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님은 운전을 하며 차창가로 보이는 황금색 들판을 흘금거린다. "역시 하늘님은 의리가 있으셔. 내 말을 다 들어주시고. 히히." 마님은 올봄 내내 산불이 나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했고, 여름부터는 태풍이 불지 않게 해달라고 날마다 간절하게 기도했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올해는 산불이 나지 않았고, 매년…
생경한 풍경을 만날 때 내 말은 꼬이고 발걸음은 엇나갔다. 난 꼬이고 엇나가고 미끄러지는 낯설음의 설렘 때문에 여행을 했었다. 지난 한 해는 많은 여행을 했고 올 한해는 여행을 하나도 안했다. 그 덕에 꼬이고 어긋나고 미끄러지는 일이 없었고 내내 안녕했다. 지난해 추석 명절 때는 서해안 모항에서 검붉은…
오래전에 무소불위의 대통령들이 쉬어가던 청남대 별장을 거닐다가 팔이 부러진 전직 대통령의 동상을 본 적이 있었다. 견고한 청동상이었기에 이상하여 자세히 살폈다. 급기야 혼자 웃지 않을 수 없었다. 조악한 플라스틱 재질에 청동색을 입혀 모양만 그럴듯하게 만든 조잡한 장난감 같은 조형물이었다, 차라…
마님은 한 달 전에 친구에게 문조 한 쌍을 얻었다. 문조는 얼핏 보면 평범한 새로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금방 마음을 빼앗길 만큼 아름답다. 연한 잿빛 깃털 위로 깊은 바다색을 품은 깃털이 살짝 덮여있다. 이 깃털 위로 햇볕이 머물 때면 천상에서나 볼 수 있을 것만 같은 신비로운 색으로 변했다. 마님네…
마님은 모처럼 친정어머니를 모시고 화양계곡에 가서 계곡물에 발을 담그며 물놀이를 했다. 계곡물은 푸른 숲을 가득 담아서인지 아주 시원했다. "물소리가 참 듣기 좋구나." 마님 어머니는 몇 번이고 좋다, 좋다 하시며 이가 빠져 동굴처럼 보이는 입을 벌리고 환하게 웃으신다. "엄마, 그렇게 좋아요?" "그럼, 좋…
초콜렛이란 걸 난생 처음 먹어보았다. 진한 갈색의 네모덩이를 한입에 넣자마자 입안에 침이 고였다. 고소하고 달착지근하고 약간은 쓴 그 맛은 형언할 수 없을 만큼 감미로웠다. U.S.A라는 굵은 글자가 새겨진 나무 박스 안엔 초콜렛뿐 아니라 파인애플이나 햄같은 이름 모를 미제통조림들이 그득했다. 의기양…
여행을 좋아하는 마님은 시간만 나면 목적지를 정해놓지 않고 출발한다. 혼자 갈 때도 있지만 대부분은 삼돌씨와 함께 간다. 삼돌씨는 운전을 하고 마님은 옆자리에 앉아 창밖 풍경을 본다. 아름다운 경치에 푹 빠져서 옆에 누가 있다는 것도 잊어버리기 일쑤다. 그래서 둘은 함께 차를 타고 여행을 하면서도 대…
그를 마주칠 때마다 하나의 세계를 거니는 듯 했다. 잔잔한 물결이 반짝이는 가없는 수평선을 바라보듯 아득했고, 끝없이 펼쳐진 초록의 들판을 가로지르는 듯 넉넉했다. 60개의 위성을 거느린 토성처럼 늠름하고 빛이 났다. 초등학교 5학년 어린애의 눈에 아직 세상은 모호하고 불안했다. 여름 소나기가 촘촘…
마님네 집 마당 잔디 사이로 토끼풀이 귀여운 얼굴을 내밀고 갸웃대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점점 넓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앙증스러워서 예뻐해 줬더니 안 되겠네. 이러다가는 너희들이 잔디를 밀어내고 말겠어." 마님은 생명력이 강한 토끼풀을 캐내면서 들꽃마당이라 이름 붙인 옛 동료들을 생각했다. 개성…
