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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미옥

수필가

눈이 아닌 겨울비가 나흘째 내렸다. 빗줄기 따라 쌉쌀한 바람이 종일 불어댔다. 거리의 단풍나무들이 이파리들을 옴씰 내려놓았다. 비우고 빈가지로 서있는 나무들이 처연해 보인다. 가지마다 황엽들을 가득 달고 찰랑이던 가을날이 어찌 유구하기만을 기대하리요마는, 모두 내려놓고 쓸쓸히 서있는 암갈색 겨울나무들이 짠하다. 앙상한 가지사이로 스산한 바람만 지나다닐 뿐, 새한마리 얼씬거리지 않는다.

병원침대에 누워계신 어머님은 영원히 뜨지 않으실 것처럼 눈을 질근 감고 미간을 찡그리고 계신다. 묻는 말에 대답조차도 신음소리로 대신하실 정도로 통증에 시달리신다. 시간마다 소변을 보시러 일어나실 때면 마른 입술사이에서 가는 피리소리가 새나왔다. 그 소리가 거슬리며 심장을 콕콕 찌른다. 그러나 누우셔서 어느 순간 그 소리마저 그치면 내 심장도 멎는 듯해 얼른 다가가 귀를 대어보곤 했다.

하루살이가 날갯짓하는 것처럼 가랑가랑한 피리소리가 다시 들리면 나는 안도의 숨을 토하며 가슴을 쓸어내리곤 했다. 걸대에 걸린 수액 봉지에서 어머님 몸속으로 방울방울 생명이 흘러들고 있다. 높은 연세에 낙상으로 척추 뼈가 골절되셨는데 그 부작용으로 다른 장기들에 심각한 부종이 생긴 거다. 비닐봉지에서 흘러나오는 각종약물들에 생명을 의지하고 계시는 어머니를 자식들은 그저 지켜보고만 있다.

이파리를 가득 달고 있던 여름나무들처럼 싱싱했던 어머님의 젊은 날도 있었다. 조실부모(早失父母)하시고 어린 나이에 나이차는 있지만 땅 부자 집 장남인 아버님께 시집오셔서 팔남매를 낳아 기르셨다. 사람 좋다는 소리 듣는 아버님과 사시면서 여러 남매를 키워 내시려면 여장부가 되셔야만 했단다. 농사일은 물론 바느질이나 길쌈 등 막히는 것이 없어 동네사람들과 집안 어른들로부터 칭송을 들었단다.

음식솜씨가 좋아 얼마 전까지만 해도 경로당 노인 분들 점심식사를 도맡아 해드릴 정도로 기개가 당당하셨다. "글쎄 노인네들이 내가 맹근 반찬이 맛있다고 하니 워쩐다냐? 아적은 내가 반찬을 하구 말구다." 여러 어른들의 반찬을 하시려면 힘들지 않느냐 묻는 내게 어머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팔순을 넘기신 노인이면서 두어 살 위이신 분들을 노인네라 지칭하시며 경로당 제왕처럼 분위기를 장악하셨다.

그중 맏며느리인 나에 대한 사랑은 특별하셨다. 청춘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머리에 하얀 서리가 내렸어도 내가 처음 시집갔을 때부터 지금까지 변하지 않는 어머님의 마음이다. 지난하게 살아온 당신의 맏며느리 세월이 하도 거칠었기에 내 며느리는 곱게 살기를 바란다 하시며 텃밭에서 가꾼 부추하나까지 뽀얗게 다듬어 주시는 건 물론 마늘이나 감자 등도 가장 굵은 건 장남인 우리 몫으로 주셨다.

그런데 나는 하루 밤 새우고선 간병인에게 어머니를 맡겨버린 나약한 며느리다. 언젠가는 이런 날이 오고야 말 것을 생각안한 것은 아니지만, 이렇게 갑자기 닥치고 보니 안타깝고 당황스럽다. 팔순을 넘기신 수년전 건강이 나빠지시자, 아이들도 출가하고 여유방도 있으니 모시고 살아야 하는 건 아닐까 고민했었다. 그러나 그리하지 못했다. "아파트는 답답해 나는 못산다. 같이 살믄 착한 애들 불효자 맹글게 돼있다" 하시던 말씀을 떠올리며 어머님도 혼자 사시길 원하신다고 합리화했다.

보일러 조절을 해야 해서 시골집에 들렀다. "우리 나이에 크게 다치믄 아주 나온 거유… 이제는 요양병원과 요양원을 돌아 댕기는 거지 집으론 못 가유" 옆 침대 할머니 말씀이 떠올랐다. 어머님의 손때 묻은 세간들을 둘러보다 주저앉았다. '아닐 거야 아닐 거야….' 애가 끓는다. 영원한 외출은 아닐 거라고 중얼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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