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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환

한전 충북본부 홍보실장

거리는 아직 어둠에 물들어 흑백색조만 보여준다. 깊은 겨울아침의 날선 바람이 상쾌하게 온몸을 휘감는다. 나는 코트에다가 목도리와 귀마개와 장갑으로 완전 무장했다. 어제처럼 오늘이라는 세상의 무대로 나서는 발걸음을 내딛는다. 이 시간대의 국보제약 도로는 온 시내의 빈 택시가 지나가는 듯하다. 오늘도 김밥집 아주머니는 벌써 가게 문을 열어놓고 선채로 이른 김밥을 말고 있다. 걸어서 출근한지 벌써 두 번의 겨울을 거쳐 가는 동안 이 거리에서 이 김밥가게가 가장 먼저 새벽을 열어왔다.

삼거리 목욕탕의 굴뚝에선 하얀 연기가 하늘로 용트림하듯 솟아오른다. 갑자기 어제 저녁에 읽은 미셀 투르니에의 글귀가 떠오른다. '당신은 목욕 쪽인가. 샤워 쪽인가? 정치적으로 샤워는 좌파 쪽에 위치해 있으며, 목욕은 우파 쪽이다.' 참으로 그럴 듯하다. '그렇다면 난 좌파네'라고 중얼거리며 혼자 웃음을 짓는다. 아리스토텔레스라도 된 듯이 말이다.

걸어가는 내내 휘둘러보는 길가의 가게들. 구제물품을 취급하는 옷가게의 쇼 윈도우에는 지난 가을에 걸어놓은 옷이 아직 그대로 걸려있다. '이 가게 사장님은 어쩌자고 진열상품을 바꿔 놓지를 않는 거지?' 주제넘은 걱정도 해보고, 이 가게를 경영해서 몇 명의 가족들이 생활하고 있는 것일까라는 쓸데없는 생각까지 하기도 한다.

평일인데도 체육관 앞에는 수십 대의 관광버스가 산악회 회원들과 여행객들을 기다리고 있다. 이른 시각임에도 사직사거리 교차로에는 보험회사 직원들의 빠른 출근과 학생들의 발걸음으로 활기가 넘실거린다.

이 시각쯤 되면, 나는 나의 시선너머 보이지 않는 무수한 곳을 두리번거리게 된다. 그 평범하고 소박한 일상의 바다를 유영하는 많은 사람들을 떠올리는 것이다. 세상이라는 거대한 수레바퀴를 굴리기 위해 일상이라는 톱니바퀴들을 쉼 없이 맞추어가는 나의 이웃들, 동료들, 친구들, 가족들. 그리고 나까지 포함해서 많은 익명의 얼굴들이 아른거린다.

에뮈나엘 레비나스의 '존재에서 존재자로'의' 해석을 읊조린다. '우리는 숨쉬기 위해 숨쉬며, 마시기 위해 먹고 마시며, 거주하기 위해 거처를 마련하며, 호기심을 만족하기 위해 공부하며, 산책하기 위해 산책한다. 이 모든 일은 살기 위해 하는 일이 아니다. 이 모든 일이 삶이다. 삶은 하나의 솔직성이다. 세계에 속하지 않는 것과 반대되는 그런 것으로의 세계, 그것은 우리 안에서 거주하고, 산책하고, 점심과 저녁을 먹고, 누구를 방문하고, 학교에 가고, 토론하고, 체험하고, 탐구하고, 글을 쓰고, 책을 읽는 그런 세계이다.'

죽음이 얼마 남지 않은 프란츠 카프카도 그의 연인 밀레나에게 보낸 마지막 편지에서 '누군가 맥주를 힘차게 마시는 모습을 보고 싶다'는 일상적인 욕망만을 갈구했다던가. 임종을 앞둔 최후의 순간에 그가 목말라 한 것은 관념적인 관조나 형이상학적 구원이 아니었다.

지금쯤 국보로를 지나던 빈 택시는 손님을 태워 새로운 목적지를 향해 달릴 것이며 김밥가게에선 오늘 여행을 떠나는 자에게 도시락을 건네줄 것이다. 이른 출발을 하던 직장인과 학생들은 총총 발걸음을 멈추고 또 다른 씬(scene)을 위한 무대장치를 마련하리라.

문득, 일상은 완성되는 법이 없이 파편처럼 엮어지나 그 하루하루의 순간들에 영겁의 세월이 깃들여 있음을 깨닫는다. 모든 생활은 오디세이, 누구나 이타카로 가는 율리시스임을, 그래서 모든 일상의 단순한 걸음걸음들이 존재의 도약대가 되고 기도가 되고 꿈을 찾아가는 길, 신과 조우하는 길이 될 수 있음을 이 새벽길에 일깨운다.

자, 나는 오늘이라는 이 지극히 솔직한 일상의 무대에서 누구를 만나고, 어떤 대화를 하고, 무슨 일을 하며, 무엇을 먹고 읽고 쓰면서 삶의 결을 기쁘게 다듬어 나를 구원할 것인가.

우암산 너머에 붉은 해가 막 떠오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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