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이 밤으로 바뀌는 지점에 무작정 닿은 선창, 저 멀리 수평선에 푸른빛과 주황색의 신비가 포개어졌다. 그 황홀한 순간은 아주 짧아서 잠시 머뭇거리다 보면 그 빛의 스펙트럼은 이내 사라지곤 했다. 이 지상의 삶에서 힘겹게 표류하고 있다고 느낄 때, 아니면 막막한 외로움의 심연으로 한없이 가라앉고 있다고…
마님은 늦은 아침을 먹고 오랜만에 삼돌씨와 마을 뒤 두타산에 가려고 서두른다. 부부가 나란히 나가는 모습을 보고 흰둥이가 컹컹 짖어댄다. "삼돌씨, 흰둥이가 겨우내 집만 지키느라 심심했나봐. 흰둥이도 데려갈까?" "언제는 마님이 내 허락 받았나. 마님 맘대로 하슈." 마님은 흰둥이 목줄을 푼다. 흰둥이가…
'에밀'은 한 인간의 완전한 교육교본이었다. 장 자크 루소를 불후의 사상가로 만든 이 한권의 책이 250년 전 서구사회를 뒤흔들었다. '에밀'이 출간되자 모든 어머니들이 육아의 바이블로 삼았고, 상류 계급의 부인들은 유모 대신 자신들의 모유로 직접 아이에게 젖을 먹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서구 근대교육의…
연휴동안 삼돌씨는 계속 이불속에서 뒹굴 거린다. 평소 같으면 마님 방을 기웃대며 하루에도 몇 번씩 장난을 걸거나 뭐 먹고 싶은 거 없냐며 나가자고 집적거리던 삼돌씨다. 마님은 방문을 빠끔히 열고 삼돌씨를 불러본다. "삼돌씨, 자?" 아무 대답이 없다. "낮잠 자면 밤에 잠 안 오면 어쩌려고 그래?" 그래도 조…
자신이 기르는 암캐가 백주대낮에 이웃집 수캐에게 강간을 당했다고 개 주인을 고발하는 사건이 있었다. 며칠 전 미국에서다. 하운드 종 한 살짜리 이 수캐는 동네를 어슬렁거리다가 이웃집 암캐를 보자마자 그만 욕정이 발동해서 일을 저질렀다. 암캐 주인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결국 경찰에 고발했고, 경…
삼돌씨는 아침마다 출근하는 마님을 붙잡고 잔소리를 한다. 올겨울에는 유난히 눈이 많이 와서 더 불안한 모양이다. "마님, 눈길 운전 조심하고 걸어 다닐 때도 빙판길 조심해." "아이고, 참. 별 걱정을 다하셔. 내 걱정 말고 삼돌씨나 잘해." 마님은 삼돌씨 잔소리가 귀찮다는 듯 자동차 꽁무니에서 방구 소리를 내…
새벽 3시에 잠을 깨면 다시 자기도 깨어있기도 애매한 시간이었다. 개츠비처럼 새벽 세시의 왈츠를 듣기도, 부두 끝자락에 있는 데이지의 초록색 불빛을 찾아 헤매기도 난감한 시간인 것이다. 새벽 세시를 전후해서 잠을 깬지가 벌써 한 달 가까이 되었다. 출근까지 전적으로 나의 통제권 아래 놓여 있는 꽉 찬 서…
막 잠이 들려는데 핸드폰 카톡이 마님을 부른다. 열까 말까 망설이는 사이에 이미 잠은 저만큼 달아났다. 마님은 얼굴을 찌푸리고 마지못해 핸드폰을 연다. 카톡 제목이 눈에 확 들어온다. '택배 왔습니다.' 게슴츠레하던 마님 눈이 점점 커지며 얼굴도 활짝 펴진다. "택배?" 마님이 핸드폰에 얼굴을 바짝 들이밀…
여기는 여전히 공사 중이다. 공중마다 거대한 타워크레인, 육중한 소음의 불도저, 줄을 잇는 대형 트럭들의 행렬, 태어나서 이렇게 많은 중장비들을 일찍이 본 적이 없었다. 세종시의 아침은 공사를 시작하는 수많은 인부들이 깨웠다. 지난여름, 수십 년을 살아온 청주에서 이사를 올 때만 해도 하루하루가 심란…
봄 냄새다. 차를 타고 가로지르는 상당산성 우회도로에 화사한 봄 햇살이 비쳤다. 바람 따라 눈가루처럼 흩날리는 벚꽃, 꽃망울 보풀을 내밀자마자 벌써 낙화다. 그 무대책과 하릴없음으로 생의 비의에 젖는다. 봄 속에서 봄이 그리워졌다. 봄의 소리를 들었다. 하얀 눈처럼 나풀대는 꽃잎들의 세례 속에서였다…
