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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미옥

청주시 1인1책 프로그램 강사

그날 나는, 천년고도 경주앞바다 해변을 걷고 있었다. 바람은 쌀쌀하고, 하얀 이빨 드러내며 몰려오는 파도가 모래톱을 어루만지곤 뒷걸음질 치며 쓸려가기를 반복한다. 그런데, 끝없이 펼쳐지는 파란 수면위에 일제히 정렬하고 있는, 저 하얀 군단은 도무지 무언가…. 마음의 소원을 담아 곱게 접어서 띄운, 수천수만 개의 하얀 종이배 무리가 물살에 떠밀려 와있는 것 같다고나 할까. 차곡차곡 붙어있는 작고 하얀 요정들로 인하여 가슴이 탄다. 나는 가까이 더 가까이 바다를 향해 걸어갔다.

갈매기 떼다. 파란 물을 방석삼아 날개 접고 앉아 일정한 간격으로 일렁이는 파도의 리듬을 타며 오수라도 즐기는가보다. 무슨 꿈을 꾸는 겐가. 미동도 않는 것이 죽은 듯하구나. 어디하나 모나거나 날카로운 곳이 없이 다닥다닥 붙어서 물결에 몸을 맡기고 있다. 그 느슨함이 주는 영험…. 평화롭다. 파랑과 하양, 태양마저 뒤로 물러나 엷은 오렌지 빛 하나도 끼어들지 않은, 완벽한 파랑과 하양의 어울림이다.

마법에라도 걸렸는가. 파랑과 하양, 극치의 황금 비율에 매료되어 온 몸의 촉이 일어서며 현실세계를 덮는다. 갈매기야! 파도의 노래에 장단 맞추며 너희에게 마음을 기울여보면, 봄 햇살에 터지는 꽃망울들처럼 내게로 날아와 주겠니· 온몸에 성수를 뿌려대는 듯한, 너희 세례 한번 경험하고 싶구나. 열리었지만 보이지 않고 알 수도 없는 하늘처럼, 그들의 용맹과 그들 세계의 질서를 동경하면서 난 서있었다.

그때였다. 하얀 군단이 꿈틀하더니 일제히 날아오른다. 아, 나를 향하여 몰려오는 게 아닌가. 기도가 이루어지기라도 했단 말인가. 꿈인가 생시인가. 영화인가 현실인가. 마법 같은 일이 실제 일어나다니…. 수천마리는 족히 될 갈매기들이 소낙비처럼 몰려와 나의 몸과 어깨를 터치하곤 머리위로 지나간다. 돌아보니, 바로 등 뒤 축대위에서 겨울바다를 구경나온 젊은 아빠와 딸이 새우깡을 던진 것이었다. 수천의 경쟁률을 뚫고 어느 놈은 새우깡을 입에 물었는데, 허탕 친 나머지 무수한 갈매기들이 아쉬움의 날갯짓을 하며 나의 주변을 맴돈다. 발밑으로 심지어 다리사이까지 온통 갈매기천지다. 내 몸이 새우깡이라도 되는 줄 아는지 온 몸을 툭툭 건드린다.

바다와 갈매기가 선사하는 이 황홀한 순간을 어떻게 즐길까. 어떤 상황이든 즐김에 이르는 단계가 최고의 경지라고 하지 않았던가. 내안에 즐거움이 넘치면 이는 또 다른 즐거움을 낳는 일이고, 살면서 즐거움에 이르는 일이 그리 흔치 않으니, 그러므로 난 지금 그 즐거움을 캐내야한다. 갈매기들에 휩싸여 지그시 눈을 감았다.

갈매기야, 새우깡 한 조각에 꿈을 얹는 갈매기야, 너희들이 꿈을 아니· 너희들이 진정한 쟁취나 사랑을 아니· 먹잇감을 찾아 바다 깊숙이 직선으로 내리꽂던 그 용맹을 정녕 잊었더란 말이냐· 사람이여, 우리의 몸짓들로 추억이나 한편 만드시오. 내가 묻겠소. 따사로운 햇살이 날개에 닿는 느낌을 아느뇨· 모래가 발가락사이를 적시는 촉감을 아느뇨· 우린 리더에게 순복하는 질서를 알고, 먹잇감을 노리며 비행하다 해수면을 치는 그 짜릿함을 안다오, 꿈을 물었느뇨· 우리의 용기를 우리의 자유를 부러워하는 그대들 기대가 있는 한, 때가 되면 꿈을 찾아 떠날 것이라오.

보인다. 별빛처럼 청아하고 불타는 정열과 은빛날개를 가진 '리처드바크'의 조나단이 보인다. 평범한 갈매기의 삶을 거부하고 꿈을 찾아 떠나 비행술을 연마하는 그가 슬퍼했던 건, 험난한 여정 때문도, 무모한 도전이라며 손가락질하는 비난 때문도 아니었다. 너무도 확연히 존재하는 세상을 알지 못하는 동료들로 인함이었다.

들린다. 사토에 살결이 쓸려가는 듯, 내안의 허물을 벗어내는 소리가 들린다. 그렇구나. 작은 비난에도 움츠러들어 스스로를 한정시키고 웅크리고 있던 동굴 문을 부수는 거다. 느낀다. 마음을 어루만지는 부드러운 손길을 느낀다. 사람에게서 위로를 찾으려 했던 나를 반성한다. 그날, 파랑과 하양의 나라 신화 같은 공간에서 수없는 문답을 하면서 그렇게 갈매기들과 물아일체(物我一體)가 되어 빙빙 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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