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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미옥

수필가

우수를 하루 앞둔 그날, 하늘이 명랑하고 뭉게구름이 방실방실했다. 어디론가 표연히 떠나지 않곤 견딜 수 없을 것 같은 날이었다. 문학이라는 매개체 안에서 만나 같은 방향을 보며 가는 문우들과 바다를 향해 나섰다. 일상을 벗어난다는 것만으로도 좋으련만 하물며 좋은 사람들과의 일박이라니, 전날부터 설렘 이백프로 충전이다. 다소 어색한 사람들도 일박을 하다보면 세대를 넘고 성별을 넘어 어우러지려니.

살다보면 그런 날이 있다. 무슨 일이든 다 일어날 것 같고 무엇이든 다 용납 될 것처럼 풀어지고 싶은 날이 있다. 오늘야말로 어찌 그런 날이 아니리. 달리는 봉고차가 출렁인다. 나이야 가라, 시간이 정지한 소년소녀들 가슴도 출렁인다. 차체의 움직임 따라 이쪽저쪽으로 쏠릴 때마다 옆 사람 체온을 느끼며 그렇게 설피살피 조금씩 서로에게 다가간다. 가끔 복사꽃이 터지듯 청량한 웃음소리가 차안에 번진다.

여장을 풀고 대천바다의 일몰을 보러 나갔다. 겨울의 끝자락인지라 머리를 흐트러뜨리는 바람이 그리 매섭진 않다. 서리서리 말려오는 하얀 파도에 내 마음도 하얗게 물이 든다. 파도야 날더러 어쩌란 말이냐. 오늘만큼은 일상이라는 평면 안에 시치미 떼고 숨어 사는 무수한 돌기들을 끄집어내어 훌훌 털어 버리자. 꺼질 듯이 깜박이는 어둡고 밋밋한 삶의 화소話素들에 불을 밝히고 두근대며 밤을 지새우자. 그렇게 어우렁더우렁 하나가 되어 일렁이는 파도처럼 맘껏 한번 출렁거려 보자.

잠시 뒤에 시작될 빛 내림을 기다리며 삼삼오오 손잡고 걸었다. 어깨를 나란히 하고 앞서 걷는 이들도, 바다로 더 가까이 나가는 이들도 모두가 시 같은 풍경이다. 저녁 해가 쏟아지는 성긴 갯벌위로 바다 새가 중중거리며 무리지어 걷다 날다 반복한다. 저만치 덴섬덴섬하니 동동 떠있는 섬들이 하늘과 수평선을 가늠하게 한다.

홀로 걷는 사람이 보인다. 마음의 성벽에 조금치의 틈새도 용납하지 못하여 추운 사람은 아닐까· 새로운 세상으로 선뜻 발을 들여 놓지 못하고 쭈뼛거리던 예전의 내가 보인다. 우리는 지금까지의 세상이 오래된 나무 밑동처럼 너무 견고하여 새롭게 다가온 세상을 조리개로 들여다보듯 살피면서 이방인이 되어 주춤거린다. 사람아, 너 사람아, 오늘은 내가 바다하리니 한바다가 되어 함께 출렁거려 보시게나.

드디어 바다와 태양이 펼치는 대자연의 공연이 시작됐다. 온통 하늘을 노란색과 붉은색으로 붓 칠하면서 거대한 무대가 서서히 열린다. 태양에도 이처럼 다양한 색깔이 있다는 것을 새삼 느낀다. 사람들은 작은 탄성을 내며 바다를 주시하고 있다. 여기저기서 카메라셔터를 누르는 어긋난 리듬 소리가 정적을 깨며 들린다. 해는 수면을 늦가을 홍시 같은 다홍빛으로 물들이며 슬그머니 바다에 몸을 내려놓았다. 해를 품은 바다는 길쭉한 별 조각 기둥을 만들며 여울지고…. 나도 마냥 출렁인다.

빛 내림 막이 내렸다. 흑백수묵화로 변한 바다와 섬들이 실루엣을 만들 때쯤, 우린 숙소에서 또 하나의 추억을 쓰면서 출렁거렸다. 요술손가락 사이로 튕겨 나오는 기타소리에 취하고 사람들에 취하여 출렁거렸다. 노래하며 웃다가 엎드려 뒹굴고, 빙고게임에 걸린 작은 상품에 목숨을 건 사람들처럼 웃었다. 불 꺼진 공연장처럼 하나둘 각자의 숙소로 들어가는데, 어쩌자고 출렁임을 멈출 수 없는 겐가. 내 생애 다시 오지 않을 마지막 밤인 양 마지막 사랑인 양 출렁이는 맘을 어쩌란 말이냐.

우리 몇몇은 먹 빛 같은 수평선 너머에서 쉬지 않고 달려오는 바다를 만나러 나갔다. '눈물을 구슬같이 알고 지어라' 더니, 언젠가는 검은 해안을 거닐며 출렁이던 오늘의 몸짓들이 잊혀 질 날이 온다 하여도…. 이 순간만큼은 밤물결처럼 맘껏 출렁이며 태양으로 살고가리. 그날 밤, 출렁출렁 숨을 나누며 걷던 우리의 이야기들이 검은 해안의 모래톱처럼 각자의 가슴속에 추억의 언덕을 이루며 쌓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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