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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신

우석대 교수

지난달에 중학생 아들의 생일이 있었다. 초등학생 때만 해도 달력에 동그라미를 크게 그려놓고 생일을 손꼽아 기다리던 녀석이 중학생이 되고부터는 생일에 쿨하게 반응했다. 자전거 사줄 거 아니면 선물은 필요 없다는 말이 조금 서운하게 들렸다. 백만 원이 넘는 자전거 가격을 알고 나서는 괘씸한 생각도 들었다. 제 딴에는 아버지 주머니 사정을 생각해주는 것이려니 하고 말았다.

생일 아침에 작은 케이크를 준비해 노래를 불러주면서 축하했다. 더운 날 아들 낳느라 애쓴 아내에게도 고맙다고 했다. 그래도 그냥 넘어가면 섭섭할 것 같아서 받고 싶은 생일 선물이 있냐고 물었더니 뚱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진짜 자전거 사줄 거냐는 무언의 경고였다.

"생선 진짜 필요 없어."

누가 그랬던가! 중학생 아들이 말을 걸어오는 것만으로도 괜찮은 부모임을 인증받는 거라고. 아들 녀석은 사춘기 태를 내느라 매사에 눈매가 부리부리해졌고, 말투도 예각으로 날카롭게 꺾이기 일쑤다. 그렇지만 그날은 말투가 아니라 '생선'이 문제였다.

"웬 생선?"

내가 반문하자 녀석이 한숨을 푹 쉬었다. 아, 이래서 아빠하고 말하기 싫다니까. 뭐, 그런 표정이었다. '생선'은 생일 선물의 줄임말이라고 했다. 뭐든 줄여서 말하는 시대니까 그럴 수도 있겠지.

창조적 언어생활이 정점에 다다른 시대라고 한다. 무수한 신조어가 쏟아졌다가 사라진다. 한 번은 인터넷 글에서 '그 잡채'라는 표현을 보고 혼자 궁리한 적 있었다. 대체로 접두사 '잡-'이 덜된 것이나 부족한 것 혹은 못난 것을 드러내는 의미다. 그래서 그 비슷한 의미 영역을 더듬어본 적 있었다. 그러다가 '그 자체'를 재미있게 표현한 거라는 걸 알고는 맥이 빠진 적도 있다. 그렇다면 혹시 '내봬누'가 무슨 뜻인지 아는가? 궁금하다면 포털사이트에서 한 번 검색해보시기를.

'생선'이라는 표현도 엉뚱했지만, 나를 뜨악하게 한 건 요즘 아이들이 생일 선물을 주고받는 방식이었다. 그날 녀석이 받아온 '생선'은 편의점 상품권, 커피숍 쿠폰, 아이스크림 쿠폰 등이었다.

"이런 게 무슨 생일 선물이냐?"

이렇게 말한 걸 지금까지도 후회한다. 이것도 꼰대질이구나. 그래서 곧장 말을 바꿨다. 생일 축하한다는 문자는 없어? 저절로 말끝이 흐려졌다. 아니나 다를까, 아들 녀석이 도끼눈으로 째려보는 걸 애써 모른 척했다. 생일 선물로는 책이 최곤데. 앞 속지에 몇 글자 적어주는 맛도 있고. 그런 생각이 들다가도 이것 또한 반시대적 궁상이려니 하고 입을 꾹 닫았다. 하지만 생일 선물로 현금을 계좌이체 한다는 말에는 기어이 한 마디 내뱉고 말았다.

"야, 그 참 괜찮은 생각이다. 현금보다 확실한 생선이 어디 있겠냐?"

마음에 없는 말을 했다. 그렇다. 그게 '생선'이다. 책이나 편지가 생일 선물이라면, 모바일 쿠폰이나 현금은 '생선'이다. 뒷물결이 앞 물결을 변방으로 밀어내는 것처럼, '생선'이 생일 선물을 우리 삶에서 밀어내는 중이다. 물론 '생선' 문화가 시대를 정확하게 반영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들이 원하는 대로, 그들만의 문화를 만들어가는 것이 제법 대견하게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축하해주고 기억해주는 일이 너무 쉽다. 그래도 되는 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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