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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미옥

"파도의 높이가 거칠며 많은 비를 동반한 광풍이 몰아치겠습니다." TV에서 연신 남쪽 지방소식을 전한다. 바닷물에서 오염된 콜레라 발생 소식까지 연이어진다. 그때, "계획대로 출발해요." 문자가 도착했다. 떠나는 거다. 그리운 청마가 있고, 확실한 핑계로 고립되어 하루나 이틀쯤 묶여도 좋을 거라 노래한 시인도 있잖은가. 그날 오후 우린 동양의 나폴리라 불리는 통영으로 향했다. 우리를 태운 봉고차는 궁창이 뚫린 듯 퍼붓는 폭우 속으로 들어갔다. 그럼에 불구하고 차창을 때리는 빗줄기를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 이백프로 충전이다. 연인의 감정이 아니어도, 나이를 초월하여 마음이 통하는 사람들과 바다를 안고 일박한다는 자체만으로도 설레었다.

펜션에 도착하니 초저녁이건만 폭우로 인해 바다는 암흑이다. 수직으로 내리 쏟는 빗소리에 마음이 요동한다. 바다야, 날더러 어쩌란 말이냐. 팔만 내밀면 닿을 곳에 있는 바다로 인하여 애가 탄다. 바닷가로 나가고 싶은 맘을 누르고 베란다로 나갔다. 비가 들이쳐 금시 옷이 젖는다. 밤바다, 거대한 흑백수묵화다. 아! 몽환적이다. 검은 바다를 보며 듣는 빗소리…. 바다가 비가 도대체 나를 어떻게 한건가….

'얼마나 달콤하랴. 눈을 반쯤 감고 떨어지는 물소리, 살포시 찾아드는 비몽사몽! 산상의 몰약수 덤불에 비치는 석양의 호박 빛 같은 꿈… 또 꿈…. 날마다 연실(蓮實)을 먹으며 바라보는, 모래톱을 넘는 물결….' 오디세우스 이야기를 배경으로 쓴 테니슨의 '연(蓮)을 먹는 사람들'의 시 구절이다. 비에 잠긴 밤바다, 강한 우수를 발산하는 검은 바다에 마음과 영혼을 오롯이 얹으니 그리스신화 한 토막도 생각났다.

오디세우스 일행은 미지의 땅을 찾아 트로이아를 출범했는데…. 해상에서 폭풍을 만나 여러 날 표류하다 '연(蓮)을 먹는 사람들' 이란 나라에 도착한다. 그 섬 주민들은 오디세우스 일행을 따뜻하게 영접하고는, 자신들이 먹고 있던 연실(蓮實)을 먹어 보라 권했다. 이 연실은, 먹는 순간부터 고향을 깡그리 잊고 언제까지 그 나라에 살고 싶게 만드는 힘을 지닌 불가사의한 약초다. 오디세우스 일행은 그 연실을 먹고, 세상없어도 그 나라에 눌러앉아 살겠다고 고집을 피운다는 동화 같은 이야기이다.

산다는 건 밤바다처럼 어두운 표랑의길, 구름처럼 모습을 바꾸고 바람처럼 회오리치는 것, 연신 밀려오고 나가는 우리 삶을 닮은 검은 파도조차 빗줄기에 압도당한 듯 그날은 잠잠했다. 오늘만큼은 세상의 변화와 속도에 비켜선 채 바다가 주는 연실한번 먹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밤바다풍경에 잠기니 쏟아지는 빗소리는 잔잔한 감미로운 선율의 흑인영가요, 싸늘한 한기마저 서로의 체온을 느끼는 레몬향기처럼 달콤했다. 산에 오르면 바다가 그립고 바다에선 산을 생각하듯, 밤바다를 보며 햇빛에 부서지며 하얀 포말을 올리는 아름다운 해변의 곡선을 상상했었다.

"우리 이대로 며칠 더 있다 갈까?" 누군가가 던진 실행할 수 없는 한마디에 좌중 모두는 약속이라도 한 듯 그러자고 손뼉 치며 와락 웃음을 터뜨렸다. 어제를 잊어버리는 신비의 약초라도 모두 먹었는가보다. 그러지 않고야 어찌 한 목소리로 이곳이 좋사오니 하고 합창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지상 어딘가에서 은밀히 자라는 환상의 연(蓮)식물이 있는 땅이 있다면, 지금 우리가 있는 밤 바닷가가 맞을 것이다. 바다가 주는 연(蓮)은 달콤했고, 가슴을 뛰게 했다. 사진을 찍어 간직하듯 시간을 붙들고 싶었지만 그날따라 시간은 손가락사이로 빠져나가는 물 같았다. 변화무쌍한 것이 사람 마음이라더니, 돌아 갈 곳이 있어 떠남도 행복이다. 달금한 여운을 남기고 우린 다시 현실로 왔다. 우릴 취하게 했던 연은 환상의 세계로 가는 것이 아닌, 더욱 윤기 나는 현실로 가기 위해 먹어주어야 하는, 우리가 선택한 연(蓮)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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