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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미옥

수필가

인근 지역민 식수원 배수지에 조성된 산책길을 자주 이용하고 있다. 그날도, 한쪽부터 파고들어 가는 달을 보면서 저녁 산책길에 나섰다. 바람이 선선한 것이 완연한 가을이다. 약간 정도 숨을 몰아쉬며 배수지에 오르니, 인적이 드물다. 그런데, 저기 벤치에 한 여자 아이가 훌쩍거리고 있는 게 아닌가· 묵직한 책들이 들어 있는 것으로 보이는 가방이 옆에 있고, 입고 있는 교복으로 보아 고등학생으로 보인다.

농구대에서 편 갈라 골 넣기 하는 학생 서너 명, 팔을 휘두르며 산책로를 돌고 도는 주부 두 명, 둥근 운동기구를 훠이훠이 돌리는 연세 지긋한 남성 한 분, 모두 익숙한 풍경이다. 그런데 저녁 산책길에 생경하게 끼어든 벤치의 아이가 가슴을 찌른다. 란까. 부모나 선생님께 꾸지람 들었나· 그렇기로 예까지 올라와 울기씩이나· 그건 아닌 것 같다. 그럼 남자친구와 헤어지기라도 했나· 아니면 시험을 망쳐서·

섣부르게 다가가는 것조차 조심스러워 지나쳐 걷자니 갖가지 상상으로 신경 쓰인다. '아무 것도 묻지 말고 아무 말도 하지 말고 그저 가만히 어깨를 안아 주기만 하세요.' 젊은 날 근처 중학교에 상담하러 다니기 위해 교육을 받는 중 들었던 강의내용이 떠올랐다. 한 바퀴 돌아와 옆에 앉으며 가만히 안아주었다. 아이는 낯모르는 내게 안겨 "너무 힘들어요."하면서 잠시 더 울더니 공손히 인사를 하고 일어섰다.

이런 일도 있었다. 수련원에서 교회 행사를 할 때, 프로그램 중 주변사람에게 다가가 안아주는 시간이 있었다. 자연스럽게 한 여인과 눈이 마주쳤고 우린 끌어안았다. 그런데 이 여인이 내 품에 안겨 통곡하는 게 아닌가. 무능한 남편을 만나 두 아들을 키워내느라 설움이 많은 여인이다. 눈물은 심오한 언어다. 그날 아무 말도 묻지 않았고 그녀도 하지 않았지만 언어보다 깊은 울음으로 우린 교감하고 있었다.

서울대병원 박민선 교수는 우리 몸에 꼭 필요한 망간이 혈액보다 눈물에 30배나 더 들어 있다며 "웃음이 온 몸을 활짝 열어 몸이 원활하게 돌아가는 역할을 하게 한다면 울음은 몸속의 나쁜 독을 빼내는 것과 같다" 고 한다. 마음이 힘들 때 참지 말고 맘껏 우는 습관이 건강 지킬 때 큰 도움이 된다니 제법 괜찮은 방법 아닌가·

분노가 끓어오를 때 흘리는 눈물이 기쁠 때나 슬플 때의 눈물보다 건강에 더욱 좋다고 한다. 가슴이 답답해지고 머리끝까지 화가 차오르는 감정을 느끼게 될 때면 소리 내 울어보는 거다. 화낼 때 발생하는 몸 안의 압력 차이를 눈물이 줄여주는 역할을 한다니, 사람에게 풀지 않고 우는 일 이야말로 일석이조(一石二鳥)이겠다.

'다이애나 효과'라는 말이 있다. 고(故)다이애나비의 장례식이 있던 날, 영국 전체가 눈물바다가 되었는데, 그 후 한 달여 기간 동안 영국의 정신병원과 정신상담소를 찾은 환자 수가 평소보다 절반으로 격감했다는 통계를 발표한 적이 있다. 이를 가리켜 '다이애나 효과'라고 부른다. 이는 울음의 심신 치유 효과를 극적으로 보여주는 예다. 뚬벙뚬벙 떨어지는 여성의 눈물 앞에 무너지지 않을 남성이 없고, 힘들었을 때 울면서 하는 하소연을 들어준 사람과 더욱 친해지는 것을 보면, 사람을 치료하고 공감을 형성하여 지지를 이끌어 내는데, 울음처럼 좋은 무기도 없지 싶다.

울음을 토해낼 상대가 낯모르는 사람이 오히려 편할 수 있다. 체면이 걸리고 주변에 우울을 끼치지 않으려고 북받치는 울음을 삭이면서 사는 이여, 한적한 곳에 가서 목 놓아 꺼이꺼이 한 번 울어 보시라. 기댈 어깨가 다가오거든 그저 맡겨보시라. 넓은 어깨를 가진 이여, 인적이 드문 곳에서 흐느끼는 이를 보시거든 '저 좀 안아주세요.' 하는 소리 없는 탄원이려니 조용히 다가가 아무런 말을 묻지도 하지도 말고 가만히 안아만 주시라. 그리고 유유히 사라지는 거다. 우리 사는 사회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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