물음표들이 달린다. 활처럼 구부러진 몸들이 앞을 향해 질문하듯 내달린다. 온 대지를 발갛게 달군 뙤약볕도 아랑곳하지 않고 활시위들이 팽팽히 당겨져 있다. 자신에 대해, 세상에 대해, 대지에 대해, 아니면 왜 내달리는지 묻고 또 묻는 듯 그들의 행렬은 이어지고 또 이어졌다. 대청댐에서 군산 금강 하구둑까…
마님은 늦잠을 자려고 새벽빛이 창틈으로 들어오거나 말거나 모른 체한다. 그런데 이른 새벽부터 마님 동서가 현관문을 두드리며 마님을 찾는다. "형님! 저 왔어요." 한동안 바쁘다는 핑계로 보지 못한 동서다. 마님은 벌떡 일어나서 달려 나가 맞이한다. 마님 동서는 소탈하고 넉넉한 마음을 지녔다. 그래서 마…
'칼 마르크스'를 털어내고, '영국 노동운동사'를 털어내고, '전통시대의 민중운동'을 털어냈다. '아놀드 하우저'의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먼지를 털어낸 후 잠시 책장을 둘러보았다. 30년도 넘게 나와 함께 살아온 책들이었다. 이 케케묵은 책들을 버리지 못하고 아직껏 보살피고 있는 내가 한심스러웠다. 지난…
마님이 눈 밑을 손수건으로 콕콕 찍어내며 책을 읽는다. 삼돌씨가 커피를 들고 안방에 들어오다 말고 눈이 휘둥그레진다. "마님! 왜 그래?" 마님이 벌건 눈으로 삼돌씨를 올려다보며 헤~하고 웃는다. 마님은 겸연쩍을 때 주로 얼렁뚱땅 영구 웃음으로 얼버무리는 버릇이 있다. "마님, 또 무슨 사고 쳤지? 그 웃음…
삼돌씨 성화에 못 이겨 마님은 모처럼 가까운 산을 찾았다. 삼돌씨 뒤를 쫓아가며 헉헉대는 마님 숨소리에 조용하던 산자락이 재채기를 해댄다. "삼돌씨, 좀 쉬었다 가며 안 돼? 힘들어 죽겠어." "마님, 조금만 더 가면 찻집이 나오니까 거기 가서 쉽시다." 마님은 기가 막혀 죽겠다는 듯 삼돌씨를 쏘아보며 투정을…
10년도 전에 '미(美),가장 예쁜 유전자만 살아남는다.'는 고약한 책을 읽은 적이 있었다. 하버드 의대 교수인 '낸시 애트코프'가 쓴 이 책을 완독한 후 난 잠시 착잡해졌었다. 인류의 아름다움에 대한 갈망과 선호는 유전자에 새겨있는 뿌리 깊은 원초적 본능이며, 그것이 종족보존에 유리한 쪽으로 작용하여 인…
가정의 달인 오월에는 마님네 집이 더 분주해 보인다. 양가 어머니 생신이 든 달이기 때문에 더 그렇다. 지난주에 시어머니 생신이 있어 가족들이 모이기로 했다. 그런데 생신 전날 허리가 아프다고 하셔서 병원에 검진을 받으러 모시고 갔다가 수술까지 하셨다. 다행이 수술 경과가 좋아 며칠 간 입원하고 나서…
그놈의 이름은 '무데뽀'였다. 양보라는 걸 몰랐다. 성질이 사나워서 다른 놈들과 어울리질 못했다. 부리로 아무나 쪼아대었다. 횃대도 혼자 차지하려고 눈을 번뜩이며 경계했다. 언제나 분주했고 행동이 산만했다. 난 그놈을 바라볼 때마다 가슴이 짠했다. 무엇이 저놈을 저리도 모질게 만들었을까· 사랑앵무…
12월의 끝, 12월은 끝의 매듭이자 또 다른 시작의 경계지점이다. "경계에 도달해본 사람만이 자기 자신과 만날 수 있는 것이다."12월에 진입하면서부터 지난여름의 뜨거움이 그리웠다. 불현듯 이 경계점에서 나를 돌아보니 살아가는 일의 비루함과 일상의 관성으로 난 무감해 있었다. 이제 한해의 끝에서 한 인…
커피의 세계적 산지인 에티오피아에서는 커피 한잔을 3원이면 마실 수가 있다. 이 커피한 잔이 커피전문점이라고 불리는 다국적 프랜차이즈 커피숍에서 대략 5천원에 팔린다. 내가 이 커피 한 잔을 시켜 마셨을 때 커피농가가 받을 수 있는 돈은 고작 200원 남짓. 나머지 돈 4,800원은 가공과 유통 업자인 기업…
12월이 오고 있다. 거리에 나뒹굴던 마른잎사귀가 얼어붙는 계절이다.도심의 포장도로에 어둠이 내리고 사람들은 그 길을 바쁘게 적시고 있다. 한 무리의 사람들은 제각각의 모습으로 서서 그들을 데려다 줄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시계탑 사거리는 서로의 길들이 엇갈려 째깍거리며 흘러가고 나 홀로 서서 그…
