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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미옥

성탄전야에 눈이 내리게 해달다고, 솜사탕 같은 소망들을 하늘로 올려 보내던 그 시절이 그립다. 크리스마스이브엔 기도응답이라도 된 것처럼 동전만한 눈이 펑펑 쏟아지며 온 세상을 하얗게 덮곤 했다. 교회에서 연극 등 어설픈 축하발표회를 마치면 학생부 청년부 각 부서별로 반드시 선물교환을 하며 이브축제로 이어진다.

선물교환을 하는 방법에는 흥미로운 규칙이 있다. 본인이 준비한 선물이 누구에게 가는지는 알지만 받은 선물이 누구로부터 왔는지는 모르게 진행한다. 당시엔 좋아하는 사람에게 손뜨개질한 벙어리장갑이나 목도리를 선물하는 것이 유행이었다. 어느 해인가. 나는 정성들여 뜨개질한 목도리를 선물교환 하는 날 가지고 갔었다.

어떤 선물을 받을까 설레기도 했지만 내가 준비한 선물이 누구에게로 갈까 하는 관심도 컸다. 내가 짠 목도리를 누군가가 두르고 다니는 것을 바라보는 일은 남의 행복을 몰래 훔쳐보는 기쁨이다. 그날 내가 짠 목도리는 남자후배에게 갔다. 그런데 그가 목도리를 선물한 사람이 누군지 누나가 알아봐달다고 부탁하는 게 아닌가·

혹시 좋아하는 여학생이 준 선물이길 바라고 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하얀 거짓말을 했다. 후배 여학생 이름을 몇 명 거론하면서 "글쎄· 요즘 그 애들이 뜨개질 배운다고 털실 사러 몰려다니긴 했지만 목도리를 짠 사람이 누구인지는 모르겠는데·" 하고 말했다. 베이지색 목도리를 두르고 눈을 털며 예배당 문을 환히 웃으며 들어서던 그는, 입대할 때 까지 그 목도리를 열심히 두르고 다녔다.

남편에겐 나를 알기 전에 교제하던 여성이 있었다. 그들은 사정이 있어서 헤어지게 되었는데 어찌하다 그 내막을 내가 알게 되었다. 가슴이 허허로운 그를 위로해주다 운명처럼 나의 마음이 열리게 되면서 사랑에 빠졌다. 열애를 시작하고 처음 맞는 크리스마스이브에 그에게 선물하려고 앙고라 털실로 조끼를 짜기 시작했다.

그를 생각하며 한 올 한 올 뜨개질을 하는 기쁨은 무엇과도 비길 수 없는 행복이었다. 드디어 크리스마스이브, 완성된 검정색 조끼를 가지고 나갔다. 그런데 그가 회색털실로 짠 조끼를 입고 나온 거다. 전에 교제하던 여성이 짜준 선물이라는 걸 직감으로 알 수 있었다. 내가 준비한 조끼는 보여주지도 않고 말문을 닫아버렸다.

시린 가슴으로 돌아오는 길에 눈이 비처럼 쏟아졌다. 여러 날 동안 그를 만나지 않았다. 영문도 모른 채 그가 애를 태웠지만 이유를 말하기엔 자존심이 상했다. 잠을 설치며 헤어질 생각까지 하면서 고민을 해도 그를 놓칠 수는 없다는 결론에 이르자 다시 만났다. 그런데 그날 눈치 없이 그 조끼를 또 입고 나온 것이 아닌가.

다시 입을 닫을까 하다 말을 했다. 깜짝 놀라며 말하길 편지들은 모두 태웠지만, 옷은 날씨가 추워 입은 것일 뿐이라면서 조끼를 훌떡 벗더니 쓰레기통을 찾는 거다. 아까운 옷을 왜 버리느냐고 나는 화를 냈고, 그는 어쩌란 말이냐고 당황해 했다. 조끼를 간직하려 했던 마음이 문제지 옷이 무슨 죄냐면서 싸운 기억이 있다.

다시 성탄의 계절이 왔다. 우리 젊은 날들처럼 세상을 고요로 채우며 눈이 내린다. 눈은 어디로부터 오는 걸까. 먼 별 끝에서부터 세상에 불려나온 선물처럼 오는 눈은 해마다 내린다. 그런데 지금은 선물 준비하느라 설레지도 연극연습을 하느라 부산하지도 않다. 아름다웠던 우리몸짓들만이 나폴 나폴 추억이 되어 날릴 뿐이다.

눈부셨던 우리의 젊은 날도 눈처럼 다시 올 수 있다면 좋겠다. 해마다 이때쯤이면 우린 그때 이야기를 아무렇지 않게 꺼내며 웃는다. 그는 단번에 조끼를 알아본 나의 직감에 깜짝 놀랐다면서 웃는다. 눈이 내린다. 건네다 보이는 우리 모습은 변해 가는데 하얀 눈은 청청한 진심처럼 간절함을 담고 여전히 아름다운 육각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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