4월의 봄날, 눈발 날리는 강원도의 국도와 지방도를 달렸다. 포말의 파도 넘실대는 바닷가 마을, 깊은 호수를 따라 이어지는 한적한 집들, 어스름 그림자 깃들인 산골동네, 그 모든 곳을 지나칠 때마다 이곳이 어디인지를 알려주는 건 이정표였다. 낯익은 이정표도 있었고, 처음 마주친 이정표도 있었다. 그 길에…
"You've gotta find what you love."(사랑하는 일을 찾아야 합니다). 2005년 미국 스탠포드대학 졸업식에서 스티브 잡스가 한 강연의 제목이다. 이는 스티브 잡스 사후에 매스컴에서 심심찮게 조명되어온 내용이어서 유명해지기도 했다."당신의 시간은 한정되어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삶을 사는…
3만년이 넘었다고 했다. 하얗고 단아한 자태의 네 송이 꽃잎, 패랭이꽃이었다. 아침신문을 펼쳐들다가 우연히 발견한 한 장의 꽃 사진이 눈길을 끌었다. 시베리아 동토에서 3만년동안 얼어있던 씨앗으로 러시아 생물학 연구팀이 개화시키는데 성공했다고 한다. 난 그 3만년의 시간대를 가늠하느라 잠시 동안 멍…
엽기적이다. 아름답다. '벌 핀치의 그리스·로마신화'를 다시 읽고 단 두 마디로 요약된 소감이다. 그리스의 디폴트 위기가 유럽 금융 붕괴를 거쳐 세계 불황의 방아쇠가 될 것이라고 했다. 갑자기 신화의 나라 그리스에 대해 궁금해졌다. 올리브 나무 사이로 불어오는 지중해성 바닷바람, 황금빛으로 빛나는 오…
거리는 아직 어둠에 물들어 흑백색조만 보여준다. 깊은 겨울아침의 날선 바람이 상쾌하게 온몸을 휘감는다. 나는 코트에다가 목도리와 귀마개와 장갑으로 완전 무장했다. 어제처럼 오늘이라는 세상의 무대로 나서는 발걸음을 내딛는다. 이 시간대의 국보제약 도로는 온 시내의 빈 택시가 지나가는 듯하다. 오늘…
시큼했다. 산길 옆 나뭇가지에 저 홀로 매달려 있는 야생사과를 한입 베어 물곤 했다. 떫으면서도 달콤했던 길들여지지 않은 야릇한 그 맛. 이름 모를 새들이 쪼아 먹던 어설펐던 그 사과들은 어릴 적 산길을 지나칠 때마다 음미하던 나만의 숨겨진 보물들이었다. 과일가게에서 사온 둥글고 빛이 나는 잘 익은 사…
1초에 29킬로미터의 속도로 여행하는 지구가 드디어 태양을 한 바퀴 돌았다. 지구상에 또 하나의 일 년이 완성되는 순간이다. 새해는 지구가 새로이 태양을 공전하는 시작점이다. 그 태양을 바라보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먼 해맞이 길을 다녀오고 마을 뒷산에라도 올랐다. 지구상에 인간이 태어난 지 2천만년…
연일 계속되는 추위로 눈이 녹지 않았다. 마님네 마당에 쌓인 눈을 칼바람이 휩쓸고 지나간다. 마님은 창문에 얼굴을 대고 마당을 내려다보다가 호들갑을 떤다. "어떡해, 어떡해." 삼돌씨가 뭘 보고 그러나 싶어 커피잔을 들고 마님 곁으로 다가와서 묻는다. "마님, 왜 그래?" "우리 마당에 쌀가루가 가득 쌓여서…
마님네 마당가 나무에 하얀 눈이 소복이 쌓였다. 아침부터 새들이 날아와 이 가지 저 가지를 옮겨 다닌다. 새들의 날갯짓에 나뭇가지에 쌓인 눈이 화르르 흩어진다. 나뭇가지를 쪼아대며 재잘대는 새들을 그윽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마님 얼굴이 편안해 보인다. 마님 회사 동료직원이 이년 전에 마님에게 새를 키…
마님이 주방에서 분주하게 움직인다. 더덕을 얇게 저며서 양념장을 발라 석쇠에 굽고, 생선을 졸이고, 두부 전을 부친다. 고소한 냄새가 진동을 한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던 삼돌씨가 코를 벌름거리며 묻는다. "마님, 오늘 무슨 날이유?" "아~니." "그런데 어쩐 일로 상다리가 부러지게 저녁상을 차려?" 마님은…