이십대를 시작하는 세상은 낯설었다. 기대한 것보다 지루했고 겉도는 외투를 입은 것처럼 어색했다. 난 그랬다. 호명만 받던 타율의 세계에서 홀로 자율로 가는 길은 새로울 것 없이 낡아보였다. 혼자 하숙방을 구하고 스스로 수강신청을 했고 강의시간 공백마다 한없이 이어지던 그 권태롭던 시간들만 놓여있…
대략 난감, 이런 때를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제발 이번만 봐 주세요. 큰 애가 다음 주부터 시험인데 공부는 하게 해야지요.", "아 글쎄 안돼요. 나도 먹고 살아야지. 집사람이 출산달인데 나도 봉급은 받아야 먹고 삽니다."몇 년전의 일이다. 지금은 한전에서 전기요금을 받지 않지만, 밀린 3개월치 전기요금을…
연어가 돌아온다. 연어는 섬진강 어느 하천 어귀에서 태어나 북태평양 베링해와 캄차카 반도에 나가 살다가 성어가 되어 돌아오고 있다. 장장 4만 킬로미터의 바다를 회유하여 여행하면서 지금 당당하게 모천(母川)인 섬진강으로 회귀하고 있다. 섬진강으로 돌아오기 위해 거친 물살과 소용돌이를 거슬러 3미…
2011년 9월 15일 오후는 숨이 막힐 정도로 뜨거웠다. 점심식사를 마치고 사무실로 돌아왔다. 다급하게 쏟아지는 전화 벨. 긴박하고 긴장된 목소리. 순간 두려움에 몸을 떨었다. 그 날의 순환정전은 내가 한전에 입사한지 이십년 만에 처음으로 마주친 일이며 우리나라 전력 역사상 극히 드문 일이었다. 지난 2…
무려 이십 년만이구나. 어린왕자! 너를 다시 안으니 세상을 새로 시작하는 느낌이다. 90년 4월 26일이라고 적혀 있더구나. 너를 마지막으로 본 날짜란다. 창밖으로는 드높은 하늘이 눈부시게 새파랗고 뭉게구름이 유영하듯 흐른다. 그 어딘가에 네가 있겠지. 아니면 어느 아프리카 사막에서 붉은 털 여우와 놀…
[충북일보] 어린이날부터 어버이날, 스승의 날, 부부의 날까지 소중한 누군가와 함께하기에 더없이 좋은 가정의 달 5월을 맞아 문화제조창을 비롯해 청주 곳곳에서 가족·친구·연인과 함께 시간 보내기 좋은 '꿀잼' 문화 프로그램이 펼쳐진다. 청주시문화산업진흥재단(대표이사 변광섭)에 따르면 어린이날 연휴인 4~5일에는 문화제조창 본관과 동부창고에 어린이들의 웃음 소리가 가득할 예정이다. 주말 오후 1시부터 5시까지 동부창고에서는 온 가족이 함께하는 '신나는 어린이날 행사'가 펼쳐진다. 동부창고 6동에서는 △슬기로운 새활용 놀이터 △여유 만만 창고 피크닉 △흥미로운 예술시간 △피아노 공연 등이 열린다. '슬기로운 새활용 놀이터'는 병뚜껑 알까기, 자투리 목재 미니운동회 등 온몸으로 뛰놀며 환경의 소중함을 깨달을 수 있는 체험 활동이다. '흥미로운 예술시간'을 통해서는 17종의 예술체험 프로그램(유료)을 즐길 수 있다. 이날 동부창고 카페C는 유료 예술체험 프로그램을 즐기고 음료를 구매한 고객을 대상으로 '굿즈 뽑기 이벤트'를 연다. 문화제조창 본관 청주시한국공예관에서도 어린이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준비했다. 공예관은 5일 오전 10시,
[충북일보] 7일 오전 10시부터 오후까지 충북 청주시 소재 충북대학교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주관한 국가재정전략회의가 열렸다. 그러자 지역 곳곳에서 '무슨 일이 있느냐'는 문의전화가 빗발쳤다. 