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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미옥

아득한 어린 시절 교회당에서 들려오던 종소리가 생각난다. 날이 밝기 전, 뎅그렁 뎅그렁 울리는 종소리는 소변을 참고 뒤척이는 나를 일으켰다. 눈을 비비며 마루로 나가면 철길 너머로 친구 아버지가 목사님이신 교회의 높은 십자가 탑이 보였다. 아침에 나가는 저 소리는 어디까지 갈까. 산 넘어 외딴 집에 사는, 늘 학교에 지각하는 현숙이도 저 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 생각하다 새벽잠에 빠져들곤 했다.

이른 아침에 교회를 떠나 퍼져 나온 종소리는 내 속으로 파고들었다. 해가 중천에 오르자 아침종소리를 까마득히 잊고 종일 강변을 뛰어다니며 놀다 석양녘이면 종탑을 찾았다. 다슬기 한 움큼이 들어 있는, 강물이 담긴 양은주전자를 종루 아래 에 두고, 젖은 치마를 돌돌 말아 배에 뭉쳐 안고 친구와 공기놀이를 했다. 손바닥을 떠나 공중에 나는 공깃돌들을 받으려 고개를 들 때마다 녹슨 종이 보이곤 했다.

공기놀이가 시시해지자 치마를 털고 일어나 다시 종탑을 올려다보았다. 종은 알 수 없는 힘을 발하며 내려다보고 있었다. 종루 안으로 흐르는 위엄에 매료되어 왠지 숙연한 마음이 됐었다. 우리는 기도놀이를 했다. 친구아버지가 부러웠던 나는 우리 부모님도 교회 다니게 해달라고 빌었다. 진지하게 시작했는데, 도중에 친구가 주일학교반사 목소리를 흉내 내는 바람에 망초 꽃들처럼 하얗게 웃음이 터졌었다.

뎅그렁뎅그렁 울리며 나오는 아침종소리는 우리 집의 하루를 열었다. 아침종소리가 서너 번 산허리를 휘돌아 오면 아버지는 일어나 여물을 쑤려고 장작을 안아다 아궁이 앞에 와그르르∼쏟아 놓으셨다. 어머닌 성근 무릎에 가만히 스며든 통증을 꼭꼭 주무르다 이웃집의 구정물을 걷으러 나가셨다. 잘바~닥 잘바~닥 엇박자로 걷는 어머니 발자국 소리가 들리면 돼지우리에선 꿀꿀이들의 합창이 터지곤 했다.

저녁에 울려 퍼지는 종소리 여운은 아침보다 길었다. 전근가시는 목사님 따라 친구가 홀연히 떠났던 그날 밤, 쉬 잠들지 못하고 뒤척이는 이불속으로 파고들었다. 종소리는 늘 나를 비켜가지 않았다. 부모님께 야단맞아 속이 상할 때엔 마음을 쓰다듬어 주었다. 광야에 혼자 있는 듯 허허롭던 사춘기를 지날 때엔 어스름한 동굴 안에 웅크리고 있던, 내 안 어딘가의 컴컴하고 그늘진 곳으로 물처럼 스며들었다.

종소리는 마을사람들의 속으로 파고들어 강고함을 눅지게 하고, 돌 같이 엉겨 붙은 마음들을 잘게 바쉈다. 열병으로 금쪽같은 첫아기를 보내자 헛소리를 하면서 기찻길로 뛰어드는 고 서방 아내의 마음을 두드리고 두드려 예배당으로 인도했다. 달덩이 같은 아기를 다시 얻어 아픔이 치료되어 갈 무렵, 닫혔던 고서방 마음도 열렸다. 그 뒤 저녁종소리가 울리면 부부는 예배당에 가려고 일손을 멈추고 들어왔다.

종소리가 그립다. 소음이라는 야박한 세월의 항의에 쓸려 위엄이 흐르던 종소리는 가버렸다. 왁자한 저잣거리 선술집에서 거나해진 남정네들을, 자리 털고 하나 둘 일으키던 저녁종소리는 멀리 가버렸다. 홀연히 떠나버린 친구의 기도소리처럼, 내 맘을 흠씬 빼앗아 놓고 경부선 철길 따라 가버린 백구처럼 돌아오지 않는다. 아련한 여운을 담고 어느 쓸쓸한 사람의 마음을 데우고 녹아들던 종소리, 꽃가루처럼 날리며 고독한 영혼들을 어루만져 그들 속으로 점점이 스며들던 종소리가 그립다.

아직도 꿈길에 서면 종소리가 들린다. 금물결 타고 앉아 다슬기 잡던 가버린 시간들처럼, 얼굴도 안보고 떠나보내곤 암염으로 몸살을 앓았던 아련한 첫사랑처럼, 내안에 추억으로 있다. 풍금 치며 예배당에서 놀던 어린 시절은 다시 오지 않지만 눈을 감으면…. 종루아래서 자분자분 소원을 빌던 친구의 기도소리가 들린다. 결혼도 하지 않고 독일에서 목회의 길을 가고 있는 옛 친구의 노랫소리가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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