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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미옥

작가

봄이 물감처럼 번지던 날, 강진 만덕산 산행에 나섰다. 움츠렸던 마음을 풀고 몸을 마구 혹사시켜 상쾌한 느낌을 경험해보고 싶기도 했지만, 하산하는 길에 다산초당에 들르는 코스가 선뜻 나를 일으켰다. 만덕산기슭에서 다산과의 만남에 대한 기대로 전날부터 달떴다. 오래 그린임을 만나러 가듯 설렘 한자락 배낭에 넣고 관광버스에 올랐다. 좋은사람들과 함께하는 강렬한 이 느낌, 여행의 진미중 하나이다. 차창 밖의 봄을 구경한다. 봄의 전령사 산수유만 보일 뿐 다른 꽃들은 아직 이다.

용문사에 도착했다. 앞마당에 잘생긴 동백 한그루가 있다. 파란이파리 사이사이로 붉은 꽃들이 봉긋봉긋하다. 두 기의 토불 불상이 있다하여 본전을 들여다보니 금분으로 개금(改金)하여 치장돼 있다. 만덕산 정상 깃대봉에서 백련사를 보고 다산초당으로 내려오는 412m코스, 그리 길지 않으니 완만하리라 여기며 오르기 시작했다. 그러나 결코 만만히 볼 수 없는 것이 산이다. 평탄한 길도 있지만 인생사처럼 거친 바위를 넘나들어야 하는 곳이 많다. 숨소리가 거칠어질 때마다 노랗게 분칠한 산수유가 배시시 웃고, 진달래가 진홍손수건을 나폴나폴 흔들어대며 정신을 빼앗는다.

뒤를 돌아보니 날카로운 용의 등날 같은 덕룡산이 보인다. 저만치 마음을 가만히 담그고 싶을 만큼 단아하고 청초한 비취색 호수가 내려다보인다. 일행 중 한 사람이 뾰족한 입술 같은 생강나무 가지를 꺾어 코에 대준다. 강한 향이 자극하며 작은 행복에 젖는가 싶었는데, 이 무슨 시샘인가 다른 일행이 그만 넘어지고 말았다.

정상은 쉽게 내주지 않는 법, 때론 포기할 줄도 알아야 한다. 아쉬움은 또 다른 약속이려니, 정상은 그리움으로 남겨 두자. 괜찮다 했지만 부상 입은 일행이 염려 되어 하산하기로 했다. 지름길을 찾아 계곡을 따라 내려가다 풀 섶에서 수줍음을 떨고 핀 산자고를 만났다. 깊은 산중에서 도중하차하는 우리에게 꽃 잔치를 벌여준다. 눈물이 난다. 동토를 녹이고 두꺼운 지표를 뚫고 올라오느라 얼마나 애썼을꼬.

다산초당으로 걸음을 옮기며 그 옛날사람들을 그려본다. 포졸들에게 에워싸여 남루한 차림으로 쓸쓸히 유배 길에 나선 지식인 두 형제가 어른거린다. 신유사화에 연루돼 끌려오지만 형제가 함께여서 그나마 의지가 됐을 터인데, 나주에서 동생 약전은 흑산도로 약용은 강진으로 나뉜 것이 영원한 이별이 됐으니 통탄할 일이다.

빽빽한 대숲을 지나 초당으로 가는 초입에 흙이 떨어질까 조심하라 매단 글씨들이 보인다. 떨어지면 떨어지는 대로 흙길 그대로 둘 수는 없는 것이 세월이다. 선생이 은거하던 초막은 말끔히 복원돼 청빈을 덕목으로 삼았던 그분을 느낄 수 없는, 아쉬움으로 뒤로 돌아갔다. 아, 작은 샘 약천(藥泉)이다. 가뭄에도 마르지 않아 마시면 담을 삭이고 병에 효험이 있다 기록된 메마른 샘가로 그리움의 물기가 흐른다.

선생은 이 물로 차를 끓였었다. 백련사를 오르내리며 혜장스님과 선문답을 나누고 초의선사와 다도를 즐기며 방대한 집필을 하면서 고독을 달랬을 선생, 삶의 끝자락인 악조건 속에서 큰 업적들을 냈으니 가히 선생이다. 초당에서 상록수 우거진 가파른 계단을 내려오자니 새들이 낭자하니 운다. 새들의 울음은 이 봄을 찬양함인가. 선생의 고독을 일깨움인가. 선생은 자녀들에게 수시로 편지를 보내 겸손하고 검소하며 베푸는 삶을 살라 역설했다. '가난한 이들에게 곡식을 나누어 준적 있느냐? 추위에 떠는 이에게 땔나무 한 묶음이라도 나눠준 적 있느냐? 병든 자에게 약간의 돈이라도 주어 약을 처방하게 하였느냐? 근심이 있는 사람과 고통을 나누어 대처할 방도를 의논해 보았느냐?' 이런 내용으로 자녀들을 각성시키곤 했다.

사람들이 봄을 담는다. 누구는 쑥을 캐고 누구는 춘란의 향을 맡는다. 나는 무엇을 담나. 울림으로 오는 선생음성을 들으며 그리움으로 남겨둔 깃대봉과 인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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