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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미옥

청주시 1인1책 프로그램 강사

시댁 동네는 사방으로 각종 나무들이 빽빽하게 채워진 구곡산천(九穀山川)이다. 오른쪽 산을 몇 개 넘으면 원주로 이어지고 왼쪽으로 산을 몇 개 넘으면 제천으로 연결된다. 하늘과 닿은 능선에 구름이 쉬어 가는 곳, 바람소리, 새소리가 도시에서 찌들고 지쳐 찾아오는 사람들의 마음을 도닥여 주는 곳이다. 동네 입구에 저수지가 있는데, 호수를 병풍처럼 둘러싼 능선들이 철따라 옷을 갈아입는 풍광은 한 폭의 수채화이다. 호숫가엔, 한가로이 앉아 부스러기 상념들과 절제되지 않는 열정들을 다스리며 세월을 던져 놓고 얼마쯤은 자유를 누리고 있는 낚시꾼들이 늘 있다.

이십여 년 전, 낯선 사람들이 내가 사는 청주까지 찾아왔다. 남편의 고향 산에 채석장이 들어온단다. 그들은 획기적인 거금을 제시하며 우리 산을 팔라고 했다. 당시 우린 알뜰하게 주택부금을 부어 내 집을 장만하는 과정이었는데 잔금이 턱없이 부족해 대출을 받아야할 형편이었다. 나는 빠르게 계산이 앞서면서 설레었다. 갑작스런 횡재에, 남편이 어릴 적에 돌아가셔서 얼굴은 뵌 적 없지만, 산을 유산으로 주신 할아버지께 감사했다. 차를 준비하면서 이미 분홍색 꿈을 그려갔다. '그 정도 거금이면 대출받지 않고도 아파트를 구입해도 되잖아. 그러고도 아파트 한 채 값이 남을 액수이니 아이들 장래를 위하여 땅이라도 사놓으면 정말 좋을 거야….' 젊은 나이였던 나는 잠시지만 미래를 내다보지 못하고 단순히 눈앞의 목돈만 생각했었다.

그러나 남편은 고민도 해보지 않고 단번에 거절했다. 젊은 양반이 공무원 봉급으로 언제 큰돈을 만져보겠느냐, 절호의 기회다, 라고 하는 그들에게 두 번 다시 찾아오지 말라는 말까지 덧붙여 보냈다. 채석장이 들어오면 천혜의 고향산천이 황폐해 질 것은 불 보듯 뻔한데, 당장 밥을 굶는 것도 아니면서 할아버지 유산을 팔지 않겠다는 것이 남편의 생각이었다. 우리 산만 돌려놓고 다른 사람들은 산들을 팔았다. 우리 산을 돌아서 길을 내려니 어려움이 많다며 팔라고 몇 번 더 권유받았지만 남편은 요지부동했다. 급기야 새소리 물소리만 들리던 조용한 마을에 폭발음이 온 산을 흔들고 대형트럭이 뽀얀 먼지를 일으키며 다니기 시작했다. 고단하게 일해도 농사만으론 궁색했던 사람들은 채석장에 취직하여 돈을 벌어 아이들 교육을 시켰다.

문명이 인간들의 영역이라면 자연은 신의 영역인 것을, 다양한 아름다움과 무한한 교훈을 품고 있는 산을 마구 파헤치고 상채기를 냈다. 말없이 제 몸을 깎인 이산 저산 봉우리들이 허옇게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머지않아 불행은 인간들에게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동네 위쪽에 있는 채석장에서 돌 깎는 작업을 하느라 수맥을 찾아 땅 속 깊이 관을 박고 물을 끌어 올려 쓰다 보니 식수에 악영향을 준 것이다.

기계를 작동하다 어머니의 유선 같은 물줄기를 건드리어 오염이 되어버린 것이다. 물탱크에 건수가 들어가 기름이 뜨고 악취로 인해 생활용수로 불가능하게 됐다. 채석장에서 상수도공사를 해주기로 했다는데, 공사하는 동안 그들이 물을 사서 보내주고 있었다. 남편은 용천수 물줄기들을 잃고 말았다고 안타까워했다. 하늘이 내려준 자연생수 줄기가 산을 파헤치는 바람에 잃었으니 이 일을 어이 하냐고 아까워했다. 돌 채취를 마치면 복구해 주겠다 말을 한다지만 복구되려면 세월이 얼마나 걸릴지 모른다. 산이 얼마나 소중한 자산인지는 관심 없는 사람들이 참 야속했다.

예전에는 동네개울가로 나가서 머리를 감았었다. 샴푸를 사용하지 않아도 머릿결이 손끝에서 미끄러지고 빨랫비누 한 장이면 각종 옷들의 염색 효과를 선명하게 드러냈었다. 물이란 본디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지라 높은 산을 내려오면서 걸러지고 정화된 용천수가 온 동네 사람들의 생활용수와 농업용수로 모자란 적이 없었다.

사람들은 태고부터 흐르던 생명의 근원을 버렸다. 산의 거대한 보물창고에 숨겨진 가치를 계산할 수 없는 보석은 귀히 여기지 않고 눈에 보이는 돌들만 캐냈다. 달라는 인간들에게 내어주고 상처투성이로 서있는 산의 속내를 생각해본다. 자연의 순리에 순응하지 않고 문명의 이기심에 편승하여 욕망을 채운 끝에서 우리는 무엇을 깨달아야 할까. 천년을 두고 흐르던 물을 끓이지 않고 마시던 시절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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