마님은 잠이 오지 않는다며 엎치락뒤치락 거리다 새벽이 되어서야 짧은 잠이 맛있어 죽겠다는 듯 입맛까지 다시며 잔다. "마님, 오늘 일찍 나간다며?" "아이, 몰라. 밤새 한잠도 못자다 이제야 겨우 잠들었단 말이야." 마님은 이불을 머리까지 뒤집어쓰고 짜증을 낸다. "내가 안 깨워서 늦었다고 나한테 화풀이나…
마님은 거울을 보면서 칫솔질을 한다. 치약거품이 입술을 따라 이리저리 움직이며 장난을 건다. 마님은 이를 닦고 나서 삼돌씨 칫솔 옆에 마님 칫솔을 걸다가 자기를 바라보는 삼돌씨 칫솔을 빼서 들여다보며 인사를 한다. "안녕, 잘 가." 마님은 칫솔을 쓰레기통에 의기양양하게 집어넣고 나온다. 삼돌씨는 그때…
해님이 동쪽 산마루를 넘으려고 바동대는 소리에 마을이 깨어나기 시작한다. 밤이슬에 젖은 풀들이 기지개를 켜고, 새들은 포르르 날아다닌다. 마님네 흰둥이와 촐랑이도 덩달아 컹! 하고 짖는다. 새벽은 늘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그만큼의 소리를 낸다. 마님은 아쉬운 잠을 밀어내고 막 일어난다. 그때 핸…
"나이 먹어가면서 인격 등급이 높아져야 되는데 배 둘레만 점점 높아지고 있으니 큰일이네." 마님은 거울을 보고 이리저리 자기 몸을 살피며 궁시랑 댄다. "삼돌씨, 우리 휴일만이라도 두타산에 다니자. 응? 이러다가 자기나 나나 둘 다 돼지 되겠어." "삼돌이는 산에 갈 시간에 잠이나 더 잘 거구만유." 삼돌씨는…
지난가을 마님을 희롱한 두타산에게 3개월간 마을로 내려오지 말라는 판결이 내려진지 어느덧 일 년이 지났다. 지금쯤은 두타산 가슴 부위가 불그스름하게 물들기 시작할 때가 되었는데도 아직 아무런 기미도 없다. 들판의 곡식도 모두 고개를 숙인 체 풀이 죽어 있다. 집 앞에 있는 들판을 내려다보는 삼돌씨와…
[충북일보] 어린이날부터 어버이날, 스승의 날, 부부의 날까지 소중한 누군가와 함께하기에 더없이 좋은 가정의 달 5월을 맞아 문화제조창을 비롯해 청주 곳곳에서 가족·친구·연인과 함께 시간 보내기 좋은 '꿀잼' 문화 프로그램이 펼쳐진다. 청주시문화산업진흥재단(대표이사 변광섭)에 따르면 어린이날 연휴인 4~5일에는 문화제조창 본관과 동부창고에 어린이들의 웃음 소리가 가득할 예정이다. 주말 오후 1시부터 5시까지 동부창고에서는 온 가족이 함께하는 '신나는 어린이날 행사'가 펼쳐진다. 동부창고 6동에서는 △슬기로운 새활용 놀이터 △여유 만만 창고 피크닉 △흥미로운 예술시간 △피아노 공연 등이 열린다. '슬기로운 새활용 놀이터'는 병뚜껑 알까기, 자투리 목재 미니운동회 등 온몸으로 뛰놀며 환경의 소중함을 깨달을 수 있는 체험 활동이다. '흥미로운 예술시간'을 통해서는 17종의 예술체험 프로그램(유료)을 즐길 수 있다. 이날 동부창고 카페C는 유료 예술체험 프로그램을 즐기고 음료를 구매한 고객을 대상으로 '굿즈 뽑기 이벤트'를 연다. 문화제조창 본관 청주시한국공예관에서도 어린이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준비했다. 공예관은 5일 오전 10시,
[충북일보] 7일 오전 10시부터 오후까지 충북 청주시 소재 충북대학교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주관한 국가재정전략회의가 열렸다. 그러자 지역 곳곳에서 '무슨 일이 있느냐'는 문의전화가 빗발쳤다. 