거리느라 애썼다 이제 그만해라 하고 면전에 말할 사람이 어디 있겠나. 그런데 이상도하다. 누가 시키기라도 했단 말인가. 내 맘을 들여다보기라도 한 듯 글을 읽은 소감 문자가 들어오는 게 아닌가. 우연이라기엔 신기하리만치 이런 고민을 할라치면 독자반응이 오는 경험을 한다. '그대 격려가 저를 일으킵니다. 그대가 계셔서 제 삶이 빛납니다. 그대로 인하여 제 영혼에 팔레트를 다시 펼칩니다.' 나는 기해년에도 춤추는 고래가 되기로 했다. 누군가와 지켜야할 약속이라도 되는 양, 더 낮은 자세로 엎드려 사색하기로 했다.

글을 쓴다는 건 쓸쓸한 일이다. 어쩌면 지금 그대라고 믿고 있는 그대가 실상은 나의 그대가 아닐지도 모른다. 내가 스스로 설정해 놓은 허상 같은 그대들일지도 모른다. 그러할지라도 그 쓸쓸함의 황야에서 속히 빠져나와야한다. 허공에 내민 손을 해쓱한 빈손으로 거둘지라도 이 일을 멈출 수는 없다. 그 길이 너무 멀어 몸이 거부하면 잠시 숨을 고르며 갈지언정 펜을 놓을 수는 없는 일이다. 그래야만 또 다른 세상으로 나갈 수 있다. 새해가 시작됐다. 매처럼 비상하며 축포를 쏴 올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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