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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신

우석대 교수

지난주부터 자주 눈에 안개가 끼었다. 피곤하거나 복잡한 일이 생기면 더 그랬다. 그러다가 또 시야가 탁 트이기도 했다. 한 살씩 나이 들어가는 일이라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세상의 모든 사물은, 인간의 몸을 포함해서, 쓰면 쓸수록 닳기 때문이다. 그래도 걱정되는 마음에 인터넷을 뒤졌다. 나와 비슷한 증상을 검색하니 몸이 보내는 신호를 가볍게 여기다가 후회한다는 글이 많았다.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 막지 않도록 경계하는 글들이 많았다. 몸이 천 냥이면, 눈이 구백 냥 값이라는 말이 눈에 띄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토요일 일찍 안과를 찾았다.

"안구건조증도 있고, 시신경도 관리해야 할 것 같네요."

그러면서 덧붙였다.

"컴퓨터나 스마트폰 보는 시간보다 자연을 좀 더 자주 보세요. 5월이잖아요. 고개를 조금만 들어보세요. 거기 다른 세상이 있어요."

처방전을 받아 들고 '다른 세상'을 생각했다. 다른 세상은 고개를 조금만 들면 있었다. 5월이라니. 푸름. 화창. 싱그러움. 그런 말들이 어쩌면 다른 세상을 만드는 게 아닐까?

약국에서 곧장 인공눈물을 점안했다. 인공눈물이 흘러내리지 않게 턱 끝을 살짝 치켜드는데, 약국 창문 너머로 초록의 숲이 보였다. 계절의 여왕이라는 별칭이 있는 5월답게, 자연은 가장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 순간 나는 결심했다. 오늘 하루, 오롯이 5월을 즐기리라.

그러고 보니 일 년 열두 달의 풍경은 나날이 새롭다. 엊그제 삼월의 연두를 본 듯한데 5월은 완연한 녹음이다. 옛 어른들이 5월을 청춘에 빗댄 이유를 알 것 같다. 청춘, 듣기만 해도 아름다운 시절. 금방이라도 이런 말이 어디선가 들릴 듯하다. 천천히 걸으며 눈길을 옮길 때마다 선물처럼 5월이 다가왔다. 붉은 벽돌담 위로 푸릇하게 올라온 덩굴장미마다 붉은 꽃을 매달았다. 다 같은 장미인 듯하지만, 새겨 보면 저마다의 생김이 다르다. 사람의 얼굴처럼 복스럽게 동그란 장미도 있고, 새초롬하게 예민한 장미도 보인다. 그러거나 말거나 그늘에서 소심하게 피어 있는 장미마저도 5월에는 가장 찬란하게 붉다.

내친김에 차를 몰아 한적한 곳으로 가 보았다. 벌써 물을 잡아놓은 논이 있다. 그 건너에서는 트랙터가 연방 논을 고르는 중이다. 햇살이 좀 더 따가워지면 모내기를 할 것이다. 개구리울음이 자글자글한 새벽, 못자리에서 모를 찌는 일을 상상해 본다. 한몫으로 다발 지은 모를 지게에 져 다랑논에 부려놓으면, 품앗이 나온 어른들이 허리를 굽혀 모를 냈다. 손놀림이 얼마나 잰지 못줄을 팽팽히 당기기도 전에 '어이' 소리를 들린다. 흙물이던 논배미가 그새 반 넘게 파란 모들로 채워졌다.

그러나 무엇보다 5월의 백미는 녹음을 비집고 나온 흰 꽃들이다. 말 그대로 백미, 흰 눈썹처럼 이팝나무꽃, 아카시아꽃, 찔레꽃이 선명하다. 5월에 보는 흰 꽃은 어딘가 처연하다. 배고플 때 한 움큼 따서 멀미 나게 씹었던 아카시아꽃 때문일까? 아니면 새순을 톡톡 끊어 풀비린내를 맡아가며 질겅거렸던 찔레 때문일까? 긴 겨울을 견뎌낸 사람들 눈에 이밥처럼 보였다는 이팝나무꽃 때문인지도 모른다.

한창 물오른 5월 녹음을 배경으로 흐드러진 흰, 하얀 꽃을 보는 동안 눈시울에 뜨거운 것이 차올랐다. 5월, 흰 꽃이 울음을 견디는 소복처럼 보였다. 어디서 보았을까, 그 소복을. 기억을 더듬어 흑백 다큐멘터리 필름을 떠올렸다. 다 토해내지 못한 울음이 이렇게 펄떡펄떡 푸른 5월을 흰 꽃으로 수놓은 건 아니었을까·

이틀 후면 5·18 민주화운동 기념일이다. 364일은 잊고 지내더라도 딱 하루, 이날만큼은 눈을 들어 자세히 보아야 한다. 5월이 얼마나 화창하게 푸른지를. 이토록 남다르게 화창한 푸름을 지키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이 희생했는지를. 흐린 눈을 제대로 비벼 닦고 제대로 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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