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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미옥

청주시 1인1책 프로그램 강사

손녀 재잘거림은 멈추지 않는다. 제 할미 대하기를 제 또래 대하듯 하며 게임을 리드해간다. 나도 덩달아 여섯 살이 되어 하늘을 난다. 눈높이를 아이에게 맞추어 놀아주려면 머리를 바쁘게 회전하며 따라 가야한다. 손녀는 자라면서 낯가림이 심했다. 그런데 가끔 만나도 나를 보면 방긋거리며 마음을 전해오곤 했다. 그 마음 내 마음, 우리는 마음이 통하는 사이, 언제부터 통했을까. 임신 중 아기얼굴을 그려보던 때부터일까. 세상에 나온 날 간호사가 안고 산부인과 칸막이 유리너머로 보여주었을 때 찌릿하며 눈시울이 젖었던 때부터일까. 기어 다니면서는 만났다 헤어지는 분위기를 알아차리는 순간부터 울음을 터트려 나도 질금거리며 헤어져야 했다.

"할머니 이번에는 마음놀이 해요." 이건 또 무슨 말인가. 체면상 못한다고 할 수야 없지, 마음놀이란 소리를 내지 않고 대화를 나누는 거라고 설명한다. 우리는 마음놀이를 시작했다. 손녀가 먼저 문제를 내겠다며 나를 잠시 바라보더니 마음으로 한말을 맞추어 보란다. 나 원 도무지 알 수가 없다. 대충 대답했더니 고개를 살래살래 흔든다. 패를 인정했다. 이번엔 날보고 마음으로 말을 해보란다. 이거 장난이 아니구나, 무슨 말을 할까. 마음을 진지하게 모아 말 한번 해봐야겠다. '넌 어쩌면 그렇게 사랑스럽니·' 나는 이렇게 말하며 빤히 바라보았다. 그랬더니 손가락으로 내 가슴과 제 가슴을 찌른 뒤, 두 손을 합장하며 저도 그렇다고 끄덕이는 게 아닌가.

영화 '반지의 제왕'에는 독특한 악센트와 억양의 요정어들이 나온다. 이 영화는 북유럽 정통언어학자인 '톨킨'의 소설을 영화화한 것이다. 그가 언어학자여서인지 소설에 나오는 풍부한 어휘들은 언어의 특성을 조합하여 창조되었다고 한다. 그가 만들어낸 인공언어들이 일상 언어로 발전하지는 못했다. 그렇다보니 배우들이 연기할 때 뜻을 몰라서 문제가 되더란다. 뜻도 모른 채 이상한 표정과 소리를 구사하려니 얼굴근육을 다르게 만들어야 해서 어려움이 많았단다. 제작진들은 세세하게 뜻을 알려하지 말고 혀를 굴릴 때마다 상대마음에 주목하라고 조언을 했다고 한다.

누군가의 마음에 주목해 본적이 언제였던가. 서로를 탐색하며 마음놀이 하는 그 짜릿함이라니…. 마음에 흐르는 이 감정이란 것이 얼마나 사람을 사람답게 하는지 모른다. 좋은 감정이 사람사이에 흐르면 그 파급이 치달아 행복이라는 황홀을 창출하며 삶은 풍요로워진다. 우리 모두는 한 이성과 마음놀이를 하다 사랑의 못으로 뛰어들었고, 나오지 못하여 결혼하지 않았던가. 나 역시 그의 표정과 손짓하나에 마음의 채널이 고정되어 말하지 않아도 그의 말을 들을 수 있던 시절이 있었다.

당시 내 마음은 봄 천지였다. 감정의 강에는 온종일 분홍물고기가 뛰놀았다. 궂은 밤에도 마음 하늘가엔 분홍별이 피어나고, 리본하나를 골라도 엷은 분홍색을 집어 들곤 했다. 냉수를 마셔도 핑크 향이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며 찻잔주변으로 여울졌다. 하얀 블라우스에 묻은 분홍연지 같은 색상에 내 영혼은 무시로 잠식당했었다. 해가 뜨고 질 때까지 모든 걸 그와 함께하고 싶었다. 나무들에 꽃이 피고 열매 맺는 걸 함께 보고 싶었다. 별이 쏟아지는 사막을 그와 걸으면서 해와 노을과 달무리를 보고 싶었고, 바닷물의 움직임을 보고 싶었다. 눈을 뜨면 행여 그런 감정이 사라질까 하여 어떤 날은 눈을 감은 채로 바람이 지나다니는 소리를 듣기도 했다.

몸으로 놀이를 한다지만, 마음놀이에 비하면 극히 일부이다. 우리가 말을 하며 살지만 마음으로 하는 것에 비하면 발화하여 나가는 말은 아주 약간정도이다. 그런데 살다보면 상대의 내면에 있는 수많은 말들보다는 발화되어 들리는 말에 집중하여 일희일비할 때가 많다. 들리는 말은 화자의 표현이나 청자의 기분에 따라 다르게 들릴 수 있고, 전하는 말은 전달자의 생각을 가감하게 되므로 왜곡될 수도 있는데 말이다. 마음처럼 숨기기 힘든 것도 없고 마음처럼 진실한 표현도 없는 것을, 산다는 건 온통 마음놀이인 것을. 마음놀이에 빠져 살았던 나의 봄날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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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일보] 정효진 충북도체육회 사무처장은 "충북체육회는 더 멀리보고 높게 생각해야한다"고 조언했다. 다음달 퇴임을 앞둔 정 사무처장은 26일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지방체육회의 현실을 직시해보면 자율성을 바탕으로 민선체제가 출범했지만 인적자원도 부족하고 재정·재산 등 물적자원은 더욱 빈약하다"며 이같이 말했다. 완전한 체육자치 구현을 통해 재정자립기반을 확충하고 공공체육시설의 운영권을 확보하는 등의 노력이 수반되어야한다는 것이 정 사무처장의 복안이다. 학령인구 감소에 따른 학교운동부의 위기에 대한 대비도 강조했다. 정 사무처장은 "학교운동부의 감소는 선수양성의 문제만 아니라 은퇴선수의 취업문제와도 관련되어 스포츠 생태계가 흔들릴 수 있음으로 대학운동부, 일반 실업팀도 확대 방안을 찾아 스포츠생태계 선순환 구조를 정착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선 행사성 등 현장업무는 회원종목단체에서 치르고 체육회는 도민들을 위해 필요한 시책이나 건강프로그램을 개발하는 등의 정책 지향적인 조직이 되어야한다는 것이다. 임기 동안의 성과로는 △조직정비 △재정자립 기반 마련 △전국체전 성적 향상 등을 꼽았다. 홍보팀을 새로 설치해 홍보부문을 강화했고 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