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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미옥

꽃집 앞에서 장미를 한 아름 안고 나가는 남성과 마주쳤다. 서글서글한 인상의 남성이었는데 결혼 상대에게 프러포즈 하나? 하기엔 나이가 좀 있어 보여 아내의 생일을 챙기는 가 보다 하며 꽃집으로 들어섰다. "요즘 아빠들 참 멋지죠? 딸이 초경(初經)을 했다고 파티 한답니다." 하고 말하는 주인 말을 듣자니, 지금은 아기엄마가 된 우리 딸에게 성교육 그림책 이야기를 들려주던 생각이 났다. 우리세대만 해도 이렇게 교육하는 정도였는데 요즘은 아빠들까지 축하하는 것이 좋아 보인다.

우리 어머니세대에는 먹고살기 바쁘다 보니 딸들에게 한가로이 성교육 시키는 집이 드물었다. 우리 어머니 역시 그런 교육을 해주신 적이 없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내가 아직은 어리다고 생각하셨던 것 같기도 하다. 암튼 나는 단 한 번의 초경 체험을 축제는커녕 두려움과 부끄러움으로 치렀다. 초등학교 육학년 때였다. 속옷이 축축하여 보니 봉숭아 꽃 이파리넓이로 붉은 혈흔이 두어군데 묻어 있었다. 놀란 나는 어이없게도 병에 걸린 것은 아닐까? 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픈 곳은 없는지라 내일이면 낫겠지 하고 넘겼다. 그렇게 약간 흔적을 보이곤 초경은 멈추었다.

나는 일상으로 돌아가 그 일을 잊고 지냈다. 그리고 몇 달 뒤, 다시 시작된 출혈이 심각한 수준을 넘어서는 것이 아닌가. 급기야 울면서 엄마를 불렀다. "우리 막내가 여자가 됐네? 빠르구나." 하시는 말씀이 칭찬인지 원망인지 나로선 이해 할 수 없었다. 어머니는 옥양목 수건을 열 댓 개정도 만들어 주시며 당부하셨다. 함께 사는 집안 남자들에겐 부끄러운 일이니 아무에게도 말하면 안 되느니라. 특히 사내 조카들에게 들키지 않도록 해라. 아버지나 큰 오라버니 외에 다른 남자들에게 가까이가면 임신이 될 수 있으니 절대 가까이 가지도 말아야 한다. 하고 말씀하셨다.

쉴 새 없이 재잘거리던 나는 말수가 줄었다. 남자들을 향하여 빗장을 걸고 근처엔 가지 않았다. 나와 또래였던 남자조카의 친구들과 하던 '진돌이' 놀이도, 뒷동산 잔디에서 멍석말이하며 뒹굴던 일도 임신이 두려워 그만두었다. 동네 거북산 동굴에 본부를 만들어 놓고 남자아이들과 낙엽을 깔아 방을 꾸미고 놀던 일도 끊었다.

차츰 월경에 적응하면서 불안정했던 심리도 안정됐지만, 초반엔 한 달에 한번 씩 그때가 되면 불쾌감을 동반한 회색빛 우울세계가 나를 지배했다. 뛰고 달리며 놀던 들판도 햇살도 녹음도, 음산하고 비릿한 냄새를 발하며 찾아온 초경의 불편함에 눌려 흥미를 잃어버렸다. 달마다 어김없이 아랫배에 통증과 함께 찾아오는 월경은 거추장스러워 벗어나고 싶은 올무처럼 여겨졌었다. 몸 안에서 피어오르는 숨 막힐 것 같은 성장은 더 이상 감출 수 없는 젖가슴처럼 동심바깥으로 나를 밀어냈다. 티 없이 뛰놀던 아이들 세상으로 돌아가고 싶었지만, 포기 할 수밖에 없도록 명백한 증거가 매달 뚜렷하게 나타났다. 그때마다 상황에 굴복하여 망연자실한 적이 많았다.

초경을 하고 나면 여자아이들은 용모와 육체적 균형이 어른스럽게 변하고 심리적으로도 급격히 변한다. 화장을 하고 거울 보는 시간이 늘면서 자신을 가꾸며 꿈을 꾼다. 생산 능력을 갖게 되면서 자애로운 성품이 자연스럽게 생기기도 한다. 이해할 수 없는 여성들의 이중성에 남성들은 마법에 걸리듯 도취된다. 어두우면서도 밝은 전류의 흐름처럼 부드러우면서 역동적인, 아름다움과 가시를 동시에 갖춘 여성이란 존재는 신비하고 아름다운 존재인 것을…. 따뜻한 마음과 지성과 미를 겸비한 숙녀로 자라가는 여성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가슴 뛰는 일인 것을…. 단 한번 경험하는 초경의 신비를 사전지식이 없던 나는 두려움과 수치심으로 맞이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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