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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미옥

청주시1인1책 프로그램 강사

좀체 맑은 날 보기 힘들다는 유럽 날씨가 그날 아침엔 화창도 했다. 비엔나거리를 걷다 한 카페에서 비엔나커피를 마시는 어제의 그 낭만이라니…. 그 여운을 다시 불러 모닝커피 마시듯 한 모금씩 음미하며 슬로베니아로 가는 차에 올랐다. 그리고 호주머니 속에서 미끄러지는 익숙한 감촉을 손끝으로 느끼면서 만지작거렸다. 차창밖엔 오색 애드벌룬이 난다. 우리도 저처럼 어디론가 흘러가지…. 드넓은 녹색초장들과 목가적인 갈색 집들, 초록과 갈색, 황금 비율 색상에 취하여 내 마음도 동동 날았다. 멀리 만년설을 덮은 알프스 한 자락이 그림인 듯 왔다 멀어지곤 했다.

어느 별나라인가. 신이 숨긴 파라다이스인가. 알프스의 눈동자 슬로베니아 '블레드 호수'에서 뱉은 말이다. 깎아지른 수변 절벽위에 세워진 성벽에서 내려다보니 호수 한가운데 작은 섬이 새처럼 앉아있다. 앙증맞은 초록섬 안에 빨간 뾰족지붕 예배당이 있다. 저 섬을 어찌할꼬! 하늘은 호수를 품고 호수는 섬을 품고, 섬은 예배당을 품고 있는 것이, 포개짐의 미학을 표현하고 있다고나 할까. 하지만 세상에 다시없을 것 같은 극한 몽환적 풍경도 호주머니 속에 있는 네가 없으면 무슨 의미겠니. 네가 있어서 순간의 추억으로 남겨 두고두고 무시로 꺼내볼 수 있는 것을….

우린 맘껏 즐겼다. 그런데 어쩜 좋단 말이냐. 풍경을 가득 담고 돌아서는 찰나, 호수로 퐁당 가버린 너를 어쩜 좋단 말이냐! 무엇에 홀린 듯 내 손에서 미끄러져 영영 떠났구나. 그 허탈감이라니…. 이역만리 호수에 너를 수장水葬하고 돌아서는 마음을 네가 알까. 살면서 아까운 일이 금전손해를 보는 일이지. 나라고 남에게 돈을 주고, 받지 못한 적이 왜 없었을까마는 이처럼 눈물 나진 않았다. 세상에 큰 상실감은 사랑을 잃는 거라고들 하지. 나 역시 사랑을 하고 잃어본 적도 있었다만, 한갓 무생물인 핸드폰을 잃은 상실감이 이리 클 줄 미처 몰랐다. "또 사면되지요, 그만 가요." 옆에 있는 이가 하는 말로 위로받기엔 핸드폰을 잃은 허탈감이 너무 컸다.

얻은 밥이 더 많다더니, 동행한 이들이 너도나도 인증사진을 찍어 주었고, 입국한 뒤에 풍경사진들도 보내주어 사진이야 넘친다. 하지만 당시 그 허전함은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었다. 바보가 된 기분이었다. 지구 반대편인지라 다시 오지 못할 수도 있건만 여행을 즐기기는커녕 아무 할일이 없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숙소에 들어와 낮에 찍은 사진을 정리할 일도 없고, 인터넷이 터지기를 기다렸다 도착해 있는 문자들을 확인할 일도 없고, 두고 온 복잡한 나랏일이 궁금해도 참을 수밖에 없었다. 입국은 했지만 누구에게도 전화한통 할 수 없었다. 심지어 아이들 전화번호도 생각나지 않았다. 여행 갔나 생각은 했지만 하루 이틀도 아니고 열흘이 넘도록 연락할 수 없다는 멘트가 떠서 사고라도 났나 하고 TV를 켜며 걱정했다는 이들도 있다.

가장 불쌍한 사람은 잊혀 진 사람이라던가. 이대로 시간이 가면 나야말로 유럽 어느 알프스자락 속으로 숨어들어 세상과 단절한 가장 불쌍한 사람이 되어 잊혀 질 수도 있겠구나. 너는 누구냐. 과거의 내 시간과, 추억들과, 인간관계까지 모두 가져가 버린 너는 도대체 누구냐. 너에게 혼魂이라도 있더란 말이냐· 어떻게 이럴 수 있니. 얄팍하고 손바닥만 한, 한갓 물체가 사라졌기로 내 삶이 이리 흔들리다니 이게 말이 되느냐 말이다. 인간인 내가 모든 삶을 작은 무생물 안에 담고 의지하며 살았구나. 내 모든 생활구조, 생활의식, 행동반경이 그 안에 있었으니 나는 노예였구나. 슬로베니아 호수에 폰을 수장水葬하고 이참에 독립할까 잠시 생각도 했었다. 하지만, 여행 가방을 풀기도 전에 핸드폰 가게로 달려가는 충실한 노예의 꼴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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