대통령실의 한 관계자는 이날 국가재정전략회의가 열린 배경에 대해 "기존에 국가재정전략회의는 국무총리와 장·차관 등 국무위원 중심으로 열렸다"며 "이번에는 다양한 민간 전문가들을 참여시켜 현장의 생생한 목소리를 듣고 정책의 현실 적합성을 높이고자 했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해도 왜 굳이 충북대에서 이번 회의가 열렸어야 했는지 궁금증은 해소되기 어려워 보인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또 하나의 특징은 회의 장소가 충북대라는 점"이라며 "기존에는 주로 세종청사나 서울청사에서 국가재정전략회의를 열었는데, 충북대를 이번에 택한 이유는 지방 발전, 지역 인재 육성을 포함한 지방시대와 연계해 국가재정전략회의를 열고자 하는 대통령의 의지가 반영됐다"고 설명했다. 이 또한 대통령의 의지라는 부분을 제외하고는 일반 시민들의 궁금증을 해소시키는 것은 어려워 보인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윤 대통령은 MZ세대인 충북대 학생들과 오찬 간담회를 열어 청년일자리, 지역인재 육성 등의 고민과
[충북일보] 청주 오송에 바이오의약품 소부장 특화단지와 첨단재생바이오 글로벌 혁신특구 유치에 성공한 충북도가 바이오 특화단지와 K-바이오 스퀘어 조성 사업의 예비타당성조사 면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국내 바이오산업 중심지로 자리 잡은 오송을 바이오 관련 분야에서 세계적 수준의 클러스터로 육성하기 위해서다. 바이오 특화단지는 올해 상반기 지정 여부가 결정될 것으로 보이며 예타 면제는 이때까지 실현시킨다는 목표를 잡았다. 1일 도에 따르면 산업통상자원부가 주관한 바이오 국가첨단전략산업 특화단지 공모에 도전장을 던졌다. 특화단지로 지정되면 신규 산단 조성 시 국가산업단지로 신속 지정 검토, 생산시설 신·증설 때 산업단지의 용적률 최대 1.4배 상향 등을 지원 받는다. 정부 연구개발(R&D) 우선 반영, 입주 기관에 대한 국·공유 재산 사용료와 대부료 감면, 예타조사 특례 적용 등이 주어진다. 이 같은 다양한 혜택이 바이오산업 육성에 큰 도움이 되는 만큼 유치전은 뜨겁게 전개되고 있다. 충북을 비롯한 11개 지자체가 뛰어들었다. 인천과 강원, 대전, 경북, 전북, 전남이며 경기는 수원과 성남, 시흥, 고양 등 4곳이 신청했다. 도는 지난달 30일 서
[충북일보] ◇올해 충북청주FC의 목표는. "지난해 리그는 목표였던 9위보다 한 단계 높은 8위로 마감했고 14경기 무패 기록도 세웠다. 그 배경에는 최윤겸 감독을 비롯한 코칭 스태프의 훌륭한 전략과 빈틈 없는 선수 관리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스포츠 경영 리더십을 바탕으로 올해는 조금 더 높은 목표인 플레이오프를 향해 달려보려 한다. 13개 팀 중 5위 이상의 성적은 욕심으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달성을 위해 갖은 노력을 하고 있다. 특히 매주 목요일 감독·코칭 스태프를 중심으로 선수 강화팀, 대외협력팀, 마케팅 홍보팀 등 사무국의 모든 팀이 모여 PPT 발표를 한다. 이 발표를 통해 지난 경기를 분석함과 동시에 다가오는 경기에 대한 전략을 구체적으로 수립·이행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나아가야할 구단 운영 방향은. "단순하게 축구 경기 한 경기, 한 경기로만 끝나는 것은 바라지 않는다. 스포츠는 막강한 힘을 품고 있다. 스포츠 경기 활성화로 작게는 건전한 가족문화 형성부터 크게는 지역 소통, 나아가 지역 경제 성장까지 이룰 수 있다고 믿는다. 홈경기 날이 되면 가족 단위의 관중들이 경기장을 많이 찾는다. 경기 관람을 통해서 여가 시간에 시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