대통령실의 한 관계자는 이날 국가재정전략회의가 열린 배경에 대해 "기존에 국가재정전략회의는 국무총리와 장·차관 등 국무위원 중심으로 열렸다"며 "이번에는 다양한 민간 전문가들을 참여시켜 현장의 생생한 목소리를 듣고 정책의 현실 적합성을 높이고자 했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해도 왜 굳이 충북대에서 이번 회의가 열렸어야 했는지 궁금증은 해소되기 어려워 보인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또 하나의 특징은 회의 장소가 충북대라는 점"이라며 "기존에는 주로 세종청사나 서울청사에서 국가재정전략회의를 열었는데, 충북대를 이번에 택한 이유는 지방 발전, 지역 인재 육성을 포함한 지방시대와 연계해 국가재정전략회의를 열고자 하는 대통령의 의지가 반영됐다"고 설명했다. 이 또한 대통령의 의지라는 부분을 제외하고는 일반 시민들의 궁금증을 해소시키는 것은 어려워 보인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윤 대통령은 MZ세대인 충북대 학생들과 오찬 간담회를 열어 청년일자리, 지역인재 육성 등의 고민과
[충북일보] 청주 오송에 바이오의약품 소부장 특화단지와 첨단재생바이오 글로벌 혁신특구 유치에 성공한 충북도가 바이오 특화단지와 K-바이오 스퀘어 조성 사업의 예비타당성조사 면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국내 바이오산업 중심지로 자리 잡은 오송을 바이오 관련 분야에서 세계적 수준의 클러스터로 육성하기 위해서다. 바이오 특화단지는 올해 상반기 지정 여부가 결정될 것으로 보이며 예타 면제는 이때까지 실현시킨다는 목표를 잡았다. 1일 도에 따르면 산업통상자원부가 주관한 바이오 국가첨단전략산업 특화단지 공모에 도전장을 던졌다. 특화단지로 지정되면 신규 산단 조성 시 국가산업단지로 신속 지정 검토, 생산시설 신·증설 때 산업단지의 용적률 최대 1.4배 상향 등을 지원 받는다. 정부 연구개발(R&D) 우선 반영, 입주 기관에 대한 국·공유 재산 사용료와 대부료 감면, 예타조사 특례 적용 등이 주어진다. 이 같은 다양한 혜택이 바이오산업 육성에 큰 도움이 되는 만큼 유치전은 뜨겁게 전개되고 있다. 충북을 비롯한 11개 지자체가 뛰어들었다. 인천과 강원, 대전, 경북, 전북, 전남이며 경기는 수원과 성남, 시흥, 고양 등 4곳이 신청했다. 도는 지난달 30일 서
[충북일보] ◇올해 충북청주FC의 목표는. "지난해 리그는 목표였던 9위보다 한 단계 높은 8위로 마감했고 14경기 무패 기록도 세웠다. 그 배경에는 최윤겸 감독을 비롯한 코칭 스태프의 훌륭한 전략과 빈틈 없는 선수 관리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스포츠 경영 리더십을 바탕으로 올해는 조금 더 높은 목표인 플레이오프를 향해 달려보려 한다. 13개 팀 중 5위 이상의 성적은 욕심으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달성을 위해 갖은 노력을 하고 있다. 특히 매주 목요일 감독·코칭 스태프를 중심으로 선수 강화팀, 대외협력팀, 마케팅 홍보팀 등 사무국의 모든 팀이 모여 PPT 발표를 한다. 이 발표를 통해 지난 경기를 분석함과 동시에 다가오는 경기에 대한 전략을 구체적으로 수립·이행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나아가야할 구단 운영 방향은. "단순하게 축구 경기 한 경기, 한 경기로만 끝나는 것은 바라지 않는다. 스포츠는 막강한 힘을 품고 있다. 스포츠 경기 활성화로 작게는 건전한 가족문화 형성부터 크게는 지역 소통, 나아가 지역 경제 성장까지 이룰 수 있다고 믿는다. 홈경기 날이 되면 가족 단위의 관중들이 경기장을 많이 찾는다. 경기 관람을 통해서 여가 시간에 시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